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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헤롯의 성탄 (마 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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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성탄 (마 2:13~21)

 
온 세상에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반짝이고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흘러나오는 계절을 저희들이 지내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즐겁게 보내려는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가 어디서나 들립니다. 아마 민족별로 보내는 명절이나 국가 절기는 있어도 온 세상이 함께 같은 문화로 보내는 축제일은 크리스마스 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간 나라는 어느 나라나 지금 같은 기분의 축제적 분위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 때문에 꽤 괜찮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이때는 많이 생깁니다. 

제일 큰 혜택 자들은 아마 감옥에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특혜로 풀려나는 사람이 온 세상에, 수천 명 또는 어떤 때는 수만 명씩 됩니다. 이런 일은 어느 나라이든지 기독교 박해 국가가 아니라면 다 실행하는 일입니다. 우리 정부도 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정말 예수님의 탄생이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그 다음에 각종 비즈니스 계통도 많은 혜택의 계절입니다. 

이때가 되면 여행들을 많이 가니까 여행사도 괜찮고 항공사도 혜택이 많이 주어지고 호텔업자도 기다리는 계절이 되고 수없이 많은 선물가게, 음식점, 간판업계, 인쇄소 할 것 없이 아주 분주하고 즐거운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크리스마스 휴가가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가족이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과 자선 기관에서는 불우이웃 돕기를 실천해서 소외된 사람을 찾아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는 순서를 늘 가지고 성탄절을 보냅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비롯하여 각종 모임은 그래도 세상은 사랑이 많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일 년 내내 하는 일이지만 12월 달에는 더 많은 프로그램으로 고난의 형제들에게 많은 사랑을 전달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200명이나 되는 선교사들을 위한 우리 교회 헌금이 일 년 동안 날짜도 어기지 않고 제때에 잘 전달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강절 절기로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시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의 주변을 조명하는 중에 오늘은 헤롯이 맞이한 성탄의 모습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예수님 탄생하시던 때 유대 나라는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보다 세상 역사에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헤롯은 70세였습니다. 20대 청년시절부터 영웅적 도전을 해서 성공한 정치인입니다. 로마 정부가 그 땅에 와 있을 때 민중 반란이 터졌습니다. “너희들이 왜 여기 와 있느냐? 로마인은 물러가라!” 그런데 이때 헤롯은 로마의 편에 섰습니다. 청년단을 조직해서 로마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데 공헌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인정을 받아서 BC 47년에 영주가 됩니다. 그 후에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 처세술을 발휘해서 10년 후에 마침내 유대의 왕이 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 35년 동안 왕권을 누리는 “대단한 정치가요 성공한 세력가다.” 이렇게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잔인한 폭군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폭군의 특징은 항상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 불안한 감정은 ‘누군가 나를 죽이고 이 자리를 빼앗지 아니할까?’라는 것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헤롯이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듣자마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왜 그러느냐? 동방박사들이 그에게 한 말 때문에 그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내가 왕인데 누가 왕 될 사람으로 태어났단 말이야?’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헤롯은 얼마 가지 아니해서 죽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 죽었는가?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은 겁니다. 나이가 70인 사람이 35년 왕권을 누렸다면 이제는 자기 인생을 정리할 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 태어난 어린 아이가 왕이 된다 해도 적어도 30년 이상 있어야 하는데도 이런 정신병자 같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의 지시를 받은 요셉이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났을 때 헤롯은 아주 끔찍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베들레헴과 그 지역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모조리 다 죽이라.” 그래서 모조리 다 죽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잔인한 살인극을 벌인 것입니다. 이것이 헤롯이 맞이하는 성탄절이 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살폈을 때 이러한 범죄자는 두뇌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합니다. 이 앞부분에 절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두뇌 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인한 사람이 계속 살인합니다. 

