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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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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오늘 본문에 이르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존재의 변화와 이에 뒤 따르는 실생활의 변화에 대하여 언급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존재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화인데, 하루는 어느 목사님 댁에 평소에 잘 아는 장로님이 찾아왔습니다. 대청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나서 장로님이 돌아가려고 마당에 발을 내려놓다가 마루 아래에 던져둔 깨어진 놋요강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마루 아래 있는 저 놋요강을 저를 주십시오”
“아니 그까짓 깨진 요강을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요” 
장로님은 깨진 놋요강을 신문지에 싸가지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장로님이 다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빛이 반짝이는 놋으로 만든 밥그릇과 국그릇 한 벌을 내어 놓았습니다. 

“웬 그릇입니까?” 
“목사님, 이 그릇이 어디서 난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몇 달 전에 저에게 깨진 놋요강을 하나 주신 적이 있잖습니까? 그 요강을 녹여서 이 그릇들을 만든 것입니다.”

녹슬고 깨진 놋요강과 그것을 녹여서 만든 밥그릇과 국그릇을 비교해 보세요.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의 우리의 상태와 믿기 이전의 상태를 비교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경험한 변화는 깨진 놋요강이 빛을 발하는 새 그릇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이유는, 놋그릇은 처음 한 동안은 새것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아지고 떨어져 금이 가고 깨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본질이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과거에 서양에서는 연금술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연금술사들은 구리나 철이나 납과 같은 값싼 금속을 가지고 은이나 금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구리나 철이나 납으로 금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사람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 역시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법이나 도덕규범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눌러서 외부로 표출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소위 ‘억제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법과 도덕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은 예의 바르고 양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법과 도덕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타락한 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은 존재적인 차원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새롭게 지음 받은 존재를 말합니다. 이 시간,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루어지는 본질적인 변화에 대하여 말씀해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데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포도나무의 비유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가지는 포도나무로부터 진액을 공급받아 자라며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가지가 포도나무와 연합되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진액을 공급받는 한 둘은 한 나무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면 그 때부터는 더 이상 포도나무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진액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말라 죽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가지들은 예수 믿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따른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영적 생명이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때에는 포도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처럼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 성도들의 관계를 머리와 몸과 지체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머리와 몸은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몸의 각 지체들도 몸을 통해 머리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지체는 몸에 속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누리고 지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즉시로 죽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는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 또는 몸과 지체의 관계로 비유한 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연합을 이루는 관계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성경은 이 변화를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어느 날 밤에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뵙자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이처럼 예수님을 칭송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칭송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영이 거듭나게 됩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신,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하신 대로, 예수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화하신 결과입니다. 어두운 우리 마음의 눈을 성령께서 밝혀 주시고, 완고한 마음을 열어주셔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그 자체로서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방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방주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방주와 같은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구원을 받고, 밖에 있으면 멸망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여러분의 유일하신 구주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시다면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이름들이 부여됩니다. 

먼저, 성도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은 거룩한 무리라는 뜻을 가진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귀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지로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지옥 백성이었는데, 이제는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5장 8절에 보니 “빛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친히 믿는 자들을 일컬어 “나의 형제요 친구”라고 하셨습니다(마 12:50; 요 15:14).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우리의 영적 신분을 자각하고 이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은 실생활 속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곧 선민이었습니다. 모세 오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얼마나 특별하게 대우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갈라 그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매일 아침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으며, 반석에서 생수를 내서 마시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대적들의 손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에게 특별대우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요구하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을 비롯해서 모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우상들을 숭배하면 안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을 숭배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 미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율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생활 규례가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그 중에 정결하고 의롭지 않은 규례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기만 하면 순결하고 정직하고 지혜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절로 과실을 맺습니다. 가지가 과실을 맺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포도나무가 진액을 원활하게 공급해 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맺는 과실이란, 곧 성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선하고 아름다운 행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선한 행실을 함으로 이웃 사람들로부터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면,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반면에, 악행을 하여 이웃 사람들의 비방을 받는다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 이하에 보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이 같이 비교해서 말씀합니다. “19)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으며, 많은 시험과 유혹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늘 자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려고 각오하지 않으면 세상 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전에 티비에서 어미 갈매기가 새끼를 훈련시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공중에서 쏜살 같이 내려가서 물속의 고기를 낚아채는 훈련을 시키는데, 미숙한 새끼 갈매기들이 거리와 각도를 잘못 측정해서 물이 아닌 해변에 떨어져서 곤두박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여우에게 잡혀 먹히는 새끼 갈매기들도 있었습니다. 공중을 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으며, 갈매기니까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매기도 방금 설명한 것처럼 실수로 땅에 곤두박질치는 일이 생깁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욕심을 따라 살면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실족하여 믿음생활에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4장 17절 이하에 이 같이 권면합니다.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어린 갈매기가 숱한 시행착오와 연습을 통해서 원하는 비행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듯이. 성도들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 부단히 힘써야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치 결단력이 있고 영적 자질이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삼년 반이나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대적들에게 붙잡혀 가시자 다 주님을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 하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같은 나약한 상태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4)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하였더니 오순절 날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담대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며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 풍조를 따라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생활을 하면 그 심령이 고통을 느낍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거짓말이나 위선적인 행동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을 하면 신앙양심이 가책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마음이 편치 않고 하나님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더러운 옷은 오물이 묻어도 표시가 나지 않지만, 깨끗한 옷은 작은 오물이 튀어도 금방 표시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늘 깨끗한 신앙양심을 갖기 위해 회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한 번 두 번 악을 행하다보면 양심이 마비되어서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유혹이 다가올 때 단호하게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기도했던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심령을 새롭게 만들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의 은혜로 인해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져서 옛 사람이 좋아하는 세속적인 생활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답게 성결한 생활을 힘차게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우리는 새해 벽두에만 새로운 결심을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성도답게 날로 새로워지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늘 이 말씀이 성도님들의 삶을 통해서 명백하게 입증되는 금년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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