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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히 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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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히 10:5~10) 


「스탠버그의 십자가」라는 그림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스탠버그라는 화가는 성 베드로 성당 측의 부탁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림을 중단하고 페티타라는 집시 여인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는 것보다 집시 여인의 그림을 그리는 편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이 중단된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건성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었다는 이 훌륭한 분을 선생님도 사랑하고 계시겠지요?"
그 말 한 마디가 그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은 십자가로 나를 구원하셨지만 나는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림 값으로만 따졌구나.'
얼마 동안 깊은 묵상에 잠겼던 그는 다시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아래에 이런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이 모든 일 당하였건만 너 나를 위하여 무엇하였느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그린 그 그림은 매우 감동적이어서 진첸도르프 백작의 마음을 움직여 그로 하여금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혹시 스탠버그와 같은 사람은 없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주님을 다만 나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을 맞으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그 주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주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주님이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주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습니까? 주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가난을 아십니다. 고생을 아십니다. 주님은 슬픔도 또한 아십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심지어 시험까지 받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그렇습니다!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이 모든 것을 겪으셨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예비하신 한 몸을 입으신 까닭입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몸으로 오신 주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7절 말씀과 9절 말씀을 통해서 거듭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하신 기도가 기억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6장 39절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형식적인 제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주님의 몸으로 드려진 제사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왜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친히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53장 6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이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순종하신 주님은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몸을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결코 거룩할 수 없지만 주님이 그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고훈 목사의 "나의 주 당신은"이라는 감동적인 시가 있습니다.

나의 주 당신은
나를 올라가게 하시려고 당신은 내려오셨습니다.
나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당신은 태어나셨습니다.
나를 부유케 하시려고 당신은 가난하셨습니다.
나를 아들 되게 하시려고 당신은 종이셨습니다.
나에게 하늘의 거처를 주시려고 당신은 집이 없으셨습니다.

나를 배부르게 하시려고 당신은 굶주렸습니다.
나를 마시게 하시려고 당신은 목마르셨습니다.
나를 옷 입게 하시려고 당신은 벗으셨습니다.
나를 쉬게 하시려고 당신은 짐을 지셨습니다.
나를 인정받게 하시려고 당신은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시려고 당신은 슬프셨습니다.
나를 복되게 하시려고 당신은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은 죽으셨습니다.
나를 높이기 위해 당신은 살아나셨습니다.
실로 당신만이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모든 고통은 바로 나를 위한 고통입니다. 주님이 배고픔을 겪으신 것은 바로 나를 배부르게 하려고 하심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낮은 땅에 오신 것은 나를 영광스러운 곳에 앉히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일찍이 개혁자 루터도 십자가는 즐거운 교환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이 생명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교환되었습니다.

화가 렘브란트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그린 후 거기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군중 틈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울면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못 박았다. 나는 그 일에 동참하였다."
진정으로 깨닫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기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이야기는 그 때 그들의 이야기로 그쳐서는 아니 됩니다. 바로 오늘 나와 주님의 관계에서 고백되어야 할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 누구 다른 사람이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시려고 친히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거룩한 순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주님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드리기로 다짐하고 결단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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