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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 (사 61:10~11)
   

오늘은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죽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감격하여 때로는 눈물을 흘리지만, 성경 전체적인 교훈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요,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크게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1:8절에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쁨은 크고 위대하며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2000년 전에 탄생하신 주님을 우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였어도 그 분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쁨은 내적인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에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서 흐뭇한 것도 아닙니다.    남보다 앞장서고, 인기가 있기에 내심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용해주시고, 나를 알아주시는 것으로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 내심으로 기뻐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개인적인 기쁨입니다.  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라는 말씀 속에 ‘내가’, ‘내’, ‘나의’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 말은 남의 기쁨이 아니라 나 개인의 기쁨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기쁨의 근원이 세상에 있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빌4:4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주님 안에서 나온 것이요, 하나님 안에서 누리고 즐기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그 분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뻐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집에 왔으면 기쁘고 즐겁게 지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는 기쁘고 즐겁고 감격스럽게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마치 구원파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과 같이 들립니다.   언제 구원받았느냐?  구원받은 날짜를 물어보면 문제가 있지만, 구원받았느냐?  아니면 안 받은 것 같으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또 진솔하게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그의 인생이 확 달라집니다.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의미와 가치가 분명해지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우리 성도들의 기본 중에 기본에 속하는 확신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확신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시각장애인들을 보십시오.    이것이 길이요, 걸어갈 수 있는 땅이라는 확신 또 확신이 있어야 발을 땅에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들을 지팡이를 가지고 두드려 봅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지금 가는 이 길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확신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동창들이 한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면서 회장 되는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구원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오늘 이 순간 죽어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분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150명 정도의 교인들 중에 20여명 손을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믿지 않을 때는 구원받지 못한 것도 같다, 긍정적인 생각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도 있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였는데, 한 20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 나는 분명히 구원받지 않았고, 지금 죽으면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손을 안 들었는데, 구원받았다는 것이오, 아니면 확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모든 교인들이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 목사님이 오셔서 그냥 설교나 하시지 누구보고 손을 들어라 내리라고 하느냐 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아 구원의 확신을 가진 분들 중에도 손을 들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악한 사탄 마귀는 그것을 노리면서, ‘네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에 손을 들지 않은 것이야, 너 같이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의심의 영을 넣어주게 됩니다.  구원의 문제가 걸려 있는데, 기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손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데, 직장 생활하고, 친구들과 다투며 지낼 때에는 이러다가는 지옥에 갈 것 같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느낌이나 감정을 수반할 수 있지만, 사실에 근거하여 믿었다고 하면 하나님은 느낌이나 감정을 보시지 않고, 믿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고후13:5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하시면 지금 주님은 여러분에게 들어와 내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믿음의 경지에 이르고 수준이 있어 구원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것은 공로사상입니다.    공로사상, 율법주의 신앙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죄의 형벌, 심판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리셨습니다.  사53:6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우리 주님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은 모든 죄, 우리들 마음속에 스쳐간 모든 생각, 우리의 말 가운데 신실하지 못하였던 모든 허물까지 죄가 없으신 우리 주님이 대신하여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그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벧전2:24에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법률을 제정할 때에 많은 원칙을 적용하면서 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 중에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한번 판결이 내려진 어떤 사건, 확정 판결된 사건에 대해서는 두 번 이상 심리,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상의 원칙이 있습니다.  형사법에 적용되는데, 이것이 민사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형사사건에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일반형법에 의해 누구도 같은 범죄로 복수로 처벌되지 아니한다.”라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죄에 대하여 죄가 없는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은 것으로 전 인류의 죄는 보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법률가들이 하나님에게 따질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우리 하나님도 이미 알고, 아들에게 내린 죄와 형벌은 다시 묻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신 최후 최선의 방책인 아들을 제물로 대신하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해주신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구원해주시기를 작정하셨습니다. 

요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인정하고, 주인으로 모시면 구원받았습니다.  

롬10:9-10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으로만 믿는다는 말을 하지 마셔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어야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우리 주님도 우리를 시인하십니다. 

마10:32-33에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이 보낸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십니다.

요일5:12-13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습니다.   어떤 강사목사님이 오셔서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라고 하시면 “아멘”으로 화답하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예수 잘 믿으면 구원받을 것 같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시면 손을 들지 말아야 합니다.  금식 기도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바친다고 하여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꼭 방언으로 기도해야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엡2:8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예수님이요, 예수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롬6: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라는 말은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월버 채플린이라고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무디 선생의 뒤를 이어 미국 전역에 부흥운동을 일으키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젊었을 적에는 도무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여 괴로워 하다가 어느 날 무디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예수를 믿는다고 믿어왔는데, 도무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무디 선생이 요한복음 5장 24절을 펴 주고는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무디가 묻습니다.  
“이제는 네가 구원받은 자임을 알겠는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으시오.” 그 다음에 다시 묻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자임을 믿겠는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읽으시오.”  세 번째로 다시 묻습니다. 
“이제는 네가 구원받은 자임을 믿겠는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무디가 노하여 소리를 칩니다.  
“자네가 감히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의심하는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이미 생명을 얻었다’고 하시면 얻은 것이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면 옮긴 것이지’, 네가 감히 무엇인데 하나님을 의심하는가?” 라고 호통쳤습니다.

바로 이 순간 채플린이 거꾸러집니다.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분명히 내게 말씀해 주셨는데도, 내가 하나님을 의심하는가?!”  
그래서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후에 채플린은 미주 전 지역에 ‘구원의 확신’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를 앙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의심을 버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집시다. 구원을 증거하고 찬양합시다. 

오늘 본문의 이사야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구원의 옷으로 입혀주시며, 의의 겉옷을 덧 입혀주시고, 신랑의 사모를 쓰고, 신부가 온갖 보물로 예쁘게 꾸미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 같이 보아주셨습니다.  

구원의 옷을 입혀주셨는데, 이것은 입혀주신 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하시는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불렀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 때에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창3:21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아담의 허물을 가려주기 위하여 한 마리의 짐승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흠 없는 어린 양이 대신하여 죽고, 구원하여 주시는 구속의 원리를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스가랴3:4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옛날에 옷이란 신분을 나타내주었습니다.  이제는 종의 누더기를 벗기고, 아들의 옷을 내어다 입혀주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로 받아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천국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왕의 초청을 받아 왕궁에 들어가는데, 아름다운 예복을 입혀줍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을 입혀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 62:3-4에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헵시바’라는 말은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 있다”는 뜻이고, “쁄라”라는 말은 “결혼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옷을 입고 나오는 우리를 신부와 같이 여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받아주시고 있습니다. 

사62:5에서 “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스바냐3:17에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성숙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에서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예수님이 심겨졌습니다.  의롭게 살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떨어졌습니다.  

   느헤미야8:10 말씀을 가지고 설교한 적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이름을 높이고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 자신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을 덧 입혀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쁘게 영접하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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