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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성탄의 조연 (눅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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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조연 (눅 1:26~38)


세계 3대영화제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칸영화제와 독일의 베를린영화제, 그리고 이탈리아의 베니스영화제입니다.  이중에서 베니스영화제가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전통이 있습니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국도 오래전부터 출품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국의 배우가 세계 영화제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87년 베니스영화제입니다.  강수연이란 배우가 임권택감독의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에 전도연이란 배우가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한국영화와 배우들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많이 높아졌습니다.

영화제의 시상에서 당연 돋보이는 것은 주연입니다.  하지만 주연 못지않게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조연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주연이 잘해도 조연의 뒷받침이 없으면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독은 조연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캐스팅한다고 합니다.

세계역사와 성경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성탄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성탄을 한편의 영화와 같이 생각한다면 성탄의 감독은 하나님이시고, 주연은 당연히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성탄에도 조연이 있습니다.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주듯이 성탄의 조연상이 있다면 누가 받을까요?  우선 여우조연상은 당연히 마리아가 받게 될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이 예수님이기에 조연이지, 마리아의 인생영화제에서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상을 받을 사람입니다.  

영화제에서는 배우의 연기로 상을 받겠지만, 성탄의 조연상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당시 누구보다도 뛰어난 믿음으로 마리아는 빛나는 여우조연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그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녀는 과연 어떻게, 무엇으로 성탄을 빛낸 조연이 되었을까요?

첫째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인성을 강조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부분이 가장 돋보이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 가장 많고, 가장 세심합니다. 
우리가 대부분 아는 탄생에 관한 모든 내용은 대부분 누가복음을 근거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탄생을 예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이 곧 바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를 알려줍니다.  그 중심에 마리아가 있고, 또한 세례요한의 탄생을 알린 천사 가브리엘이 있습니다.  본문은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가 중심입니다.  

그 중에 우선적으로 주목할 말씀이 37절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이 말씀 앞에 마리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그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린 모든 소식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28절에 그에게 평안을 전한 것도 말씀이고, 31절에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성경의 예언대로 알린 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사의 역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여기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천사가 마리아를 확신시키기 위해 36절에서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의 수태를 알리는데, 이것도 역시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다 말씀이고, 말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말씀이 그에게 임한 것이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38절에서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말씀 앞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마리아의 신앙이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당시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말씀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그는 살았습니다.  말씀이 날마다 그녀에게 임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못지않게 마리아는 말씀에 능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성탄의 조연으로서 참 귀하게 사용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당시 믿음의 사람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여기에 가장 적합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오직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의 사람이 상 받고, 인정받고,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람을 불렀습니다.  한 시대에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등장하던 시대는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말씀이 들려오지 않고, 들려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시대입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사무엘도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것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신앙과 인생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사용하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사람은 다르지만 말씀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라지고, 유익하고 무익한 삶으로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확실한 규범은 말씀입니다.  말씀 외에 다른 것이 없고, 없어야 합니다.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말씀이 나를 지배할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하지만 말씀이 지나가고, 말씀에서 멀어지고, 말씀이 들려오지 않을 때 우리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서주일(The Bible Sunday)로 지킵니다.  성서주일은 성도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중요성을 알고, 성경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지키는 주일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다 갖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경을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알고, 성경을 갖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때 우리가 살아갑니다.  매일, 매순간 성경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결국 말씀의 사람이어야 함을 신앙으로 다짐해야 합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어, 말씀으로 성탄의 조연이 되고, 인생 주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순종입니다.  

