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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로 맺은 언약 (창 1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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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맺은 언약 (창 15:7~17) 

  
인간의 약속은,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항상 느끼지만,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할 때, 얼마나 많은 공약들이 나오는가? '자신을 뽑아주면 이렇게 하고, 또 저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장미 빛 공약들이, 남발되지만,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 

또 전국의 수많은 예식장에서는,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다. 그러나 두 쌍이 결혼을 하면, 한 쌍은 그 신성한 약속을 어긴다. 혼인 신고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긴 전에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옥이라도 따라가겠으며, 죽는데도 따라가겠다고 철썩 같이 맹세한다. 그러나 몇 시간이 못 되어,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도들도, 새해만 되면 더 열심히, 주의 일에 충성하겠다고 약속한다. 예배에 빠짐없이 잘 참석하겠다고… 십일조도 잘 드리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전도도 하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하고 다짐을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는가? 이처럼 인간의 약속은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깨뜨리지 않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하셨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다. 우리는 약속을 어기지만,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셨으면, 꼭 이루시니 믿고 기다려라.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1.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내용 

하나님은 셈족 가운데 아브람을 지명하시고, 신앙의 조상으로 부르셨다. 하나님과 아브람의 계약은, 4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1)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후에'라고 하였는데, 조카 롯이 떠나고(13장), 침략자인 메소포타미아 4개 연합군이, 조카 롯과 사해주변 국가들을 포로로 끌고 갈 때, 아브라함이 구출한 이후였다(14장). 그런데 이 사건은 오히려 이를 보복하기 위한, 이방국가의 재침공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자신을 '네 방패'라고 하시며, 아브라함을 안전히 지켜주겠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에서 객지생활 하는 유량자로서, 의지할 것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방패가 되어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지금의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형편이 아닌가?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는 우상이 가득한 마귀의 집을 떠났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잠30:5)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했으니, 더욱 주님을 의지하자. 

(2) 상급(1下).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심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상을 베푸실 분만 아니라, 상급 그 자체가 되신다는 말이다. 

여기서 상급은 사카르(  )로, "봉급, 요금, 이득, 가치"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고 따를 때, 이득이 되고 가치가 되어 주신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따르기 위해, 죄악이 넘치는 풍요로운 요단들을 선택하지 않았고, 기근이 있던 가나안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한 손길이, 결코 손해가 되지 않게 만들어 주신다. 후일에 천국을 소유하기에, 영적인 측면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손해보지 않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3) 상속자(3-5)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길린 자는 내 집에서 태어난 자로, 종의 자식을 말한다(창14:14). 종의 자식이 아니라, 본처에게서 난 자식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본처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이 그의 상속자가 되리라 약속하셨다. 누가 봐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믿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상속자 이삭이 태어났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람은 성급한 인간의 방법으로,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음으로, 가정에 큰 불화를 겪게 된다(16장).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면, 이스마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으면 이삭이 된다. 그러므로 끝까지 약속을 붙잡기 바란다. 

(4) 언약의 땅(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땅의 보장에서 시작된다. 

아브람은 새로운 민족으로서 땅을 보장받았다. 땅의 보장은, 먹을 것이 내포된 계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나안을 차지하도록, 타락한 이방 땅에서 그를 부르셨다. 이것을 '무조건적인 은혜'라고 한다(엡2:8). 

바로 이 은혜야말로, 오늘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얻게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거듭되는 범죄로 인해 이 언약의 성취는 다윗 왕에 가서야, 겨우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제까지 경험으로 볼 때, 이 땅을 자기와 자손들이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별로 서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거론한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기 위하여, 제물을 준비하게 하셨다. 3년 된 암소, 3년 된 수양, 3년 된 암염소, 3년 된 비둘기새끼들을 가져 오라 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짐승들의 피를 드렸고, 하나님은 이 피를 받으셨다. 이 피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확인하는 피였다. 

피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약속을 확인해 주신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 사랑의 최고의 확인이다. 그런데 아무 짐승이나, 드린 것이 아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꼭 4가지뿐이었다. 보통은 1가지만 드렸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람은, 이 4가지 짐승을 한꺼번에 모두다 드렸다. 성경 전체에서 제사에 필요한 짐승을 한꺼번에 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이 곳 밖에 없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드린 피에는, 최선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을 받으시는 분이다. 

2. 하나님은 피로 언약을 세우셨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축하객들이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앉는 이유가 무엇일까? 

① 관행을 따라서 ② 부조금 관리가 쉬워서 ③ 양쪽 가문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 ④ 잘 모르겠다. 답은 여기에 없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고, 그냥 앉았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앉은 모습은, 성경의 희생제물(갈라놓은 제물)을 상징한다. 바로 이것이 언약이다. 

