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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낡은 껍질을 벗고 갑시다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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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껍질을 벗고 갑시다 (엡 4:25~32)


오늘은 200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얼마 전에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나게 표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분이 ‘50대 때의 일은 생각이 나는데 60,70대는 살아보지도 않고 그냥 넘어온 것 같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시편 90편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빠름은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시대가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합니다. 30대는 30킬로미터의 속도로 가고, 40대는 40킬로미터, 50대는 50킬로미터, 60대는 60킬로미터, 70대는 70킬로미터의 속도로 간다고 합니다. 나이를 더 먹을수록 생각과 행동에 더 여유로움을 가져야 하는데 도리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덧 50킬로미터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의 빠름을 느끼면서 누가 한 말인지, 그리고 그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당신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죽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울겠지만 그때 당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 글을 읽을 때 이 말이 제 가슴에 와 닿았고 아주 오랫동안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말이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인 우리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게 새겨 볼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어줄 것 같습니까? 많은 분들이 나의 죽음을 슬퍼할 것 같습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슬퍼 울 때 나는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지막 순간에 기뻐 웃을 수 있는 삶을 위해 내가 어떤 부분들을 더 점검하고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새해가 다가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달력을 바꿔 걸고, 수첩을 바꾼다고 시간이 새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늘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롭게 주시는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들의 낡은 껍질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합시다.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이 벗을 옛 사람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 벗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에서 찾아 기록해 보았습니다. 거짓, 분노, 도둑질, 더러운 말,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 악독, 노함,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악의 등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놓고 묵상하는 가운데 이러한 내용들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잘못된 언어 습관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잘못된 감정습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잘못된 행동습관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습관들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도 별 의미가 없고 더 발전적이고 성숙한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잘못된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주어지는 시간을 축복의 장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물로 주시면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잘못된 언어의 습관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중에 25절과 29절 말씀입니다. 2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9절의 함께 읽어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은 습관입니다. 말을 할 때 큰 소리로 싸우듯 말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이고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에 예의와 품위가 있으면 더 좋습니다. 사람의 이를 이빨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짐승의 것을 말할 때 이빨이라고 말하고 사람의 것은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치과에 한 환자가 찾아와서 ‘이빨 좀 봐주세요. 윗 이빨도 아프고 아랫 이빨도 아프고 모든 이빨이 신통치 않아 큰일입니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러자 의사가 ‘눈깔은 괜찮고 뱃대기와 대가리는 아프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답니다. 말은 순화되어진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거칠고 격한 언어는 말하는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입힙니다. 

말과 관련해서 우리들은 거짓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 계명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매우 큰 죄로 인식하면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살인과 간음과 동일한 죄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혹은 자신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인정받고 싶어서, 혹은 잇속을 차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왜곡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말 가운데 ‘아’하고 ‘어’하고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인데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아’와 ‘어’가 다릅니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 사실이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거짓말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시킵니다. 

거짓말은 너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신뢰의 다리를 허물어뜨립니다. 신뢰의 다리가 허물어지면 서로에게 아픔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말에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말, 기업인의 말, 노동자의 말, 선생님의 말, 학생의 말 심지어 종교인의 말까지도 신뢰를 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거짓말로 인해 신뢰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말에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가운데 있는 크고 작은 거짓말의 낡은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혹시 한 해 동안 저의 말의 실수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있으시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더 긍정적이고 사랑이 담기 말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벗어야 할 또 하나의 낡은 껍질은 잘못된 감정의 습관입니다. 26,27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화를 아예 내지 말라고 한다면 매우 비현실적인 말로 들릴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화가 마구 번져가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화에게 굴레를 씌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궁이 안에서 타오르는 짚단은 밥을 끓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궁이 밖으로 나온 불길은 집을 다 태우게 마련입니다. 

해가 지도록 품고 있는 노여움은 결국 자기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시커먼 잿더미로 만들고 맙니다.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우리 마음에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의 감정이 자라고 있을 때입니다. 그 분노로 인해 관계가 깨지고 상처를 주고 받는 것입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마귀의 특성이기에 마음에 분노의 감정을 가지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반면에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30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화를 내는 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짜증, 슬픔, 미움의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이 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는 것 자체를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평생을 살면서 화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분명히 화를 나게 만든 상대가 있습니다. 화가 나면 그 상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시간이 나를 오랫 동안 지배하고 있으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함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능력의 불꽃이 꺼집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노, 화는 마귀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009년도를 보내면서 우리 마음에 있는 잘못된 감정의 습관인 분노, 화의 낡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 합시다. 성령님께서 근심하는 삶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벗어 버려야 할 낡은 껍질은 잘못된 행동의 습관입니다. 28절의 말씀과 3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8절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는 습관을 버리고 구제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하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고 용서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것을 해소할 방법을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자서 풉니다. 어떤 사람은 먹으면서 풉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풉니다. 운동을 해서, 오락을 해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벽, 즉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로 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통제하지 못하면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을 하면서 충동구매를 해서 가정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을 푸는 습관을 보면 대체적으로 병리적인 현상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아픔을 주는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월요일마다 강의를 들을 때 중독성에 대해 한 학기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 가운데서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야동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직장에서 실적과 인간관계, 그리고 퇴직 문제들로 인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이익과 성과를 위해 불의와 연결되는 고리에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어느 사회단체든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문제가 아니라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의 습관에 거룩함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습관만이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스트레스를 바르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들의 행동 습관에 대해 낡은 껍질이 있다면 그것을 벗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 할 준비를 합시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삶의 습관들을 점검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낡은 언어의 습관, 감정의 습관, 행동의 습관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원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민수기 6장 24-26절의 축복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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