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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내시의 성경공부 (행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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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의 성경공부 (행 8:26~39)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의 근원을 알 수 있고 창조과정과 나의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운명과 나의 종말을 알 수 있고 종말 이후의 문제나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없을 때에는 진화론이 대세였습니다.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주어지면서 이 세상의 근원이 분명해졌고 창조과정이 적나라하게 밝혀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섭리와 계획을 모두 성경에서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경을 연구하고 풀어야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을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것처럼 수고하고 노력하여 밝히고 찾는 사람만이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점을 오늘 읽은 본문이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디오피아의 내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디오피아 왕국의 국고를 맡은 장관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가는 길에 마차를 타고 가며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이 내시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돌아가는 독실한 유대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그 성경이 이사야서 53장이었습니다. 

그가 그 성경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빌립에게 명하여 그에게 가 보라고 지시하십니다. 여기 빌립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7집사중 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고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그 핍박을 피하여 돌아다니던 디아스포라 중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빌립을 사용하셨습니다. 부름을 받고 빌립이 급히 가보니까 내시가 마차를 타고 가며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쳐 주었더니 듣고 감동을 받고 회심하여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 결과 이 내시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이디오피아에 돌아가 복음을 전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디오피아 나라가 전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접한 나라가 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한 사회의 리더가 되면 역할이 그렇게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의 회심이 한 나라를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여기 내시 한 사람이 회심하는 순간 이디오피아 나라와 민족이 전도되고 회심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내시가 성경을 공부하는 순서가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을 손에 들음   

성경을 손에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입지 않으면 성경을 손에 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손에 성경을 들고 읽고 묵상하고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생활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을 입은 삶인 줄 아십시오. 내시는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는 길에 이사야서를 깊이 묵상하고 지금 진지하게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 깊이 알려고 성경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첫 번째 순서가 성경을 읽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의 근원이 들어있고 기준이 들어있고 각종 비밀이 들어있고 그 해답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캐논이라고 부르고 바이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모든 교훈 중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고 법의 기준이 되고 삶의 기준도 되며 인생의 기준이 되고 영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하였습니다. 박멸하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하겠다 싶어서 먼저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읽다가 그는 박멸이 아니고 스스로 성경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를 박멸할 것이 아니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이제는 그 하나님을 증거 해야겠다 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벤허라고 영화이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생키비치라는 감독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거기에 길이 있고 뜻이 있고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 내시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작은 일이 마침내 이디오피아 한 나라에 전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리고 갈구하면 하나님은 누군가 보내서라도 가르쳐 알게 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내시의 겸손 

내시는 본디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거리가 자그마치 15,000km나 되는 곳을 마차를 타고 한 달을 달려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제 일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국 도중에 마차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읽은 성경은 오늘 우리들이 읽은 사도행전이 인용한 이사야서 53장 내용입니다. 내시가 고난 받는 종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지만 그는 그 고난 받는 종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사마리아에서 사역 중이던 빌립을 그에게로 보내신 것입니다. 빌립이 명령에 순종하여 급히 가보니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이해되느냐 ?”고 묻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빌립을 청하여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면서 “여기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이 누구냐 ?”고 묻습니다. 

빌립이 “그는 고난받 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고 “오셔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당하고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내시는 그 내용이 생전 처음 듣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과정을 듣지 못하여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충격도 컷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회심하고 마침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내시는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르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한 나라의 국고 맡은 장관이니까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는 자가 없는데 어찌 알겠느냐, 올라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전도할 때 더 잘 영접합니다. 겸손함은 축복이고 은혜 받은 성품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의 사역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성령은 오늘도 쉬지 않고 이렇게 다니시며 역사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령을 통해서 “알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설교를 들으면 곧 잊어버리는데 그것도 은혜입니다.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걱정할 것 없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마음에 뜻을 품으면 그 뜻을 풀어줄 사람을 보내 주시고 그 뜻을 이룰 사람을 알게 하시고 성취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내시는 이사야서를 읽어도 뜻 모를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때 성령이 사람을 보내서 알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이 뜻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뜻을 간직하고 품으면 그 다음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신비 경험 

