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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눅 2: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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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눅 2:41~52)

    
설교내용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물건도 잊어버리고 사람 이름도 잊어버립니다. 우리 한 장로님 유모가 많은데 장로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서울 딸네 집을 가느라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습니다. 큰딸한테 갈까? 작은딸한테 갈까? 하다가 작은딸에게 가자 그래서 택시를 타고 불광동 가세요. 한참을 가다가 이분이 자기가 큰 딸 집에 가는지 작은 딸 집에 가는지를 깜빡 잊었어요. 

그래서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내가 지금 어디 간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기사가 깜짝 놀라면서 할머니 언제 타셨어요. 하더랍니다. 깜막 깜막 하는 거예요. 아무리 깜막, 깜막 해도 부인 얼굴 잊어버리면 안 되고 남편 얼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저희 장모님은 손자며느리를 못 알아 봐요 저희 며느리가 집에 오면 이 색시는 누구여 하시지요. 몇 번을 가르쳐 주어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 잊어버려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사시기 바랍니다. 

끈으로 매 달고 다니세요. 놀이 공원에 가보니 아이 손과 부모 손을 끈으로 매달고 다니는 분들이 잊더라구요. 절대로 잊어 버리지 않겠다는 부모의 결심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핸드폰을 자주 잊어버리는 분들이 끈으로 매달아서 목에 걸고 다니지요.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그편이 훤씬 좋습니다. 잊어버리면 손해가 많아요. 마음 고생 해야지요. 찾아다니느라 몸 고생해야지요. 그뿐인가요 사람들에게 칠칠맞다 소리 듣지요. 끈으로 묽어서라도 안잊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끈으로 묽으세요. 무슨 끈으로 묽어요 믿음의 끈으로 묽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끈으로 묽어서 가슴에 달고 다니세요. 그래서 어디를 가나 주님과 같이 동행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여자가 딸 결혼식이라 미장원에 갔어요. 미장원 주인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여자들 만나면 수다가 많지요. 그러다가 오늘 큰딸 결혼식이 있으니까 머리손질 좀 빨리 해주시겠어요? 시간이 없으니까, 30분 안에는 완성해 주세요." 라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미장원 주인은 "30분 안에요? 네, 알겠어요.“라고 말하며, 한참 손질을 하다가, "이왕 오신 거.. 머리를 마는 게 어때요? 훨씬 보기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훨씬 보기 좋다는 말에 솔깃한 이 여자는 "그럼 어디, 간만에 파마나 해볼까."라고 말하고 머리를 말았습니다. 꼭 3시간이 걸렸습니다. 머리를 만 채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온 이 여자는 집안의 공기가 썰렁하고 험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에 큰딸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봐야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급히 심방을 가느라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왔어요. 그런데 오늘 중요 한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전화를 깜막 잊고 못 한거예요. 어쩌나 하다가 심방 대원으로 오신 권사님에게 권사님 핸드폰 좀 줘 봐요. 내가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왔네 하니까? 권사님이 핸드폰을 내 주면서 아이고 목사님 벌써부터 깜막 거리시면 어떻게 해요. 글쎄 말이요 그리고 전화를 하려고 보니까? 핸드폰이 뭔가 이상해요. 권사님 이것 핸드폰 맞아 하니까? 이렇게 쳐다보더니 아이고 내 정신 좀봐 핸드폰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리모콘을 가지고 왔네 하는 거지요. 

우리 집사님 가운데 호두과자를 만들어 파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호도 과자를 별로 안 좋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호두과자 하면 호도가 들어 있어야 하는데 호도가 없고 있으면 한 조각 정도 들어 있어서 그때부터 별로 호도 과자를 안 사먹게 되었지요. 그랬는데 우리 집사님 호두과자를 먹으면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호도가 많이 들어 있는지 한 잎 물으면 그냥 호도가 씹히는 거예요. 호두과자에는 호도가 들어 있어야 하지요. 찐빵에는 앙꼬가 들어 있어야 지요. 앙꼬 없는 찐빵이 되면 안 되지요. 예수 믿는 우리 가슴에는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호도가 없는 호도과자, 앙꼬가 없는 찐빵, 예수 없는 그리스도인 비슷하지요.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좀 험한 표현이지만 세상에는 혼이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얼 빠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혼과 얼이 빠진 사람은 추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고 하여도, 아무리 출세하여 세상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의 삶에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감동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얼이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얼과 혼은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혼이고 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없으면 얼이 빠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정작 예수가 없으면 얼빠진 교회입니다.

