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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크리스마스 정신 (빌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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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정신 (빌 2:6~11)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정신"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낯선 사람들 간의 상냥한 미소일까요? 귀에 익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선율일까요?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더미에 둘러싸인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일까요? 아니면 연말연시 때면 느껴지는 단지 좋은 느낌일까요?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의 정곡을 찌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그럴 듯하게 말하지만, 대개 감상적 즐거움에 그쳐버리고 맙니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우리를 위해 비천해지신 주님의 '성품'을 인간의 삶 속에서 재생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삶 전부를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소비하면서  그들이 필요를 위하여,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시간과 배려와 보살핌과 관심을 베풀며 사는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크리스마스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천국과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한 영광을 버리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종이 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이어 받아야 할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은 무엇입니까?

1. 비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6-7절)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됨을 포기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 제 2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천지 창조와 인류 구원의 사역에 동등하게 참여하여 중요한 감당하신 분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능력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2)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다 누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그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동등됨을 당연하게 생각하여도 되는데 하늘의 보좌를 포기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3)오늘날 우리도 그런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a. 내 권리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내 신분을 보장받으려고 목청을 높일 수 있습니다. 내 지위를 가지고 정당한 대접을 받으려고 싸울 수도 있습니다. 

   b. 내가 가진 것을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여한 부분을 가지고 그 댓가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과 적어도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맞부딪쳐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높여주시도록 기다리며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 드리는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자기의 자존심과 욕심을 비우고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버리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이를 '공간공포'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우기보다는 무엇인가를 채우기를 좋아합니다. 온갖 좋다고 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야 만족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욕심껏 채우다보면 쓰레기 같은 것들이 우리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문제는 비우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으로 채우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과감하게 비워야 합니다. 비울때 은혜가 깃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묻는 한 부자 청년에게 "네 가진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처럼 지나친 요구를 하셨을까요?  욕심이, 이기심이 그 젊은이의 눈을 멀게 하고 영원한 세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의 마음이 비워지기전에는 예수님이 주시려는 복과 은혜가 깃들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비울때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예수님을 닮을 수 있었습니다. 비우십시오. 비울 때 주님이 더 귀하고 값진 것들로 채우십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매인 끈을 끊으려고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자 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자기가 쓰려고 얼마간을 남겨 숨겼습니다. 그가 스승을 찾았을 때 이 스승은 그의 행위를 이미 간파하고 말았습니다.  "그대는 진정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마을로 내려가, 고기를 조금 사서 그대의 몸에 달아매고 다시 이 곳으로 오게나."   그는 스승의 지시대로 자기의 몸에 고기를 달고 산길을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몸에 달린 고기는 흔들거리며 냄새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냄새를 맡은 들개와 새들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고기를 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들개들과 새들에게 대항하며 도망쳤으나 그것들은 끝까지 따라붙었습니다. 아무리 대항하고 도망쳐도 소용없었습니다. 들개들과 새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그는 많은 상처를 입었고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이내 그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달린 고기를 노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차없이 그 고기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짐승들은 자신에게서 떨어졌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었고 비로소 쉴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와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보이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버리면서도 자기의 돈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이처럼 공격을 한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진정한 빈 몸이 되게나."

  이처럼 남의 유익을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를 비우는 사람입니다. 내가 당연히 받을 영광을 양보하는 것이 비우는 정신입니다. 여러분, 포기하고 비울 때 해방과 자유가 임합니다. 큰 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포기하고 비움으로 더욱 존귀케되기를 축원합니다.


2. 낮춤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8상)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7).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도 낮추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자기를 높이지 말고 낮추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낮아지기를 거절하고 높아지려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부끄러움을 보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며 훈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까닭은 그들을 낮추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자지 않으면 피곤하고, 매를 맞으면 아프고, 병들면 고통스럽고, 육체의 많은 제약속에서 불편과 고난을 감수해야하는 연약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때문에 인간이 되기를 자원한단 말입니까?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가운데 멸망의 길로 들어섰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위험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인생을 외면할 수 없어서 예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대신하여 죄짐을 짊어지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죄에서 돌아서도록 사람으로 오셔서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치시고 생명의 길로 이끄시려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2)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되 존귀한 신분으로 오시지 않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섬기는 자의 일생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하셨습니다.  스스로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발만 씻기신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더러운 죄악을 자신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낮아지고 있습니까? 
   
a. 모두가 다 주인되려 하고, 왕노릇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높은 자리를 원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모두가 고난의 자리, 섬김의 자리, 더러운 것을 씻기는 자리를 피하고 대접받는 자리, 편안한 자리, 영광받는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앉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b.주님은 우리에게 종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마20:20-28)
  
이 세상에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들은 남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에바브라 디도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희생과 섬김으로 오직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위할 때 그는 바울에게나 누구에게든지 귀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 수도원에 있는 경건한 수도사가 기도 중에 영안이 열려서 하늘을 보니 보좌 하나가 비어 있는데 그곳에 광채가 찬란하게 비취므로 천사에게 묻습니다. "천사님, 저 보좌는 왜 비어 있습니까?"  "천사가 앉아있던 자리인데 타락해서 쫓겨나서 비어 있지"  "그러면 거기에 누구를 앉힐 것입니까?"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을 것이다."  이 수도사가 어느날 성 프랜시스와 길을 가다가 묻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진실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강도나 악한 자가 많은데 어찌하여 선생님이 그런 자들과 비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악한 자가 많지만 우리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그 사람들에게 주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때 비로서 수도사는 감탄하며 '과연 내가 보고 들은 말이  합당한 것임을 알겠구나!'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낮추십시오. 이 땅의 부부들이 서로 마음을 낮추면 모든 가정들이 화목하고 평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부모들이 눈높이를 자녀들의 수준으로 낮추면 자녀들이 얼마나 행복해하겠습니까?  이 땅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대한다면 교육이 엄청나게 발전할 것입니다.  많이 가진 이들이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 나누고 베푸는 훈훈한 사랑으로 훨신 따뜻해질 것입니다. 


3. 복종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하)
복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항상 복종하십시오.  한번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이고도 꾸준한 복종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곧 끝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즉각적인 복종, 끝까지 하는 항상의 복종은 아름답습니다.   
  
1)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2)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a.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죽이려는 이들을 진멸하고 십자가를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b. 그러나 주님은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기에 당신의 순종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다시 의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 5:19) 그처럼 철저한 순종을 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복종을 해야 합니다.
   
a. 때로 순종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용납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순종이 너무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 같아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b.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 되고,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고 최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c. 따라서 죽기까지 순종할 각오를 가지고 복종할 때 불순종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우리 애는 말을 안 들어"라고 합니다.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곧 순종을 의미하고 말을 안듣는 것은 불순종을 뜻합니다. 복종하는 습관을 가지려면 주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설교에 귀기울십시오. 늘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십시오.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잘 듣고 즉각 순종하여 그에게로 달려가십시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금년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맞읍시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비움입니다. 당연히 누릴 나의 권리라고 주장하지 마시고 한 두가지 정도는 포기해 봅시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낮춤입니다. 높은데 마음을 두지말고 종의 위치에까지 내려가 섬겨 봅시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복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면 죽기까지 복종하십시다.  크리스마스 정신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주실 것입니다. 존귀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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