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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것도 크게 쓰임받을 수 있다 (요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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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크게 쓰임받을 수 있다 (요 6:1~15)  
 
 
1.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요한복음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재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지 점검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 열두광주리가 남도록 축복하신 기적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소문이 나면서 갈릴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오늘 본문에서는 “큰 무리”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2절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님에게서 뭔가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욕심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인격이나 도덕성에 무관합니다.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도 넉넉히 베푸시는 사랑,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입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처럼 조건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환경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날이 저물어가는 저녁시간, 예수님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은 도시락을 준비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빈들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일거리입니다. 요즘 어느 나라에서나 고용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직장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갑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갑니다. 빈들입니다. 얻을 직장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빈들에 먹을 것도 없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6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는 이미 해답이 있습니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주님은 그 해결책을 이미 갖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큰 일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께 맡겨버리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님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이미 해답을 갖고 계시면서 빌립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물어보신 것입니다. 오병이어, 이 기적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사건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였으니 당시 여자와 어린이들을 포함하면 2만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이게 가능합니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적이라고 합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데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주님의 교회 새신자반에 다니던 한 여성도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2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한 해동안은 매주일 예배시간에 일부러 지각을 했다고 합니다. 항상 설교시간에 맞추어 예배당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새해를 맞이하여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왕 예배드릴 바에야 미리 가서 기도로 예배에 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새해 첫째 주부터 예배시작 20분 전에 예배당에 도착,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예배가 훨씬 은혜로웠음은 물론입니다. 2월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빨리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린 뒤 예배 시작 직전에야 돋보기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올해 56세인 그분은 돋보기 없인 전혀 글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집에 다녀올 여유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돋보기 없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돋보기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찬송을 부르기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신비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돋보기 없이는 한 글자도 볼 수 없었던 그분이 눈에 찬송가의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책과 주보의 깨알처럼 작은 글씨까지도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맨눈으로 글을 읽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기쁨으로 감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돋보기 없이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 그 날 예배시간만의 경험이었을지라도, 그 경험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이재철, 요한과 더불어 2, p.307-308)

오늘도 오병이어의 기적,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테스트에 빌립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7절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계산이 빠릅니다. 얼추 계산해보니 조금씩 먹여도 200데나리온의 돈으로도 부족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5만원쯤 됩니다. 200데나리온은 천만원쯤 됩니다. 2만명 정도 먹이려면 천만원 갖고도 부족할 것입니다. 빌립의 이 말은 곧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천만원이 없을뿐더러, 있다손치더라도 어느 마을에 갑자기 천만원어치 빵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만한 빵집도 없을 것입니다. 

빌립은 이성적인 사람이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자기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맡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주님, 계산해보니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 이상의 돈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주님이면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면 만점입니다. 이렇게 계산이 빠르고 합리적이면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빌립과 대조적으로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는 뭐라고 합니까? 9절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 말에서 안드레에게 배울 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있는 것을 생각하라.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어른이 남자 장정만 5,000명이 넘는데, 아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은 도리어 부담만 되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안드레는 문제 상황에서 한 아이를 찾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아이, 작은 아이를 찾아낸 것입니다. 이 아이가 갖고 온 오병이어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기적의 씨앗을 본 것입니다. 

빌립은 불가능한 것을 생각했지만, 안드레는 우리 안에 있는 것, 즉 가능한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없는 것, 안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 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없는 것 생각하며 원망, 불평, 짜증내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둘째,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의 주식은 밀이었습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습니다. 물고기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옵사리온’ 이라고 하는데,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작은 물고기를 말합니다. 보통 먹을만한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투스’ 라고 합니다. 어부들은 별 가치 없는 작은 물고기 ‘옵사리온’은 내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주워다가 간을 쳐서 반찬을 만들어 먹습니다. 이 아이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임이 분명합니다. 안드레는 가난한 아이의 작은 도시락, 이 하찮은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빌립은 큰 것만 생각했습니다. 200데나리온, 전체 경비를 생각했습니다. 아찔합니다. ‘이 돈을 어디에서 장만할 수 있는가? 안돼.’ 이것이 빌립의 마음입니다. 

오병이어, 이것 갖고 누구 입에 부치겠는가?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 드리면 놀라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안드레는 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 죽을 병에 걸린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 불치의 만성병에 걸린 38년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기적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빌립은 결과만 생각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적어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과정을 중요시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주님의 손에 잡히면 크게 쓰임받을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셋째,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의 손에 올려 드려라.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것은 작은 것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주님, 어떻게 해보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안드레는 기본적으로 신앙중심적인 사고를 했습니다. 신본주의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주님을 생각하기보다 현실을 더 깊이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힘만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중심, 인본주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앉게 하시고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축사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오,’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나서 나눠주시니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면 크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보잘 것 없다고, 가진 것이 적다고 루저(loser)가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실패자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2010년 새해 건축, 선교, 장학헌금 작정서를 나눠드렸습니다. 올해 이미 2차 건축헌금 작정을 하신 분은 건축헌금작정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새성전건축에 따른 부채가 조금 있습니다. 우리 보기에 크고 약간은 부담스러운 부채이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에 우리의 작은 것을 올려 드리면 그 작은 것이 기적의 씨앗이 되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선교헌금은 캄보디아의 김선교사 생활비로 보냅니다. 김선교사는 캄보디아국경에서 20달러에 태국의 성적 노리개로 팔려가는 어린 소녀들을 구출하여 재활치료를 하고 있고 부모잃은 고아들을 양육하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김선교사는 중국인 리더를 세워 작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방선교사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신경희선교사는 키르키스탄에서 기독교대학교를 설립하고자 준비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선교헌금이 이들 선교사들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데 크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학헌금은 우리교회의 중고등, 대학생들 중에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적은 액수지만 학자금지원을 하는데 쓰입니다. 크리스챤 리더를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작은 동참을 바랍니다. 

3. 빌립처럼 계산하며 사는 사람은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부족”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원대로 주고도” 열두광주리가 남는 넉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 오병이어, 나 혼자 사용하기에도 부족한 오병이어, 이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지 않으시렵니까?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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