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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의 은혜(14)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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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은혜(14) (고후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2:7-10

역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역경은 누구에게나 있고 원하든 원치 않던 늘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역경의 은혜’ 14번째 메시지는, 역경을 당할 때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역경은 나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 살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1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힘에 지나치도록 심한 고생을 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심한 고생을 하였고, 한 때는 살아갈 소망마저 사라졌던 고난을 고백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그 고난의 내용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바울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신기할 정도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고난의 특징은, 그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극심한 고생들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난이 부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부러운 것은 그가 최상의 가치인 복음을 위해 그 많은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난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우리의 고난을 생각해봅니다. ‘나의 고난은 무엇 때문인가?’ 나의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 나의 개인적 갈등, 나의 욕심을 추구하다가 일어난 고난, 결국 나라고 하는 작은 존재를 위한 고난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고생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사도바울처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예수를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좀 더 가치 있는 고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겪은 수많은 고난에서 그저 고난만을 당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고난들의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우리가 힘들 때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혼자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죽을 지경이었을 때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나서 그 모든 고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역경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혈과 육을 가진 인간입니다. 요즘 신종 플루 때문에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만 해도 힘을 못씁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5분만 숨을 못 쉬어도 생명이 끊어지지요. 옆 차와 한 번 부딪치는 순간 온 몸이 다 깨어져 버립니다.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하면 우리 몸은 심각하게 상합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부부가 아침에 직장에 가기 전 한 두 마디만 다투어도 하루 종일 괴롭고 속이 상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도전과 역경과 어려움들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큰 바위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자살 1위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까지 일본이 1위, 헝가리가 2위, 우리가 3위였는데, 우리 국민들이 삶이 힘들어지면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혼도 1등 입니다. 작년 1년 동안에 5,60대 이혼이 30%나 늘었습니다. 30년 이상 참아줬으면 됐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나서면서 장년들의 이혼이 이렇게 많이 늘었습니다.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시련들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도 비슷한 삶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내 능력이 부족하고 내가 약할 때는 내 능력만 의지하며 휘청거리지 말고 능력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를 의지하면 밤을 새워 고민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약할 때는 문제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체험을 하십시오.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 지금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그분과 함께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1:9). 

왜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과 역경이 있나? 그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을 때 자신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감당키 어려우면 바로 하나님 앞에 다가가 말씀드리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고후1:10).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수많은 어려움에서 구원 받은 체험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자신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려내신 전능자이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 무덤에 장사지냈으나 하나님의 능력은 부활의 능력이었습니다. 그 시체를 사흘 만에 살려내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자가 오늘도 우리를 죽음의 위험과 온갖 어려움과 역경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과거에 수없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뿐 만 아니라 오늘 내 앞의 모든 어려움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도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실 것을 믿고 의지하노라”(고후1:10). 현재의 믿음과 미래의 믿음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옵니다. 과거에 내가 힘이 부족 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원의 손길을 경험한 체험이 있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 그런 체험이 없다면 이제라도 삶의 역경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역경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줍니다. 승승장구하던 사람도 한 번 벽에 부딪쳐 보고 실패해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이 잘 될 때 마치 자기가 잘 해서,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인 줄 압니다. 교만해집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여러분이 승승장구하도록 축복하셨음에도 여러분이 교만하지 않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제가 45년 전에 뉴저지의 어느 미국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시절 한국의 허술하고 작은 집들만 보다가 미국 집을 들어가 보니 얼마나 크고 멋지던지요! 그 집 주인은 거실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서 폭포도 설치하고 화초도 키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부인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나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가 천국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집 안에 작은 동산을 하나 만들어 놓고 천국이라고 자랑하는 어리석은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침실이 몇 개 더 있다고, 거실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 놓았다고, 자기가 하나님인줄 알아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이런 교만, 우리가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역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인간이 별거 아니라고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힘이 듭니다. 살려 주세요. 저를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제 연약함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한 번 두 번 체험하면서 계속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입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12:8)... 사도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가시가 옆구리를 꾹꾹 찌르니 견딜 수가 없어 하나님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약할 때 내가 너를 돕기 때문에 너는 나의 강함을 체험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 함이라”(9절)고 했습니다. 나의 약한 부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약한 내가 강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힘들 때마다 오히려 기뻐하여 그 힘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능력을 체험합니다. 여러분도 연약할 때, 힘들 때, 감당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다가가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적 간섭하심을 체험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제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나가서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놀랍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돌보시며,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간증이 우리 평생에 있기를 원합니다. 역경을 당해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드디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또 왔구나!’하는 기대감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군대에 쫓기다가 홍해 앞에 이르렀습니다. 큰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나와 죽이려 하느냐?”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이제 조용히 서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홍해가 앞에 없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약 곳곳에 등장하는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요, 홍해를 건넌 일은 역경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건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수로 범람하고 있는 요단강에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그러나 법궤를 메고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들어섰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위기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기회입니다. 

넷째, 위기는 기쁨을 누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위기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지금이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인 줄 알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불과 같은 시험을 당해도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도 “온갖 종류의 시련을 당하거든 너희는 기뻐하라.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시간이 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체험할 때마다 믿음이 부쩍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고 찬송하고 감사합니다. 그 믿음과 그 체험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을 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고 내 모든 상황을 아시는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내 삶에 나타나도록 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역경을 감당할 수 없어도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은 소원과 기대가 생깁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날 때가 되었도다!” 이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역경은 인간의 연약함을 노출시킵니다. 그러나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실 기회입니다. 나 자신 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모든 역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더 높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예수님을 떠나서는 영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 때만 영적 결과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앞장서서 내 인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자신을 온전히 주께 드리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내 안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역대하 20장 15절에 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사밧 왕이 주변의 세 나라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데 이스라엘 군대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야하시엘을 보내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상대의 큰 병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신의 약한 군대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 편에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우리 편입니다. 어떤 종류의 역경이 와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느니라!”는 신앙고백이 여러분에게 꼭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약한 것을 깨달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때입니다. 당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로 맡기십시오. 우리의 약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대신 싸워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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