그러므로 살인한 자는 죽이는 길 밖에 없다고 법이 사형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는 35년 왕권을 누리면서 자신에게 반대 의사를 발표하는 지성인 300명을 학살했습니다. 아내가 10명이었는데 아내들도 의견 차이를 보이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자기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볼루스가 아버지의 왕권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 두 아들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존경을 받는 지성인을 모조리 베일채로 덮어씌워서 감옥에 가두고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죽는 날 이놈들도 한꺼번에 다 죽이라.”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헤롯이 죽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만세를 부를 것 같으니까 ‘이 사람들을 죽이면 그래도 온 나라 안에 곡성이 들리게 될 것이다.’ 이런 미치광이 계산을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부인이 마리암네였는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로마 황제에게 소환을 당해 로마로 떠나면서 비밀 명령을 하고 갔습니다. “만약 내가 로마에 가서 변을 만나 죽으면 제일 먼저 마리암네를 죽이라.” 그래서 마리암네가 죽은 것입니다. 이 가문은 이런 피가 흐른 가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소반에 담아왔다는 끔찍한 기록이 있는데 그가 누구인가? 바로 헤롯의 아들 헤롯입니다. 

왜 예수님을 왕이라고 불렀는가? 영적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를 부리는 그런 왕의 정 반대 평화의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바보 같은 헤롯은 그 해석을 잘못함으로 이런 끔찍한 비극적 사건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만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헤롯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땅에 메시야는 탄생할 것이다.” 누구든지 다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랜 옛날부터 유대 나라에 예언자들로부터 예언되어져 내려오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유대인은 모두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의 메시야관은 영광스러운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로마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스라엘의 국권 회복이 이루어지며 다윗,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되찾는 작업의 성취자로서의 역할이 메시야 사역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모든 시민은 거리로 뛰어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왕이 지나갈 때만 흔드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는데, 국빈이 오시면 가는 길에 양탄자를 까는 문화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런 반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온갖 영적 체험을 하고 사역의 신비적 동참을 한 12사도조차도 예수님의 왕권의 의미를 대통령으로 착각했습니다. 

