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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한 해의 끝’을 ‘최후심판’에 비추어보는 지혜 (마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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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을 ‘최후심판’에 비추어보는 지혜 (마 3:10~12)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인간 인생의 시작인 출생이 있으면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이 있습니다. 한해의 시작이 있으면 한해의 끝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덧 금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금 주간은 송구영신의 주간으로 우리가 새해를 바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뜻 깊은 주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며 보내느냐는 것은, 나에게 새해 출발의 방향과 가치를 만들어 주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금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최후심판에 대한 말씀을 묵상함으로서 새해를 맞이하는 값진 지혜를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최후심판에 대해서 직접 또는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인생의 최종적인 결산과 같은 ‘마지막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온갖 쓸데없는 말/새 번역)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12:48)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1) 가라지 비유(마13:25-30)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30)

2) 열 처녀비유(마25:1-13)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25:10-13)

3) 달란트 비유(마25:14-29)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25:23)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25:30)

4)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도 심판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두 번째 오시는데, 첫 번째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성탄절이고, 두 번째 오심은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재림의 때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분이며,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과 우리 인류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12) 
  
예수님 자신도 심판의 주님으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5;2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25:32-34)......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제자들은 심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9-10)

특히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마지막 심판을 하나님의 보여주심으로 그 장면을 미리 보았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3-15)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심판은 심각한 것입니다. 이 심판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은 종국적으로 바로 이 심판에서의 구원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심판에 대하여 바울이 로마총독 ‘벨릭스’에게 설명할 때에 벨릭스는 두려움을 가질 수뿐이 없었습니다.(행24:25)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우리는 한 해의 마무리 하면서 한해의 끝을 심판에 비추어 깨닫는 개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혜로움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의 깨달음은 

  1)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책임은 확신 있는 믿음과 구원 받은 자로서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구원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2-24)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자의 의무에 책임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믿음과 의무에 대한 책임의 소중함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2) 인생에 대한 보상과 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하시고 칭찬하시는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형벌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3) 심판의 주체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평가가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영광과 기쁨을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4) 심판을 넘어서는 성도의 인생이 기쁨이고 감사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시 그리고 한 번 더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눅13:6-9)
  
‘스쿠루지 효과’ 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욕심쟁이 스쿠루지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를 미리 알면 지금가지의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을 교정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의 때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한해가 지나간다는 것은 심판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쭉정이와 알곡 중에 어느 인생을 살고 있느가?’ 질문해보고 지혜롭게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1833년 스웨덴에서 노벨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에 난 가사를 보고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인즉슨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동명이인(同名異人)을 잘못 알고 "노벨이 죽었다"하니까 그 노벨인 줄 알고 당장 '노벨 사망하다'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있는 기사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사람들은 나에 대하여 무엇으로 결론을 맺으며, 어떻게 평가될 것 같습니까? 또 주님은 여러분을 좌측과 우측,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 중 어느 쪽으로 분류 심판하실까요? 
  
연필 끝의 지우개는 잘못 쓴 글씨를 지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의 끝은 잘못 살아 온 우리의 삶을 지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내게 잘못 되어진 것을 깨닫고 반성과 함께 회개하며 새로운 다짐을 가지십시다.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 지혜로 한해를 마감하십시다. 그렇게 함으로, 맞이하는 새해를 심판을 넘어서 알곡으로 거두어지는 복된 인생으로 맞이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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