오늘날에는 종이에 계약 내용을 적고, 밑에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으면 계약이 발효되지만, 옛날 아브람 당시에는, 짐승을 죽여 쪼개서, 마주보게 하고, 그 사이를 왕래하면, 계약이 성립되게 되어 있었다. 그 의미는 이 계약을 위반하면, 너는 이 짐승과 같이 죽을 줄 알라는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약속할 때가 많다. 어떤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미리 정해 놓고, 서로 어기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말이나 문서로 약속한다. 하나님도 백성들과 약속하시는데, 일반적으로 말로 약속하시기에, 그것을 언약(言約)이라고 한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    )라 한다. 

베리트(    )는 2가지 어원을 갖는다. 
(1) 바라(  )에서 유래했다. '바라'는 "함께 먹다, 고르다, 선택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계약'은 함께 먹고살기 위해 맺는다. 계약의 당사자는 '선택된 자'로, 하나님이 선택한 자임을 알 수 있다. 

(2) 카라트(  )에서 유래했다. '카라트'는 "자르다, 패다, 정확히 둘로 쪼갠다."이다. 그래서 계약을 맺는다는 말은 둘로 쪼갠다는 뜻이 들어 있다. 바로 아브라함의 계약에서, 이 뜻이 드러난다. 계약의 정신은 평화스럽게 식물을 먹기 위함이요, 공평하게 쪼개는데서 성립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행위 속에는, 성경 상의 언약을 맺을 때의 배경이 있다. 언약은 짐승을 반으로 갈라서 마주 보이도록 놓고, 그 고기 사이를 계약 당사자가 지나감으로,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이 언약을 파기하면, 갈라놓은 짐승처럼 죽음을 당하게 되니, 죽음으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만약에 이 언약을 어기면, 제물처럼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사이로 횃불이 지나갔음은, 하나님의 행위를 말하고, 그러므로 이 제사는 응답되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계약을 맺고, 의식을 행할 때, 계약 당사자가 지나가야 하지만, 이 계약에서는 하나님만이 지나가셨다. 하나님이 만약에, 그 약속을 이루지 못한다면, 쪼개진 고기처럼 죽겠다고 하셨다. 인간이 잘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 가운데를 지나가셨다. 

따라서 이 약속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완전한 본향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다.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심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나는 날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생일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된다. 100일이 지나면 백일잔치, 1년이 지나면 돌잔치, 그러다 60이 되면 회갑잔치, 70이 되면, 고희잔치를 하며 기뻐한다. 

우리 예수님도 육신으로 오셨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생일이 있다. 그러나 12월 25일은 그 생일이 아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며 경배하는 날을 성탄절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성탄일이라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 할까? 

우리 예수님의 탄생 년도와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생일보다 사망일을 더 기념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다가 2세기 당시 만연되었던 이단적 종교인 마니교 교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님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하게 되었다. 

4세기에 들어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는데, 12월 21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았다가, 차츰 길어지는 날이요, 그 후 첫 주일인 12월 25일로 정했다. 그래서 정확하지 않기에, 성탄일이라고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고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날이다. 

우리 가운데 애완견을 기르는 분들이 많은데, 아무리 개를 사랑한다고, 그 개를 구하기 위해, 개로 태어날 수 있나요? 그 개를 위해 죽을 수 있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가운데 육체로 오셨고, 그 사랑의 극치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3.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12-14)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계약의 내용을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이 땅을 주시지 않고, 400년 후에, 이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은 400년이나 지나서야, 이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가? 성경에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대략 2가지로 말한다. 
(1)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이 일은 아브라함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아브람이 애굽이라는 이방 나라에서 객이 되어, 나그네 된 서러움을 당하다가, 그 땅에서 큰 재물을 얻어서,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다. 

아브라함이 그런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난 것처럼, 아브람의 후손들도 이방 나라에서 방황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16)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브람의 후손들이 이 땅으로 돌아올 때, 이 가나안 땅에 거하고 있는 족속들을 벌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이 땅으로 들어오게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계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과 더불어, 이 세상의 악을 징계하시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내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 이루어질 것이다. 

(2) 새를 온전히 쪼개지 않았기 때문이다(10). 
그래서 솔개가 임했다. 솔개는 죽은 것은 먹지 않는다. 마귀는 피를 볼 때, 넘어가지만, 피가 없으면 달려든다. 즉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400년간 어려움을 당했다는 말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훈련이든, 순종하지 않았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라. 그러면 훈련은 빨리 끝나게 되고, 순종하면 환란을 당하지 않게 된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문제와 해결의 연속이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우리를 쓰러뜨리거나 진보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 혼자 하지말고, 주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라. 

불행하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에서 겪게 될 문제들을 통해, 어떻게 선을 이루어 가시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언약을 세우신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단 한 번만, 언약하시지 않고, 여러 번 언약을 세우셨다. 

결론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만 남아 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그러나 다미선교회와 같은 이단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면, 정신병자와 같이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오셔서 심판하신다. 

살아가기 힘들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나지 말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자.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우리를 구원해 주기 원하신다.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자. 언약하신 바에 대해서는 결코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믿는바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고, 확신이 없을 때, 피로서 세운 주님의 나라를 기억하고 꽉 붙들자!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지 살펴보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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