취임식 한 후에 누가 2인자, 3인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민감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도 그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그런 것을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이런 반응이 나왔죠? 헤롯은 예수의 왕의 의미를 대통령으로 착각해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천사가 요셉에게 아기 예수의 안전을 위해서 애굽으로 피신할 것을 지시하고 그대로 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거기인가? 애굽에는 헤롯의 폭군 정치를 견디지 못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 백만 가있는 겁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만도 그 당시 기록에 백만 명 이상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는 그들에게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고 하는 예언의 성취를 발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헤롯에게 붙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만 득실거리고 정말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미 애굽으로 떠나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주는 가장 큰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 회복으로서의 인간 모습입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주어지는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기독교 국가는 이데올로기가 세 가지입니다. 생명과 자유, 평화입니다. 이것을 인권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니까 훌륭한 국가 지도자는 누구인가? 바로 국민들에게 이것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 지도자입니다. 왜 우리가 같은 종족이면서도 북한에 대해서 절대 비판을 하며 사는가? 북한은 생명과 자유, 평화의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직 헤롯 가문 하나를 위해서 어린 아기들은 다 죽여도 좋다는, 하나를 위하여 국민을 다 죽여도 괜찮은, 다 굶어도 괜찮은 그런 길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정 반대의 길을 가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민중들이 예수께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억지로 왕을 삼으려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유대인의 메시야관입니다. “예수여! 당신은 바로 그것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빨리 왕이 되십시오.” 그런데 그런 반응이 언제 나왔느냐? 예수님이 군중을 놓고 기도를 해서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1만 명을 먹이신 이후에 그런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사실적 사건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이다. 만약 이 분이 왕이 된다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 해결된다. 이러한 능력을 또 발휘해서 빌라도 같은 저 도깨비를 다 물리쳐 버리고, 이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거리를 칼을 차고 말을 타고 껄떡거리는 저 마귀들과 같은 로마 놈들을 다 이 자리에서 몰아내 버리고, 세금으로 먹을 것 없이 다 쓸어가는 황폐한 우리 이스라엘 민족의 창고에 예수님의 기적으로 식량이 가득히 채워지고, 노예 같은 식민지 생활 때문에 의로운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 불쌍한 민중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건강 회복을 기도 한가지로 다 회복시키시도록 예수여! 왕이 되시옵소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습니까?” 그리고 민중들에게 “민중들이여! 우리는 예수를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셔야 돼!” 그러며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이 말은 들은 예수는 어떻게 하셨죠? 그 다음 성경 구절을 보세요.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조선 시대 500년을 왕권 다툼의 역사 비극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긴 추악한 역사 중에서 한 가지 사건은 아름답게 빛이 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순서상으로 양녕대군이 임금이 되어야 하는데 일부러 그 자리를 피해서 방랑의 길을 떠나버립니다. 그렇게 되니까 순서상으로 효령이 왕으로 올라야 되는데 ‘어? 이러다가 내가 왕이 될지 모르겠는데?’ 별안간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이 세종이 왕이 되었고, 세종대왕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존경하는 왕이 아닙니까? 예수는 넉넉히 왕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화의 왕이시요 인류 구세주 사역의 메시야로 탄생하신 것이지 지중해 연안의 그 조그만 나라 이스라엘의 정치 회복을 위한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님을 예수님이 선언하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집요하게 요청한 것이 이런 어려운 문제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100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즐기는 영화 장르가 하나 있는데 웨스턴 무비라고 하는 서부 영화입니다. 누구든지 다 좋아합니다. 남자, 여자,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합니다. 왜 그 영화 장르가 미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100년 동안 인기가 있었는가? 그 속에는 미국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갈망하는 정의와 순교자 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서부 영화를 봐도 내용만 조금 변경이 되었지 목적은 다 똑같이 나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를 가서 살까 하고 평화를 찾아서 한 부족이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그러다가 물이 흐르고 농사짓기 좋은 그런 땅을 만나 거기 정착해서 삽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서 식량을 쌓아놓고 아이들도 잘 키우면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사는 마을 하나가 조명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적떼, 깡패 같은 놈들이 말을 타고 들어와서 그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집집마다 다 불을 지르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반항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죽여 버리고 부녀자를 데리고 강간하고 금품과 곡식을 다 빼앗고 아주 황폐한 마을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황폐해 가는 그 험악한 장소에 별안간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사나이가 나타납니다. 말을 타고 총을 들고 모자를 쓰고 유유히 나타납니다. 그 한 사람의 놀라운 활약으로 그 마을은 정상을 회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당황하지도 않고 내가 보니까 다른 사람과 1대 수십 명 총싸움을 벌이는데 이 사람은 끝까지 안 죽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총 쏘는 것은 백발백중 맞습니다. 안보고 뒤로 쏘아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을은 이 카우보이의 노력으로 구원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이 마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여보시오. 당신 누구입니까? 우리 마을, 이 부족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여기를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가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다음의 그 마을의 모든 좋은 값어치 나는 것, 금덩어리가 있으면 금덩어리, 돈 할 것 없이 자기들을 구원해준 그 사람에게 다 갖다 바칩니다. “이것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하지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런 것을 바라고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석양이 지는 저 산마루터를 넘어가며 카우보이모자를 다시 씁니다. ‘아! 멋있어!’ 이것을 보러 가는 겁니다. 그런 순교자적인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이 이 사회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광고 선전하는 것을 효과 있으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의 광고물은 거의가 다 예쁜 여자를 등장시킵니다. 예쁜 여자를 등장시켜서 속옷 광고, 샴푸 광고를 합니다. “이 여자가 이것을 써서 이렇게 예뻐졌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게 효과가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카우보이 배경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늘 다니던 라시에나라고 하는 산 언덕길이 있는데 그 언덕을 넘어갈 때 보면 대형 광고판에 한 6개월~1년마다 광고물이 바뀌는데 언제나 등장인물은 카우보이입니다. 그 카우보이가 해가 넘어가는 석양에 말을 옆에 세워놓고 돌멩이 세 개 갖다 놓고 무슨 조그만 그릇에 커피를 한잔 끓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림에 커피를 딱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 하면 “맥스웰” 그 그림만 보면 나는 커피를 안 마시지만 마시고 싶습니다. 얼마나 멋진지 ‘나도 저렇게 한잔 들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어떤 때는 또 그 산 마루턱에서 먼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앉아서 담배 한 개비 물고 옆에 “말보로”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지만 그 그림 보면 담배 한 개 피워보고 싶단 말입니다. 

