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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생활의 의미 (신 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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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릴 때 고생은 사서라도 시키라”고도 한다. 옛날 개성상인들은 자식을 다른 상인 가게의 종업원으로 취직시켜서 밑바닥 일부터 배우게 한 후에 자기 사업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아들을 낳으면 개성으로 보내라”는 말까지 있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아무런 어려움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줄 모른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사람이 강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 3년을 썩다 온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내 몸이 건강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그 군대생활을 통해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강해지고 인격이 온전해지고 사회성을 기르고 더 나아가서 믿음의 훈련과 연단도 받는 기간이다. 그래서 군입대하는 청년들에게 절대로 손해 보지 말고 유익을 얻고 오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도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야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그 앞에 모여 있는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광야생활을 기억하라고 한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왜인가? 하나님께서 그들로 40년 간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데는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40년 광야생활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결과였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1세대는 광야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훈련하시고 교육하셨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셨다.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이 늦어졌지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그들이 믿음의 준비를 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일하시는 분이시다.
어떤 준비를 하게 하셨는가? 2절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시려 했다. “시험하다”의 ‘나사’는 ‘확인하다, 입증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확인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지 그들의 마음을 알려 하셨다. 2절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닌지 확인하려 하셨다. 왜인가? 그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확인하신 후에 가나안땅에 들여보내시려고 시험하신 것이다. 

1절은 신명기 전체의 중심사상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이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그들이 살고, 번성하고, 약속하신 땅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부모세대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살지 못하고 죽었고, 번성하지 못하고 멸망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시험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주시고 싶어도,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어도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에야 복과 은혜를 주신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되고 저주가 된다. 그런 것들을 가지지 않았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죄를 짓지 않았으면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구하기 전에 믿음과 마음을 인정받아야 한다. 복을 받기를 힘쓰기 전에 먼저 믿음을 올바로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 특히 고난의 때에 고난을 벗어나는 데만 신경을 쓰고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만 힘을 쓰지 말라. 이 고난의 때에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그 고난을 통해서 내 믿음의 실력을 기르고 하나님께 복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고난의 때에도 죄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인정받으라.

둘째, 인생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를 위해 그들로 배고프게 하시고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하셨다. 그들은 광야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의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만나만 주신 것이 아니라 마실 물도 주셨다. 그들이 물이 없다고 하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서 마시게 해주셨다. 그리고 입는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4절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매일 먹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입을 옷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다.
“너를 낮추시며.” 고난에 처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고난의 때에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늘의 만나 같은 은혜를 베푸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떡은 인간의 육신만을 위한 양식이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만 가진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배가 부른 것만으로는 참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영혼의 필요가 채워져야 완전한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 영혼의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받으실 때에 이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어도 죽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사십 일 동안 육신을 위한 양식을 먹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더니 죽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육신의 양식을 먹지 말라거나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육신의 양식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보다 영혼의 양식을 더 귀하게 여기고 더 먼저 구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해 주신다”고 하셨다.

셋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다. 5절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징계”의 ‘야사르’는 ‘고치다, 교육하다’는 뜻으로 훈계나 채찍 등을 통해서 마음의 자세나 행동방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하나님께서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듯이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기간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고 야단치고 혼을 낼 때 자식이 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올바르게 살게 하려고 징계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사랑의 목적으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라.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히브리서 12:5-13을 보라. “7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광야길이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그 광야생활을 통해 내 믿음을 확인하고 믿음이 강해지고 가나안땅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다면 그 힘든 광야생활은 내게 고난이 아니라 복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아프고 힘들어도 그 징계를 통해서 내 믿음이 올바르게 된다면 그 징계는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근심하게 하시고 고생하게 하실 때에 절망하고 원망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근심은 나를 새롭게 강건케 복되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비록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하면 만나주시고 응답하신다. 예레미야애가 3: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믿음을 강하게 하라.

모세는 여기서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돌아보라고 하는 동시에 가나안땅을 바라보라고 한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내일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고난의 때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힘든 광야 길을 걸어 갈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7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광야는 그들이 살 곳이 아니라 훈련과 연단을 위해서 통과하는 곳이었다. 그 광야생활을 통해서 믿음을 새롭게 하고 훈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가나안 땅은 어떤 곳인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모든 것이 풍족한 곳이다. 7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광야에서는 마실 물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가나안땅은 산이나 평지에나 시내와 샘이 흐르는 곳이다. 
8절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광야는 먹을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만 먹었지만, 가나안땅은 모든 곡식과 나무의 결실이 풍성해서 항상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다. 9절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가나안땅은 철과 동이 풍족한 곳이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필요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이런 놀라운 복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게 될 것이다. 10절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의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때에,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이 말씀을 주셨다. 이런 아름다운 땅을 바라보고 곧 그 땅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이 주실 복과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살라. 광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장차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 삼고 살아가라.

하나님은 뜻 없이 일하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항상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알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알고 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를 힘쓰라.
하나님이 나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데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다.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기 위해 나를 낮추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으라. 죄를 버리고 애굽 생활의 습관을 벗어버리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훈련하라. 그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가도록 준비하는 믿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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