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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가 누리는 은총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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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가 누리는 은총 (롬 8:31~39) 
 
 
지난주에 이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만왕의 왕이 우리를 구원하려 오셨는데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
하시려고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한가지로 말씀하고 있
습니다. 우리의 구주로 보낸 줄로 믿고 믿음으로 영접하면 우리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
전한 신앙이며 완전한 우리의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과정에서 만점을 받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제도 김연아가 좋은 점수로 세계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야에든지 최고의 경지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 최고의 점수는 믿음으로 카운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을지라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결혼은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를 가지고 계약을 할 때 남과 남이 하나가 되어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도 자부를 몇 명보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우리 집의 자부가 됨으로 우리 집을 다 가지게 되고 자유를 얻게 되고 우리 집 어디를 가든지 우리 자부가 가는데 대해서 아무도 제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30년을 길렀던 아들을 독차지하고 마음대로 납치해서 가져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그 계약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이 없습니다. 그것이 전체 우리 가정에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아들을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갖는 모든 권세와 능력과 사랑과 축복의 혜택을 당당하게 전혀 거리낌 없이 받는 것입
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 인간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의 역할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슐라이어 마허는 말하기를 ‘믿음이란 사람의 힘의 
유한함을 깨닫고 절대자인 하나님의 품에 의지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든 일에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살아보면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 믿음은 절대자의 능력으로 모든 한계를 넘어서고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믿음이란 하나님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내게 모든 불가능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의 정신은 다릅니다. 사고가 다릅니다. 

의지와 이성이 다릅니다. 모든 논리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민족성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모든 일에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이 믿음이라고 하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유명한 톨스토이도 ‘신앙은 인생의 힘이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힘 가운데 가장 부작용이 없고 우리를 길이 길이 복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부요하시지 않습니까? 능력이 무한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부요하
심이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아들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다른 것들은 귀한 것 하나
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
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저를 믿으면 죄의 용서함을 받습니다. 아무리 큰 죄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는 죄의 능력이 없습니다. 중성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의 죄가 주의 보혈로 씻음 받음을 믿어야 
합니다. 죄를 마음대로 지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삶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지은 죄는 내 것입니다. 영원히 짐을 질 수 밖에 없고 이 저주를 안아야 되는데 지은 죄를 용서함 받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염치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믿어야 됩니다. 
  
저는 저의 사촌 형님이 계시는데 큰 집도 외동이고 저도 외동입니다. 형님은 세상으로 나가서 성공을 
하셨습니다. 옛날이었는데도 형님은 집도 잘 사시고 가정도 좋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셨
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교회를 다녀서 목회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형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가 
형님에게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형님이 그래도 사촌이지만 동생이 저 하나밖
에 없어서 큰 집도 외동이고 저도 외동이고 두 집에 아들이 딱 하나씩 밖에 없으니 저를 늘 찾아오셨습니
다. 

오실 때마다 용돈을 많이 주셨습니다. 제가 신학을 할 때도 늘 오셨고 서울에서 목회할 때도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자전거에 형님을 뒤에 태우고 가
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목회를 이만큼 하면 형님에게 한마디는 해야겠다
고 생각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형님, 교회에 나오세요. 예수 믿으세요.” 그랬더니 형님이 “나는 죄가 많
아서 못 나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할 줄을 몰랐습니다. 죄가 많아서 못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이후에 형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너무 그게 안 됐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목회하는 것을 보셨으면 너무 좋아하실 텐데.. 아무리 죄가 많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에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우리 대통령께서도 10만 명, 20만 명을 사면하는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죄, 모든죄, 흰 눈같이 희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흰 눈 보다 
더 흰 눈 보다 더 주의 흘리신 보혈로 희게 씻어 주옵소서♬ 죄를 지을 때는 죄를 크게 보아야 합니다. 그
러나 회개할 때는 죄를 예수 앞에서 작게 보고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함을 받습니다. 죄를 지
을 때는 죄를 크게 보아야 죄를 안 짓고 죄를 용서함 받을 때는 주님 앞에 아낌없이 내어 놓아서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군목으로 계셨는데 박정희 대통령께 전도를 했습니다. 박대통령께서 사단장으
로 오셨는데 참모들이 너무 무서워서 아무도 가까이 가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모들이 모두 모
여서 의논을 해서 ‘누가 가서 좀 웃으시라’고 이 말을 한마디를 해야겠는데 갈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래
서 목사님이 좀 가시라고, 목사님이야 때리겠냐고, 목사님이 좀 다녀오시라고 해서 남 목사님이 가게 되
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떨리더랍니다. 처음 오신 분이 어떻게 하실지 모르니까 떨면서 경례를 했습니다. “왜 왔습니까?” 물으니까 다짜고짜 “사단장님! 웃으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그때 사단장이실 때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세상에 웃을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휘관이 되어서 웃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웃을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세요. 예수 믿으세요.” 하니까 “나는 죄가 많아서 못 나간다.”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죄보다 큽니다. 

