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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그 분이 오신 목적은 (롬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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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오신 목적은 (롬 5:12~21)


얼마 전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스티븐 보스워스’라는 분이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6자 회담의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간 사람입니다. 그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성탄절을 보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다시금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계절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목적을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탄 본문으로 많이 사용하는 마태복음 1장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들은 결혼하기 전에 약혼관계였습니다. 약혼은 거의 결혼과 동등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 동거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의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태기가 느껴집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아챘습니다. 요셉은 많은 사람에게 그 사실을 소문내지 아니하고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조용히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약혼의 관계를 파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셉아!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의 말씀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니라.” 예수님이 탄생하실 목적을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해야 할 이유입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아이를 출산해야 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탄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 그 목적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방관이 달려오는 것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입니다. 의사가 달려오는 것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본문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죄는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사망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한 사람,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온 땅위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선고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아름답게 만들어놓으시고 너는 얼마든지 여기서 재미있게 생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이 선악과만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뱀이 와서 아담을 유혹했습니다. 뱀은 바로 사탄의 형상입니다. 사탄이 와서 아담을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왜 저 열매를 금했겠느냐? 저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봐,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까 봐 그런 거 아니냐?” 

아담은 그 꾐에 넘어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죄의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 열어준 문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죄가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이 죄의 영향력은 아담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한 번 더 읽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죄와 아무 상관없는, 아담의 시대에 살지 아니했던 사람들까지도 그 죄의 영향력 안에서 사망이 그들 속에 왕노릇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우리는 죄의 전가라고 말합니다. 죄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염되는 것입니다. 

콜레라 걸린 사람이 어느 동네에 들어가면 그 동네 전체가 콜레라균에 전염되듯이 죄가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 아기가 태어나는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그는 아담의 후손으로 오기 때문에 이미 그는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죄가 와서 인간에게 고통이 되었습니다. 사망이 선고되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비참한 지경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더더욱 우리는 여기서 대표성의 원리를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전 인류가 다 죄의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적인 성경의 사고방식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어느 날 홍수 사건 이후에 포도주를 먹고 취해서 옷을 다 벗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중에 함이라는 아들이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다니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샘과 야벳은 지혜로운 아들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감히 아버지의 하체를 보면 안 되지’ 하고 뒷걸음질로 들어와서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이불로 잘 덮어드렸습니다. 노아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함이라 부르는 가나안을 저주 아닌 저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함의 후손들이 아프리카 인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 보면 성서적으로 저주를 받아서 얼굴의 색깔이 검은 색깔이 되었다고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이 함이 잘못 했지만 그 후손들이 동일한 영향력 안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함께 여리고 성을 정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전에 한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그 모든 노획물들은 하나도 취하지 말아라.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그 노획물을 취했습니다. 시날산 외투 몇 벌과 은 이백 데나리온을 가져다 감추어 놨습니다. 나주에 혼자 쓰려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그들의 다음에 아이성 전투를 하는데 아이성 전투에서 아주 약한 대적을 만나서 철저하게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왜 패배했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범죄한 자가 있다.” “아니, 누가 범죄했습니까?” 하나님은 결국 아간을 찾아내십니다. 그래서 아간의 일족이 다 몰살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범죄인데 어떻게 전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백성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전 이스라엘 땅에 온역이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 그 영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사망으로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했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에서 구속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 마지막 절에 보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모형이라는 것은 원형이라는 말도 됩니다. 예수님은 아담과는 정반대의 다른 역할을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담은 인류에게 죄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의 물줄기를 차단하고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한 선상에서 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죄가 우리에게 들어왔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선포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 간다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가방 싸고 막 나갑니다. 그러면 아이가 학교 간 다음에 아이들 방을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여러분 자녀의 방은 깨끗합니까? 우리 집 이야기를 해서 안 되었지만 꼭 전쟁을 치른 것 같습니다. 잠옷과 옷들은 날아다니고 책도 흩어져 있고 난리법석입니다. 어지렵히기는 아이들이 어지럽히고 치우는 것은 집사람이 가서 치웁니다.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목회를 처음 할 때 섬기던 교회가 월계동교회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상계동쪽에 열린교회라고 있는데 그 교회가 예전에 처음 개척하고 예배를 드릴 때 보면 예배당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9시에는 교회학교가 쓰고, 11시에는 어른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점심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식당이 따로 없으니 그 예배실 바닥에 상을 폅니다. 그럼 거기에 구역에서 준비해 온 밥과 국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습니다. 먹고 나면 바쁜 사람들은 “아이고, 미안해요. 먼저 가야되겠네요.” 그리고 먼저 갑니다. 새신자들은 보통 먼저 갑니다. 그럼 누가 치우게 되는 겁니까? 여신도회원들이나 주방 담당한 분들이 그것을 다 치웁니다.