예수님이 유대 나라 대통령이 되셨다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정치적 혜택이 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조그만 나라의 대통령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산으로 도망을 가셨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 되셨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18절에 “라마의 라헬의 통곡”이라는 우리가 잘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라헬은 야곱의 본처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어 늘 슬퍼했잖아요? 늦게 출산한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에 행방불명된 아들 때문에 평생을 가슴 아프게 살다가 결국 요셉을 보지 못하고 한을 품고 죽어 라마에 묻혔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태를 기록한 마태 기자는 이 사건이 오늘을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노예 같은 식민지가 되어 굶주리며 이제 아들을 낳았는데 헤롯이라는 짐승에게 물려서 다 죽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라마에 묻힌 라헬의 통곡 소리가 온 거리를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은 애굽에서 최고의 영광스러운 궁중 책임자가 되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자기 가족을 불러 평생을 먹여주었잖아요? 지금 예수를 헤롯에게 죽지 말라고 애굽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만왕의 왕 요셉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의 해석입니다. 라마의 통곡 소리는 오늘 날에도 변함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가 세상을 이기게 되고 예수는 만왕의 왕으로 영원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캐럴 송이 이것저것이 나오는데 그중에 ‘루돌프 사슴 코’라는 노래가 있지요? 아이들이 즐겨 부르고 온 세상 어린이들이 이때가 되면 다 부릅니다. 로버트라고 하는 작가가 있었는데 글을 써서 원고를 어디에 보내봐도 안 팔렸습니다. 1938년 경제 공항에 닥쳐서 이제 밥도 못 먹게 되었고 아내는 5년째 병들어 있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은 자기가 돌보아야 합니다. ‘이거 어떻게 살아가나?’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가 어느 날 “빨간 코 루돌프”라는 글을 썼더니 그것이 미국 최고의 잡지 몽고메리 워드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에 희망이 생겼는데 그 내용은 루돌프라는 사슴이 있었는데 생긴 게 이상하게 코가 빨갛고 큽니다. 그래서 다른 사슴들이 날마다 막 놀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 루돌프 사슴은 항상 왕따를 당하고 친구가 없는 외로움의 시간을 계속 보내게 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이상한 사람이 들이닥쳤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끌고 갈 사슴을 구하는데 어떤 사슴을 고를 것인가? 루돌프 사슴이 선택되어 산타와 함께 온 세상을 달리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왕따 문화를 잘 극복하고 결국 승리한 내용 때문에 온 세상에 이 노래가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퍼져서 희망의 노래로 그렇게 많이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희망이 되었는데 세상의 모든 선진국들이 성경을 기초로 해서 국가 정의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기준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도 혼란과 비극만이 존재할 뻔 했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2009년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가 정한 겁니까? 왜 2009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를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새 역사의 기초가 되었음을 온 세상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셔서 헤롯도 함께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 세상은 헤롯이 갔던 길을 가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가 갔던 길을 가는 사람이 항상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헤롯왕이 죽은 후에도 그 아들들은 나라를 세 쪽으로 나눠가져서 70년이나 더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셨을 때는 아버지 헤롯이었는데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그의 둘째 아들 헤롯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키는데 협조한 사람입니다. 당시 최고의 실력권세 실세들은 헤롯 당원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6절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 23장 11절에는 헤롯이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헤롯 때에 탄생하시고 그의 핍박 시대에 사셨으며 그 아들 헤롯에 의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헤롯은 대성공한 사람같이 역사에 비춰졌고 예수는 대실패자같이 역사에 비춰졌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2장에 헤롯의 시대는 끝남을 선언합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곧 죽으니라.” 이로서 헤롯의 시대는 종말이 왔습니다. 예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온 세상은 이 12월을 바로 그분이 탄생한 생일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많은 경비를 쓰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온 세상이 난리입니다. 승리의 왕, 평화의 왕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헤롯의 길을 따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2009년도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셔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시여!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님 백성들의 모든 준비와 모든 행위를 기뻐 받으시고 우리가 부르는 찬양을 받으시며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동방박사들과 같이 받으시며 주님이 말씀하신 평화가 사람마다 가정마다 나라마다 임재케 되는 축복의 2009년 성탄절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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