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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에벤에셀의 은혜 (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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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은혜 (삼상 7:12~14)

 
벌써 200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입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기쁘고 유쾌한 일도 있습니다. 또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씨줄과 날줄이 서로 얽혀서 옷감이 되듯 우리의 삶은 기쁨이라는 씨줄과 고난이라는 날줄이 서로 합해서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오게 되면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봅니다. 의미 있는 시간도 있고, 허비한 시간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가 오면 사람들은 흔히 세 가지 후회를 한답니다. 베풀며 살걸... 용서하며 살걸... 재미있게 살걸... 아직 내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지나온 일 년을 돌이켜 보면 이런 후회가 되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지나온 모든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뇌리에 가장 크게 남는 단어는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너무나 흔하게 사용하고, 듣고 있기 때문에 쉽게 망각하는 단어입니다. 실상은 은혜처럼 좋은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공짜로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아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다면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분은 아마도 없는 줄로 압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일터와 사업장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섬길 수 있는 교회를 주심도 은혜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지만 그것도 돌이켜 보면 은혜입니다. 그 모든 과정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에벤에셀(Ebenezer)” 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도움의 돌’ 이란 뜻인데, 의미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입니다. 에벤에셀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말합니다. 왜 사무엘 선지자는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을까요? 먼저 그 배경을 살펴봅니다.

사사시대 당시에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힌 나라는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은 틈만나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괴롭힙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공을 받아 에벤에셀 곁에 진을 칩니다. 그 전투에서 4천명이 죽습니다. 패한 후에 패인을 분석한 결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법궤를 앞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란 결론에 이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메고 다시 전쟁에 나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만 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습니다.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이를 해산하고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 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상황이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20여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사무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깁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이 공격합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셔서 그들을 어지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천둥과 벼락을 내리셔서 완전히 블레셋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은 블레셋을 하루아침에 쫓아내십니다. 

사무엘과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기쁨과 감격을 잊지 않도록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없이 블레셋과 싸울 때 그들은 에벤에셀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4장).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실패의 자리, 패배의 자리를 새로운 승리의 자리, 기적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어떻게 실패의 자리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축복의 에벤에셀로 바뀌었을까요? 
 
우리의 인생길에도 똑같은 상황이지만 승리의 축배를 들 때도 있고, 쓰라린 아픔의 잔을 마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의 자리를 승리의 자리,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의 자리, 기적의 자리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왜 지난 20여 년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원인을 진단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문제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사무엘의 진단 결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 그것은 영적침체요, 영적침체는 결국 삶의 고통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침체된 영적 분위기를 새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부흥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적 대각성운동을 펼칩니다. 일명 ‘미스바 대성회’입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을 미스바에 불러 모으고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흥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사무엘상 7장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가나안 지역의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블레셋을 채찍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너희가 지금이라도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뜻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선지자의 말씀을 듣습니다. 미스바에 모여서 지나온 잘못과 패역함을 회개합니다. 금식하며 부르짖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했습니다’(6절)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섬긴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쏟아 놓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우리의 인생을 실패의 자리로 몰고 가는 주범은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힘이 듭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삶은 기쁨과 평강이 임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73:2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언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습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흩어지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죽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군병들에게 체포되어서 잡혀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갑니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눅22:54/마26:58,막14:54) 마태, 마가, 누가 모두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갔다고 기록합니다. 만약 베드로가 죽음을 무릎 쓰고 라도 주님의 시선에서 멀어지지 않았다면 그토록 처참하게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깝습니까? 아니면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지십니까?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자신의 죄와 허물을 빨리 깨닫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아래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수록 자신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의 죄와 허물만 보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멀어지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복임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은 바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의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의 죄인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1-12절)
  
자랑스럽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기도합니다. 세리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2-13절) 
 