이세상에는 죄의 능력이 제일 큽니다. 죄는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다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죄보다도 더 높고 큽니다. 크신 능력, 죄를 사하시는 능력, 제거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죄의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끊어지게 됩니다. 

“저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로마서 10장 1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
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내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
에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
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
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라고 했습니다. 믿으면 머릿돌입니다. 믿지 않으면 버려지고 맙니
다. 

이 돌은 아무 의미 없는, 쓸모없는 돌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내 마음에 믿으면 주님은 내 마음에 모퉁이 돌이 되고 우리 가정에 주님을 모시면 우리 가정에 머릿돌이 되십니다. 집을 지을때 옛날에는 머릿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고 집의 머릿돌이 되어서 
그 집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나라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
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로마 사람이 예수님을 모시고 그 나라 국가의 머릿돌로 만들어서 2천 년 동안 
로마가 세계적인 부요와 머릿돌의 복을 받았습니다. 

로마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스위스도 예수를 머릿돌로, 영국도 예수를 머릿돌로, 미국도 예수를 머릿돌로 모셔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머릿돌로 모시지를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예수를 머릿돌로 할 때에 이 나라에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머릿돌입니다. 
  
몇 년 전에 광주에서 기독교 연합으로 100주년 기념집회가 있었습니다. 체육관에서 수만 명이 모여서 
집회를 한 주간을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 시장님이 나오셔서 “이 광주를 하나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했
습니다. 만일 서울에서 그랬더라면 큰 일이 날 텐데, 광주는 그 말을 해야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기 
때문에 광주에서는 그 말을 해야 됩니다. 그 말을 해야 도지사가 됩니다. 광주는 기독교가 그만큼 중요
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명일동에 주님이 머릿돌이 되고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기업에 주님이 머릿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광주에 있는 시장님과 그 분들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광주는 호남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었답니다. 그냥 빛 고을이었습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해서 전라도라고 부릅니다. 광주는 안 들어갑니다. 광주는 열 번째에도 못 들어가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교회가 그곳에 들어온 것입니다. 선교사가 나주로 들어갔는데 나주에 있는 지도자들이 받아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광주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서 광주가 일어난 것입니다. 

광주가 최고의 도시가 된 것은 교회가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00주년 기념행사 때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빛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비춰질 때에, 예수님
이 머릿돌이 될 때에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헬렌 켈
러 같은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머릿돌로 하니까 인류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
니다. 국가든 가정이든 예수를 쓸데없는 돌로 버리지 말고 모퉁이 돌로 믿고 영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우리는 믿어야 할 이는 예수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믿어야 할 이는 예수님입니다. 그 외에는 믿으면 안 
됩니다. 믿으면 손해입니다. 사람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그냥 도와주고 사랑하고 그냥 친하
게 지내야지 믿을 정도의 사람은 없습니다. 지식? 믿을 정도의 지식은 없습니다. 권력? 믿을 정도의 권력
은 없습니다. 믿을 정도로 친한 친구는 없습니다. 