여러분! 교회도 그렇습니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도 그렇습니다. 사회도 문제를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요즘 ‘세종시문제’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 아닙니까? 선거를 하는지 뭐 무슨 목적인지 세종시를 선포해가지고 문제를 만들어 놨는데 이제 그걸 또 치우느라고 한 사람이 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해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이 문제를 만들어놨는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둘째사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에게 생명과 구원이 선포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 한 번 좀 더 나아가서 보겠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사람의 범죄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가 흘려온 은혜의 선물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첫 한사람과 마지막 한사람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1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서 사망이 왕 노릇 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결국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음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망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제는 생명이 왕노릇 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 정죄라는 건 무엇입니까? 죄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전 인류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담으로 인해서 무죄가 선언 되었다는 말입니다.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한사람의 의로운 행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전 인류에게 무죄판결이 선언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한 절 더 읽어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의 불순종이 모든 사람을 죄인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에 보니까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복종하심으로 인류를 죄악가운데 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는 살리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유죄판결을 주고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는 무죄판결을 주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망을 선고하고 둘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둘째아담인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어떻게 우리의 생명과 축복을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대속의 원리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보면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면 자신대신 짐승이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죄를 지은 것만큼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번제물을 드립니다.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짐승이 피를 흘리고 짐승이 제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죄가 용서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원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제물이 되셔서 그가 십자가의 제단에 죽으심으로 피 흘리심으로 전 인류가 그 죄값을 치르고 구속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 마찬가지이실텐데 우리 한국 분들은 보통 식당에 한 서너명이 가서 식사를 합니다. 어떤 모임 때문에 어떤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면은 계산을 할 때 보통 우리는 따로따로 냅니까? 한 사람이 다 냅니까? 한 사람이 다 냅니다. 다른 사람이 먹은 밥 값을 왜 한 사람이 다 냅니까? 자기 것 자기가 내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한답니다. 여러 명이 식사를 해도 더치페이라 그래서 각자 자기가 먹은 것만 내면 됩니다. 식탁에 자기가 먹은 거 올려놓으면 한사람이 다  걷어서 가져다 계산하면 다 끝납니다.

하지만 우리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가 체면이 있지 세상에 그렇게 쩨쩨하게 따로따로 내. 오늘 점심은 내가 낼 꺼야.” “오늘 저녁은 내가 낼꺼야.” 좋은 면이 있고 안 좋은 면이 있기도 합니다. 뭐 내일 당장 먹을 게 없어도 체면 때문에 카드를 긁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 그거 내가 점심 한 끼 못 사겠어. 내가 사지.” 참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밥값을 내가 대신 내주는 것이 바로 대속입니다. 다른 사람의 밥값을 내가 치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신 치러주시는 것입니다. 밥 값을 치르는 거나 죄 값을 치르는 거나 똑같은 거예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죄 값을 다 치러주시는 걸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대속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희생당하시고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고 내가 의로워진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찰스콜슨’ 이라는 아주 유명한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재판을 받고 오랫동안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성경을 읽고 회심을 경험합니다. 그의 인생이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복역을 마치고 나왔을 때 그는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서 주로 재소자를 상대로 선교하는 일을 합니다. 

그가 여러 교도소를 방문하는데 ‘휴메이트’라고 하는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도소는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교도소였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두 명의 그리스도인에게 “당신들 마음대로 교도소를 운영해 보라”며 교도소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교도소를 운영합니다. 참 재미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여주에 ‘아가페 교도소’라고 해서 기독교회가 교도소를 세우고 운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게 다 예배로 드려집니다. 어디를 가도 자유롭고 교회하고 똑같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 보니 재소자들의 얼굴에 다 미소가 있습니다. 얼굴이 다들 밝습니다. 어디를 가도 성경말씀이 벽면에 있고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도소가 아주 깨끗합니다.

그는 여기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당시 미국과 브라질의 재범률, 교도소에 살다 석방되어 나간 후 다시 범죄를 저질러 들어올 확률이 75%입니다. 10명이 나가면 7명은 다시 범죄를 저질러 붙잡혀 들어옵니다. 그러나 ‘휴메이트’ 교도소는 4%입니다. 10명이 나가면 0.4명만이 죄를 지어서 들어오게 될뿐, 다들 사회에 적응해서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비결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들을 안내하는 재소자가 그를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방은 형벌방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예전에 그 곳은 고문 방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교도관들이 재소자가 말을 안 들으면 때로는 고문도 하고 형벌도 줍니다. 그 고문방은 아주 무서운 방입니다. 그 방에는 딱 한 사람이 갇혀 있습니다. 문이 철커덕 열리는데 한 사람이 그 방에 있었습니다.

‘찰스콜슨’의 글을 보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그 형벌방에 갇혀 있는 죄수를 보았다. 그 죄수는 바로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그리스도 그분이었다.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 분이 우리를 대신해 형을 살고 계십니다. 저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우리를 대신해서 지금 형을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휴메이트 교도소의 4% 재범률의 원인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이제는 자유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사람의 영향력은 이와 같이 놀라운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전 인류를 죄를 물들였다면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전 세상을 자유와 구원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인간에게 생명과 구원과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어느 글을 읽다보니까 재미있고 은혜로운 글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새를 기르는데 밖에 놓고 기릅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추워져서 영하 20도로 내려가면 이 새들이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새들 우리를 비닐로 잘 싸주었습니다. 우리 속으로 새들을 좀 들어가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새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그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먹이를 보고 따라오게 해도 못 알아듣고. 또 가 버리고 가 버리고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 들어가면 내일 죽는데 이거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아! 저 새들하고 나하고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 통하면 내 말을 알아 들으니까.’ ‘아! 그러려면 내가 새가 되면 되겠다. 내가 새가 되면 저들에게 이 위험을 알려주고 새장에 들어가게 하겠지.’

그때 그는 번뜩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 바로 인간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 거구나. 여기 구원의 길이 있다.’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는 이 진리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하늘에서 말씀하셔도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태어나셨고 3년 동안 우리와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인 것입니다. 성탄은 너무나 좋은 날, 축복의 날이고, 은혜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속하기 위해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 인 것입니다. 성탄절에 오신 그분은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인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죄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기위해 오신 분인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여러분 마음의 방을 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겸손의 구유를 준비하십시오. 이 땅에 오시는 아기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 성탄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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