누가 의롭다하심을 인정받습니까? 바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세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자는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리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가슴을 치는 자, 자신의 죄인됨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자리로 나아가는 비결은 바로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을 올려드릴 때 우리 주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리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를 반겨 맞으십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에벤에셀의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둘째로, 예배가 회복되어 합니다.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은 바로 온전한 예배의 회복입니다. 지금은 블레셋이 미스바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치러 올라오는 상황입니다. 자칫하면 한 곳에서 몰살을 당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며, 쉬지 말고 기도해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사무엘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어린 양을 잡아 온전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온전한 번제를 올려드릴 때 역사하십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우리의 몸과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온전한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 가운데 진리 되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예배하는 자입니다. 몸은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마음이 딴 데 있으면 참 예배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는 찬양을 드려도 열심히 불러야 합니다. 음정 박자는 좀 틀려도 괜찮습니다. 립 씽크만 하지 마시고, 크게 찬양하십시오. 찬양 부를 때 악한 영이 떠나갑니다. 찬양을 부를 때 마음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찬양 부를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기도드릴 때도 전심을 기도하십시오. 오늘 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성전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시고 매달려 보십시오. 주님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내 영이 살아야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머리로 듣는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나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 레마의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말씀이 내 심령에 부딪힐 때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우리는 말씀을 듣다가 낙심한 영혼이 새 힘을 얻습니다. 말씀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예물을 드릴 때도 정성을 다해 구별해서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것을 드려야 합니다.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액수가 아닌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넘치도록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믿으십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받으시고, 만복으로 채우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 순서 순서마다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자신의 목을 치는 심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어찌 자신의 목숨을 내건 자리에서 하품하며, 졸수 있습니까? 이것은 마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 받으면 그것을 쏟아버리게 만듭니다. 예배의 승리는 곧 인생의 승리입니다. 예배에서 실패하면 신앙생활에서 실패합니다. 결국 인생의 낙오자가 됩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결국 인생의 승리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세상의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온전한 예배자로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리면 반드시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어떤 분은 힘들고 어려우면 예배를 멀리합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려울수록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면 문제는 눈 녹듯 해결됩니다. 

 A.W. 토저 목사님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 사역보다 예배가 우선입니다. 교회 안에 보면 일을 하는 데는 열심인데 예배를 소홀히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먼저 일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것이 바로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입니다.

 셋째로, 감사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블레셋의 군대를 물리치게 하십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도움의 돌’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의 기념비입니다. 
 
성경에 보면 무슨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돌로 기념을 표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도 큰 홍수가 지나간 후에 돌로 단을 쌓았고, 도망하던 야곱이 벧엘에서 환상 중에 천사가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을 본 다음에 돌로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수아도 요단강을 건넌 후에 요단강 가에 12개의 돌을 취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이 모든 돌단은 바로 감사의 단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에벤에셀'의 고백에는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앞으로 모든 삶 가운데 함께하시고, 도와주실 것을 믿는 확신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중요한 일을 경험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돌, 감사의 단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고백, 감사의 예배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어린 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기대합니다. 아이의 생일날 자전거를 사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와서 "너무 감사해요. 아빠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감사는커녕 “나는 컴퓨터를 원했는데, 겨우 자전거야?”고 불평한다면 다시는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감사가 메말라 있을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다음에 좋은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감사기도를 해야 되는데 그런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계속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를 받아도 받은 은혜는 감사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평도 하면 할수록 늘어납니다. 나중에는 불평하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감사도 하면 할수록 늘어납니다. 나중에는 감사가 습관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사무엘과 백성들이 '에벤에셀' 기념비를 세우면서 감사를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13-14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막아주심으로 블레셋 사람이 굴복되어 다시는 이스라엘을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 동안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모든 땅들과 성읍을 되찾습니다. 그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불평하면 불평할수록 점점 불평의 조건들이 늘어나지만,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십니다.

2009년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예배자로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사역이전에 진실한 예배자를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감사로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은혜임을 믿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가슴 속에, 가정과 교회 가운데 에벤에셀-감사의 기념비가 세워질 때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함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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