그냥 친하면 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일기 예보를 보는데 하도 틀리니까 국회에서 기상청 높은 분을 불러다가 국회의원들이 막 따졌습니다. 그 방송을 제가 보았습니다. “왜 자꾸 틀리게 합니까? 왜 비 온다고 그러더니 비가 안 오냐고, 국민이 이걸 믿고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압니까?” 그러니까 그 청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을 걸 믿어야지 왜 이걸 믿습니까?” 이건 우리나라만 아니고 어느 나라든지 다 맞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걸 다 맞추는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기상 예보를 할 때 내일 비 온다고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일 비 올 확률이 58.7%라고 아삼하게 합니다. 그때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건 믿으면 안 됩니다.  믿을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 아들을 믿는 믿음 위에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는 것은 금방 믿지만 믿음이 자라나야 되고 큰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려면 믿음의 훈련을 
많이 거치고 교회에 많이 다녀야 합니다.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 면허증이 10년 된 사람이나 20년 된 사람이나 금방 받은 사람이나 똑같지만 문제가 있을 때 오래 운전한 사람은 노련합니다. 그러나 초보자는 당황합니다. 우리 교회 여자 집사님 한 분이 운전면허증을 받아서 차를 몰고 자기 집 앞에 왔는데, 차가 가로수 있는 데로 가니까 브레이크를 밟지를 못하고 말로만 ‘스톱!’을 외치더랍니다. 훈련이 안되니까 빨리 밟는 게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보면 밟으면 되는데 안 밟고 ‘스톱!’ 하면서 계속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차이입니다. 엑셀레터하고 브레이크하고 두 가지를 밟으면서 자동차는 움직이고 서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 두 개가 생명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안 받으면 언제나 사고가 납니다. 밟아야 할 걸 잘 못 밟을 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엑셀레터를 밟고 엑셀레터를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고 그래서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금방 믿지만 믿음의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주여! 믿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마음의 의심도 떠나가고 염려도 떠나갑니다. 누가 나를 괴롭게 
할 때, “주여! 믿습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도 괴로움이 떠나갑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주어도 “주여! 
믿습니다. 저 남편 책임져 주옵소서.” 이렇게 하면 금방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아유, 아직도 30년 
남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이것이 훈련입니다. 교회를 
왜 계속 나옵니까? 이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교회는 훈련을 시키는 곳입니다. 영적인 훈련을 시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믿음으로 살도록,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내앞날을 인도하신다.’ 믿어야 합니다. 믿음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돈에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새겼지 않습니까? 믿음이 귀하니까 돈에도 새겼는데 여러분의 가슴 가슴에 믿음을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
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약합니다. 작은 
이상만 생겨도 금방 불안해서 병원에 가고 병원에 안 가도 될 사람이 수없이 가서 병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살아가는데 머리가 아플 수도 있고 소화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병원에 가
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좀 믿으십시오. 

요즘 신종플루 때문에 모두 시장에도 못 나가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저를 보십시오. 하루에도 악수를 몇 천 명을 해야 되고 곳곳마다 수많은 집회를 다닙니다. 신종플루에 걸렸다면 제가 오백 번도 더 걸렸을 겁니다. 제가 악수를 할 때마다 검사하고 할 수 있습니까? 누구나 다 악수를 해야 됩니다. 목사는 전염병이 걸린 곳에도 다 심방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40년 동안을 한 번도 걸린 일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별의 별 유행병이 번져도 다 가서 기도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지켜주십니다. 이번에도 신종플루가 번졌지만 온 나라에 안 가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아직까지 괜찮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좀 믿음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왜 현대인들은 이렇게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말 한마디를 못 합니다. 어린애들 보고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부모님의 그 말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나가 죽어버립니다. 선생님도 애들한테 말 한마디를 못 합니다. 

