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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주어라 (막 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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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주어라 (막 6:30~44)


19세기 프랑스의 신학자 르낭이라는 사람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것은 기적이 아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실상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자기 도시락을 서로 꺼내 놓아서 5천명이 먹고도 남은 것이다. ’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부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또는 이적적 사건들에 대하여 믿지도 못하고 안믿지도 못하는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정과 의심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볼 때 그 가운데 전개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발견하게 되며 그 사실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큰 기쁨과 유익이 된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잘 알려진 그래서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진 오병이어의 사건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예수님의 의도를 주제로 설교하고자 한다. 

이 흥미진진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표면적으로는 벳세다 들녘에 모인 약 이만 여명의 무리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이면적으로는 열 두명의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만 여명의 무리들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막 6:3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은 당황한 나머지 예수님 향하여 되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떡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 명하신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안드레가 가져온 보리떡 5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서 받으셨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곳에 모인 무리들 성인 남자 5천여명과 여자와 어린이들이 실컷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다. 그렇다면 이 기적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1.위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은 먹을 것을 나눠줄 자가 바로 제자들이란 뜻이다. 지금은 내가 하지만 앞으로는 내 대신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제자들에게 부여될 사역이 어떤 것인지를 예증하신 것이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많은 무리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치 세발 자전거나 겨우 몰고 다닐 어린아이에게 자동차를 운전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지금은 못하지만 앞으로는 네가 해야 할 일임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위험하다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못하게 하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에게 일을 맡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할 줄을 모르지만 책임을 부여하고 가르치면서 위임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잘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잘 못했다. 실수 투성이였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약속하신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셨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당당하게 무리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2.내용 - 먹일 양식에 관한 것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12제자들의 전도사역과 관련이 있다. 30절 말씀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전도여행을 떠났던 제자들이 와서 보고한 것이다. 그들의 전도 활동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더 확산되어져 갔다(막 6:12-13). 

제자들의 전도를 받고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 들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31절 말씀에 보면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에게 잠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피하여 가셨다. 휴식을 위하여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막 6: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모여온 사람들을 볼 때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요즘 말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강사가 되시고 그 곳에서 즉석 사경회가 개최된 것이다. 언제까지 계속되었는가? 해가 질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런데 34절에서, 모인 무리들을 보셨을 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그 무리들이 불쌍했을까요? 그 이유는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목자 없는 양은 왜 불쌍할까요? 목자 없는 양이 불쌍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학자 윌리암 버클레이는 3가지 이유를 말했다. 

1)목자 없는 양은 길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목자 없는 양은 목장과 먹을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목자 없는 양은 위협하는 위험에 무방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인생이 불쌍한 것은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돌봐 줄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왕과 지도층의 사람들이 지도력을 상실했을 때 열강들에게 유린당하고 결국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주권을 빼앗긴 일제강점시대의 비극을 경험했기에 목자 없는 양의 형편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리들을 불쌍한 지경에서 건져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34절 하반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셨다고 했다. 불쌍한 지경에 처한 무리들에게 첫 번째로 예수께서 시행하신 것은 교훈의 말씀 곧 신령한 양식을 먹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기셨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무리들에게 떡을 먹이셨지만 그 떡은 재료가 밀가루가 아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 곧 신령한 떡인 것이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앞으로 무리들에게 먹여할 떡은 육신의 배고픔을 면케할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 곧 주의 말씀을 먹여야 할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3.방법 - 그 양식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예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먹을 것을 무리들에게 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주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먹이신 것처럼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먹이신 방법은 무엇인가? 

1)긍휼의 마음
34절에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고 했는데, 불쌍히 여김이란 곧 긍휼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긍휼의 마음으로 양식을 먹여야 한다. 선생이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위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예)물과 나무. 

2)질서 
39-40절 말씀에 보면, ‘백씩 오십씩 앉은지라’고 되어 있다. 질서 가운데서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도 질서 가운데 가르쳐져야 한다. 

3)풍성
배불리 먹고 남았다. 42-43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니..’라고 되어 있다. 말씀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초기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사도들은 목자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잘 가르쳤다. 신자들이 말씀을 듣고 믿음이 성숙해졌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은혜 가운데 든든히 세워져 갔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분부하신 말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명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교훈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1)생명의 양식을 나눠줄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직분을 바로 우리, 나 자신에게 위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받아 먹기를 잘하지만 자신이 가르쳐야 할 책임을회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놀랍고도 권세 있는 직분을 포기한다. 가장 좋은 교사는 아버지요 어머니다. 

누구에게 가르칠 것인가? 먼저는 내 가족들에게 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먼저는 내 자신이 말씀을 나눠줘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부모에게 있었다.

신 6:6-9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2)생명의 양식을 주님의 심정으로 주라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려고 부모들을 노력한다. 좋은 음식, 좋은 옷, 명품을 주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교육이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이 공급해서 자신이 만족해야 하니까 그렇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나눠주는 자이지 공급자는 될 수 없다. 공급하시는 분은 오직 생명의 떡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양질의 좋은 양식을 공급하려면 예수님께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골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내 속에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내가 은혜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며 은혜를 끼치게 된다. 나의 자녀들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과연 무엇을 주는 것이 그를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일까?

말씀에 너무 무지하지 않은가? 무엇을 사모하는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돈만 주면 그 자녀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돈도 주되 말씀과 함께 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 나 자신이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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