빌립으로부터 내시는 그 고난 받는 종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고난은 곧 십자가의 고난을 말합니다. 내시는 그 십자가의 고난은 다름 아닌 자신을 위한 고난임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십자가와 예수와 구원과 부활 같은 언어를 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풀지 못한 질문의 해답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내시는 자기의 인생에서 자기의 지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는 신비함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얼마나 신비함을 느꼈겠습니까.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이 길을 구원의 길이라고 부르고 구원의 도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보면 말씀을 접하고 신비를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유다왕 요아스는 성전수리를 하다가 발견한 율법 책을 발견하여 읽은 후 지금까지 율법 책을 모른 채 기준 없이 너무 무지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하나님께 너무 죄스러워 놀라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 강화도에 살던 유학자인 종순일이라는 사람은 큰 지주였습니다. 그 일대의 사람들이 그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독교인이 된 후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임금님에게 탕감 받는 대목을 읽다가 충격을 받습니다. 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빚 진자들을 다 모아놓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빚 문서를 다 불태우면서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도적은 남의 집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쳐다 팔았는데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는 책이 한권 있어서 펼쳐 읽는데 첫 구절 에베소서4장28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는 도적질 하지 말고”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움을 느꼈겠습니까.  어거스틴은 방탕생활 하는 도중 우연한 기회에 성경을 들고 펼치는 순간 로마서13장13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방탕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호색하지 말며”. 그래서 모두 순간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영감의 의해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다가 처음으로 십자가와 부활과 예수를 알게 되면서 그는 충격과 감동과 신비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단 

그리고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는 빌립에게 “내게 세례를 달라, 무엇을 더 주저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스스로 결단하고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그 내시가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이디오피아 사람으로서 첫 번째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된 셈입니다. 오늘 세례를 한낱 형식적인 것을 꼭 받아야 하느냐 하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식한 것 같지만 아주 무지하고 교만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형식적인 것이면 예수님은 왜 굳이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세례를 받기 위해서 광야 요단강까지 나아갔겠습니까. 그리고 세례요한은 또 굳이 그 형식적인 세례를 베풀려고 안달을 했겠습니까. 몰이해도 어쩌면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예식을 경시하는 태도도 교만일 수 있습니다. 이 내시는 참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나에게 세례를 달라”. 

그 결과 내시는 그 순간 지성으로 깨달은 것을 영적으로 체험하는 새로운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내시는 여기서 지적으로 예수를 알았고 영적으로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적 수준자가 영적인 수준자로 변모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의 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로 발 돋음을 한 것입니다. 그 후 영적인 발전의 삶을 통해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였고 그 스스로 영적인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는 결단력입니다. 우유부단은 신앙생활의 적입니다.  머뭇머뭇, 기연가미연가, 우유부단, 꾸물꾸물은 모두 신앙생활의 적입니다. 내시는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결단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주저하겠는가, 나에게 세례를 달라.” 그 말은 “나는 이제부터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하시고 역사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뜻을 이루십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 싶을 순간에 그때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빌라도를 찾아가서 담판하여 예수의 시신을 인수하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마리아는 지금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임을 알고 주저하지 않고 옥합을 깨트려 예수의 머리위에 부었습니다. 에스더는 지금이 내가 일어날 때요 나만이 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위해서 탄원합니다.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름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쫒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나는 이제부터 예수만 알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이 결단력이 발휘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시는 무서운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모르니 가르쳐 달라”, “내가 무엇을 더 주저하겠는가, 나에게 세례를 달라” 이 결단력이 마침내 한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결단력이 있는 사람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결국 변화 받은 사람 빌립 한사람에 의해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 회심합니다. 그리고 내시 한사람을 통해서 이디오피아 나라에 복음이 전달되고 복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아프리카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사람은 결코 나 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큰일을 이루십니다. 

복음이 세상에 주어질 때 예수 한사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12제자로 늘어나고 그 12명의 제자가 70명으로 120명으로 3천명으로 5천명으로 증가하여 마침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것도 처음에 한 두 사람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20년이 지난 오늘 천 만 명이 복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복음은 또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성령 사역 

이와 같은 역사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은 전도하는 영이십니다. 오늘 교회의 부흥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은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확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실 계획을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결단력을 가진 내시를 활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빌립을 보내 그를 가르치게 하였고 그 내시로 하여금 세례 받게 하여 그를 활용하신 것입니다. 이 빌립은 스데반이 순교할 때 사마리아로 도망가 전도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때 성령이 빌립을 광야를 지나가고 있던 내시에게로 보내셨고 빌립과 내시의 잠간의 대화가 그 잠깐의 대화가 멀리 이방땅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 박해가 주어진 것은 당장 생각할 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좀 멀리 보면 하나님은 그 핍박을 통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의 벽을 허물었고 또 그 기회에 이디오피아까지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사람의 집사를 통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고 그리고 지경을 훨씬 넘어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까지 복음을 확장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내시가 성경을 손을 드는 순간부터 이 기적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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