마리아가 성탄의 조연상을 받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말씀의 사람이면서 순종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여기 마리아의 아름답고, 온전한 순종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순종은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당시 정황으로 보면 순종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받아드리기가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마리아가 신앙이 좋더라도 이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힘든 일입니다.  그녀가 부정한 여인이었다면 달랐을 것이지만 마리아는 깨끗하고 순결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3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것이 마리아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상황입니다.  다른 여자라면 몰라도 자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일이 알려진다면 가족들은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다.  어떻게 가족을 이해시키겠습니까?  또한 주변사람과 이웃의 따가운 눈총을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요즘도 미혼모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더 심각했습니다.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닙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만약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불결한 여인으로 낙인 되어 돌로 죽여도 무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해시키기 힘든 사람은 요셉입니다.  이미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가졌으니 어떻게 요셉을 설득시킵니까?  실제로 요셉은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믿음의 사람이어서 나팔을 불지 않고 조용히 끝내려고 했지, 악한 사람이었다면 마리아는 더 이상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것은 누가보아도 받아드리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인이라도 순종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에 마리아가 순종합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종입니다.  인간의 유익이나 영예를 위한 복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순종입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순종입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과 모든 사람을 살리고 세우기 위한 거룩한 순종입니다.  성탄의 조연상을 탈만한 믿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탄의 조연들은 하나같이 순종의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물론이고, 요셉도 순종했고, 세례요한과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순종했습니다.  안나와 시므온도 순종했고, 동방박사와 심지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도 순종했습니다.  모두가 순종으로 성탄은 빛났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것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그의 말씀과 진리와 권위 앞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 가장 우선순위를 순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사울이 불순종할 때 사무엘을 통해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열 번 백번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한번 순종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순종이 쉽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순종하기가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순종으로 됩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도 역시 순종으로 됩니다.  순종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고, 거룩하게 살지 못하고, 오래 믿어도 변화되지 못하고,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순종해야 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축복을 말씀하는 곳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라갑니다.  그냥 축복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자, 순종하는 곳에 복이 임합니다.  반대로 불순종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받은 복이라도 지속되지 못하고, 빠져나갑니다.  아무리 채워도 빠져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불순종이 받은 복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단어가 순종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다짐해 보십시오.  거룩한 말씀 앞에 거룩한 순종을 다짐해 보십시오.  반드시 순종하는 자에게 좋은 결과와 선한 열매가 있습니다.  순종으로 인생의 성공자, 승리자, 성탄을 빛내고, 인생의 주목받는 주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은혜입니다. 

마리아가 성탄의 역사에서 빛나는 조연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은혜입니다.  그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은혜로 가능했고, 순종도 물론 은혜가 가능케 합니다.  은혜가 없으면 순종할 수 없고,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말씀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출발이고, 근원입니다.

본문은 그런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온 것이 은혜입니다.  당시 많은 처녀가 있고, 마리아와 견줄만한 다른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리아를 지목했고, 천사는 마리아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계획 속에 선택받은 여인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에게 찾아와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이렇게 선포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선포한 것은 먼저 은혜입니다.  ‘마리아 너는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뒤부터 모든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후부터 모든 것이 풀린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순종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말씀이 능력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은혜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은혜는 하나님만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 은혜가 가장 귀한 것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달라집니다.

제가 한 주간 머문 곳에서 치유세미나가 있었습니다.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들어올 때의 그들의 모습을 보았고,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처음에 아주 표정이 무겁고, 거칠었습니다.  부부인거 같은데 거기에서조차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주 문제가 많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집니다.  표정도 바뀌고, 말도, 모습도, 달라집니다.  심각했던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다르게 했을까요?  바로 은혜였습니다.  은혜가 임하니까 3일안에 이렇게 달라집니다.  은혜가 임하면 3일이 아니라 3시간 안에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매주일 예배드리고 나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표정이 없고, 고개 숙이고, 후닥닥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모습에서는 그렇게 편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무엇이 이처럼 다른 차이를 낼까요?  바로 은혜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 우리성도들이 이제 앞으로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전을 짓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열심히 교회를 위해 열정과 충성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은혜가 없으면 답답하고, 뻑뻑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도 힘듭니다.  은혜만이 해답입니다.

새삼스럽게 이것을 깨달은 뒤에 저의 간구는 오직 은혜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먼저 제가 은혜를 충만히 받기를 간구했습니다.  목회자에게 은혜보다 귀한 일이 없습니다.  설교자에게 은혜보다 앞선 일이 없습니다.  설교자의 차이는 한마디로 은혜의 차이입니다.  이무리 설교를 논리적으로 준비해도, 아무리
말을 잘해도, 영혼에 감동을 주기에 은혜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성탄의 조연들은 모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겸손한 사람이요, 요셉도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탄의 조연이고, 인생의 주연이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유일한 통로요, 방법입니다.  특히 겸손히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낮아져 엎드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로 겸손히 받아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은혜는 임합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가장 큰 문제는 은혜의 문제입니다.  세상이 힘든 게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힘들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환경과 어려움이 문제도 아닙니다.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은혜를 받으면 극복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되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기에 힘들고 답답한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은혜로 풀어야 합니다.

이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한 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래서 이제 달라진 사람으로 주님을 높이고, 인생의 주연으로서 큰 상과 영예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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