오늘 성경의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님과 늘 같이 살던 가정이 잠시 얼이 빠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41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이 말씀을 보면 이들은 정산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주일을 꼬박꼬박 잘 지키는 가정이었습니다. 절기예배도 잘 참석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예수님이 12살 되던 해도 그들은 정성을 들여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나이를 지칭한 것을 보면 이 해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목적 외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인식을 치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12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모든 일에 자기가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됩니다. 떠들썩하던 1주일 동안의 유월절 절기가 끝나고,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모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 합니다. 예수님 가족들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무리를 지어서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무리를 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5일 정도 되는 광야 길입니다. 무서운 짐승들도 있고 순례객을 노리는 강도와 도적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길을 떠날 때 세 무리로 나누는데 맨 앞에는 성인 남자들이 서고 가운데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서고 그리고 맨 뒤에는 다시 성인남자들이 서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두유월절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무리를 지어 집으로 돌아 갑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유월절 절기가 끝나자,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 하루 길을 간 날 유숙하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저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12살짜리어린아이가 없으니 부모가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찾아 올라갑니다. 성경에는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부모들이고생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하루길인데 사흘을 찾아 헤멨다. 는 이야기이지요. 이 골짝, 저 골짝을 찾아다니고 바위 밑 골짜기 예루살렘 골목골목을 뒤지고 다닌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성전을 올라 가보았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48절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하지요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태연합니다. 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 말을 아버지 요셉은 몰랐어요.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는 우리도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잊는 것은 모든 것을 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마리아와 요셉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오래 믿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속에 예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자기가 목사요 장로요 집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속에 예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있습니다. 전에 자기 속에 예수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도 예수가 자기 속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오랫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다리를 끌고 어느 마을에 들어가 보니 입구에 서 있는 한 집에 교패가 붙어 있습니다. 너무 반가 와서 하루 묵어가야겠다. 생각하고 벨을 눌렀지요. 마침 집을 지키던 새댁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이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물었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당황했던 이 새댁은 ”이 가정은 장로님가정입니다. 제 남편이 집사이구요 저도 교회 집사입니다.“ “아니, 교회의 직분 말고 이 댁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목사님은 예수님이 계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길을 떠났습니다.

이분이 떠나고 난 다음에 새댁의 귓전에 쟁쟁거리는 소리가 남아있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정말 내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내 언어 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내 가슴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내 가정 속에, 내 일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뜻 우리 집에 장로, 권사, 집사는 있는데 예수님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 후 믿음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답니다. 예수님이 계십니까?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 관심이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보세요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 관심을 집중하지 않은 때부터입니다. 사람이 어디다 관심을 두고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부터 관심이 없어요. 한번도 중간에 찾았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43절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 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출발 하면서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찾았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한 번도 챙기지 않았어요. 관심이 다른데 가있어요. 우리도 행사에 치우쳐 예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고 봉사한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예수님을 잊어 버릴 때가 있고 내 성질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고 이렇게 관심이 다른데 돌리다가 예수님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하루 종일 가면서 자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도 하루 종일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루 종일 기도 한번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성경 한번 들쳐 보지 않는 사람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찬송한번 부르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요. 무엇이 우리를 예수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분주하게 만듭니까?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요. 세상일인가요. 어떠한 상황 어떠한 일에도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게 여러분의 관심을 집중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성전에 와야 찾습니다. 성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을 아무리 뒤져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성전에 와야 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 말씀이 정답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계십니다. 이 집은 아버지 집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계십니다. 이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곳에서 주님을 찾는 자들이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교회에 왜 오셨습니까? 부자는 세상에 가야 있습니다. 교회는 무슨 사업장도 아닙니다. 사람 그리워 나오는 곳도 아닙니다. 쾌락과 재미는 세상 밖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옷 잘 입은 사람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교회에 나온 것은 바로 예수님 만나러 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가야 합니다. 교회 오면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예배 속에서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 속에, 우리가 부르는 찬송 속에,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 속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 속에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왜 그렇게 낙심됩니까? 왜 그렇게 불평이 생깁니까? 왜 미움이 생기고 원망이 생깁니까? 자기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 이글거려야 합니까? 왜 자기 왕국을 무너뜨리지 못해서 근심하며 살아야 하는 겁니까? 예수님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기바랍니다. 다 치유 될 줄로 믿습니다.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주님만은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주님만은 잃어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사람은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으로 붙잡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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