군인들도 부하들 보고 말을 못 합니다. 욕도 못하고 기합도 못줍니다. 우리는 군에 있을 때 입만 열면 개자가 붙었습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신경을 씁니까? 개만 아니면 됩니다. 담대하고 여유를 가지십시오. 남편이 말 한마디만 하면 죽어버리고 집을 뛰쳐나가고 왜 그럽니까? 애들을 놔두고 뛰쳐나가면 어떻게 합니까? 참아야지요. 여유를 가지고 유머를 가지십시오. 믿음은 우리에게 여유를 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생활에 여유가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할 때 모든 삶에 여유가 생깁니다. 담대해지고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고 소망이 오고 남을 칭
찬합니다. 요즘 칭찬을 안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칭찬해줍니다. 오늘 교독문에 
읽은 대로 불쌍히 여겨줍니다. 항상 모두 배려해주고 하찮은 믿음 같지만 이 믿음이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살아계신 그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조금 아프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책 보셨잖아요? 암 가운데 제일 무서운, 열 배나 더 무서운 암은, 암을 두려워하는 암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의 암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병도 들 수 있는 것이고 사고도 날 수 있는 것이고 환난도 있을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람은 다 그를 통해서 향상하게 되어 있고 발전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사람이 좋은 길로 나아가서 성공한 사람이 한 명이나 있습니까? 다 실패하고 손해보고 어렵고 쫓겨나고 망하고 안 되어서 성공하는 것이지 좋은 길로만 가서 성공하는 사람은 한 명이나 보았습니까? 여러분! 어려울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신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우리 부목사님 사모님이 이상하게 몇 년 전부터 몸에서 흰 반점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온 몸에 번져나가는데 이 분에 외국에서 별의 별 유명한 병원을 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몸에 다 번져서 금년 초에는 얼굴로 올라왔습니다. 목을 타고 올라오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되어서 더구나 사모가 되어서 목사님 목회하는데 내가 이렇게 되면 큰일 난다 싶어서 그때까지 병원을 찾아다니고 유명한 사람만 찾아다녔는데 처음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기까지 올라오면 나는 큰일 납니다. 제발 요 밑에까지만 오고 못 올라오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이루어지더랍니다. 그래서 저를 보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기도하면 들어주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심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하면 다 되는데.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 이 우주에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
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23장 23-24절에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않느냐” 라고 했습니다. 시편 139편 7절
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하늘 위에도 계시고 바다 끝에도 계시고 이 세상 어디에도 계
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절에는 야곱이 벧엘에 와서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그곳에도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서 단을 쌓고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는구나 하고 ‘벧엘’이라 ‘벧’은 집이라는 말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는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 가서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어떤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우리와 다 같이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내 마음에도 계십니다. 이걸 믿으라는 것입니다. 제발 좀 믿어보십시오. 네 믿음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아폴로 15호를 타고 간 제임스 어윈이 한국에 와서 우리교회에서 간증을 했잖습니까? 그 때 어윈이 와
서 간증한 말이 이것입니다. ‘달에서 보낸 몇 시간 동안은 내 일생에 가장 큰 감격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남들이 가보지 못한 달에 왔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달에도 계셨습니다. 어윈은 말했어요. 

“내가 달에 와서 기쁘고 남이 가보지 못한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기쁘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이 하나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여유 있게 하고 담대하게 하고 환난이 있을 때는 환난을 참을수 있게 하고 시험은 이길 수 있게 하고 장애물은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때문입니다. 
  
저는 명성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미사리라는 곳에서 십년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황산에서 옆으로 들어
가는 곳에서 십년을 했는데 거기서 아이들이 다 태어나고 거기서 신학을 공부하고 몇 개 신학교를 다니
고 거기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니까 내려갈 때에는 아이들 셋하고 
제 아내하고 그곳에서 하일동까지 걸어 나와서 서울 운동장까지 버스를 타고 그 다음에 청량리까지 버스
를 타고 밤 열시 사십분에 기차를 타고 그 다음에 안동까지 일곱 시간 걸려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또다시 두 시간 기다려서 첫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세 시간을 갑니다. 그곳에서 내려서 우리 집으로 세 시간을 걸어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한 번 가면 이틀이 걸립니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몰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큰 문제는 차를 타고 50미터도 안 가서 네 명이 모두 토합니다. 집사람도 토하고 아이들도 모두 토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걸 다 받아냅니다. 제가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늘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짜증 한번 안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골 갈 때 부
모님 계시는데 그냥 갈 수 있습니까? 양 쪽에 모두 가방 들고 50-60킬로그램을 듭니다. 팔이 떨어져 라
고 듭니다. 그리고 아이 하나를 업고 하나는 목에 올리고 갑니다. 사람이 그래도 기쁘잖습니까? 부모님
께 가는데 얼마나 기쁩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여덟 시간 가까이 서
서 가야 합니다. 

사람은 꽉 차 있는데 너무 힘듭니다. 짐은 많습니다. 기차표가 입석과 좌석이 있는데 제가 가난한 목회를 하다 보니 입석을 타고 가니까 일 년에 몇 번씩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찬스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제천이나 원주서 타는 사람을 위해서 좌석이 남아 있는 게 있습니다. 다니다가 빈자리가 있으면 우선 애들 둘을 데리고 거기 앉습니다. 그러나 제가 입석인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가아니까, 내가 나를 아니까, ‘너는 티켓이 없는 죄인이야, 너는 입석이 좌석에 앉은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을 자는데 저 혼자 못 자고 다른 사람은 모두 평안한데 저 혼자 평안이 없습니다. 저쪽에서 금테모자 쓰고 티켓 조사 하는 분이 올때 들키면 안 되니까 두 번째 창 너머까지 늘 봐야 됩니다. 

또 그 쪽만 보면 안 됩니다. 이쪽으로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아닌 그 티켓 하나가 없다
는 것이 저를 그렇게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간단합니다. 내 배후에 하나님이 있다는 이 하나의 
믿음이 우리를 잠도 잘 자게 합니다. 교인은 약 하나 안 먹어도 잠이 잘 오잖아습니까? 예배 보다가도 잡
니다. 잠 하나는 교인이 타고났습니다. 저절로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유 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는 지켜줄 이가 있잖습니까? 도와줄 이가 있잖습니까?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선교를 갔을 때 끝까지 믿은 것은 성경구절 한 절을 보고 믿은 것입니다. 한 절 보
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사자한테 다리가 물려도 그곳에서 평생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
이 복음입니다. 간단하고 너무 하찮은 것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지식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권력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물질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왔을 때는 이 믿음은 큰 역할을 합니다. 환난
이 오고 시험이 오고 어떤 엄청난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왔을 때 우리가 믿었던 것은 너무 힘이 없습니
다. 별게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쇼펜하워는 너무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항상 개를 끌고 다니면서 음식을 먼저 먹이고 개가 안 죽는 것
을 보고 자기가 먹었습니다. 얼마나 오늘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지식이 발달했습니다. 박대통령 
때 GNP가 100불이었는데 지금은 2만 불이면 2백배의 여유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그 
때는 글을 읽는 분이 얼마 안됐습니다. 

군에 가서도 보면 부인이 써 준 편지도 못 읽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모두 무식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지식은 몇 백 배로 성장했으면 그만큼 지성인답게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의 과학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은 여유가 없습니다. 초조하고 긴장하고 불안하게 삽니다.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자살할 정도로 사람이 약해졌습니다. 인간관계가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우리의 삶은, 자기만 믿는 이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살기에도 아무 여유가 없는데 부모, 형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스승도 없고, 나라도 없습니다. 나 하나만 생각하는 현대인, 이것이 바로 창조자를 떠난 저주입니다. 그 분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 하나가 아무것도 아닌데 잠도 잘 오게 하고 평안하게 합니다. 여덟 시간을 기차 안에서 행복하게 지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안에 있는 티켓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티켓을 오늘 다 가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믿음의 생각을 하십시오. 말은 다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믿음의 열매
가 맺어집니다. 알곡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의 말이 있습니다. 행복의 언어가 있습니다. 축복이 되
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예수가 내 안에 계시면 말을 할 때도 믿음의 말을 합니다. 좋은 말
을 합니다. 북한이 안 되는 이유를 딱 하나로 집을 수 있습니다. 안 되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부정적
인 말을 많이 합니다. 

실패의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증오의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악한 말을 많이 합니다. 책임 전가하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원망하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그것이 씨가 되어서 북한땅에 다 뿌려지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오늘부터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잘 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선교사로 인도에서 사역을 하던 스텐리 존스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89세에 중풍이 걸렸습
니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가씨! 내게 주사를 놓으러 올 때에는 하루 한 
마디씩 꼭 해주세요.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세요! 라고 말하세요. 요것만 해 주세요. 그럴 수 있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아가씨는 올 때마다 “선교사님,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세요.” 그러
면 선교사님이 “아멘!”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깨끗하게 치료 받았습니다. 그래서 96세까지 살았습니다. 그저께 신문을 보았는데 에이즈에 걸렸는데도 20년 동안 건강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물도 가져다 놓고 물을 사랑한다 그러면 그 말 한마디 듣고 그 물이 육각수로 금방 변합니다. 말이 얼마나 능력이 있습니까? 밥을 대나무에 갖다 놓고 밥을 하면서 이 저주받은 밥아, 이 망할놈의 밥아! 그러면 색깔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그러잖습니까? 이건 세계가 다 수많은 실험을 한 것입니다.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 없으면 말 가지고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로 성공할 수 있
습니다. 부정적인 말 하지 말고 원망하는 말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오
늘 본문에 말하기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위험이나 적신
이나 칼이나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감당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이
런 신앙인의 말을 사용하면서 메시야와 함께, 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누리는 축복이 모퉁이 돌과 같이 
여러분 가정에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대강절이 이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
을 가졌지만 아직은 우리 믿음이 너무 약합니다. 생활 속에 늘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
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분명히 승리할 수 있는데도 세상에 믿으면 안 되는 것을 의지하고 세상의 
것들을 바라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여! 큰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사람 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로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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