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한 아기로 인한 소망 (사 9:1~7)

  • 잡초 잡초
  • 279
  • 0

첨부 1


한 아기로 인한 소망 (사 9:1~7) 
 
 
이사야 시대는 어둡과 흐린날과도 같은 시대였습니다. 오늘의 우리의 현실이라고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전쟁위협의 상존, 정치경제의 불안정, 각색질병의 창궐 등등......... 이사야는 이런 시대에 "한 아기를 인한 소망"을 선포하고 모든 백성들이 믿음으로 소망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예언을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란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구원이시라"입니다. 이사야는 한 아기를 인한 구원의 소망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앞을 내다보며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흑암에서 빛을 바라보고, 책망과 심판에서 용서와 영광을 바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길은 기적의 산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은 매일같이 동료들이 가스실의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날마다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란 걸 믿는다. 하지만 그는 조금 늦게 오신다.' 하지만 그 중에 한 외과의사는 어느 날 강제노역 중 흙 속에 묻힌 깨진 유리조각을 주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수염을 면도하면서 자신을 세워갔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항상 소망과 의욕이 넘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지니려고 몸부림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매일 가스실의 사형장으로 죄수들을 잡아가는 간수들은 이 외과 의사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매일의 삶 속에서 위의 노래를 오히려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그는 수없이 죽어나가는 동료 유대인들을 보려고 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믿음은 논리나 경험, 지식을 넘어서는 사건이었고,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철저히 자신을 맡기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때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사람은 어떤 현실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식 동물은 풀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기를 먹고 자라면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광우병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가 풀을 먹어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때문에 육식을 시켜서 빨리 성장시키려다보니 소가 미쳐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떡으로만 살려고 하면 인간의 본질성과 존엄성을 잃게 됩니다. 오늘의 현실이 우리에게 육신적인 것을 요구할지라도 말씀을 먹음으로써 하나님꼐 소망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한 아기로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아기 그분이 소망이었습니다. 

1. 한 아기가 오면 흑암이 없어지고 영화롭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블론과 납달리는 팔레스틴의 변방으로서 북방민족들의 끝임없는 침입을 받아 늘 시달렸고 압제를 받아 황무지와 같이 되었던 곳입니다. 
아람의 벤하닷과 앗수르 군대의 침략으로 무자비하게 짓밟혔던 곳입니다. 젊은 남녀들은 모두 죽여버리고 어린 아기들은 댓돌에 메쳐 죽이고 똑똑한 사람들은 포로 잡아가 가고 쌓아 놓았던 재물들은 모조리 빼앗아 싣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초토화되었던 곳입니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소망이 없는 가난과 고통과 눈물과 한숨과 부르짖음의 샘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갈릴리는 주로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워졌습니다. 그것은 피가 썩였다는 말입니다. 순수한 이스라엘의 피에 여러 이방사람들의 피가 섞여서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이방인의 종교와 풍속이 섞인 갈릴리 지방은 이방이 아니면서도 이방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스블론과 납달이 그리고 갈릴리가 한 아기로 인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아 이후의 삶은 '흑암이 없어지고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무겁게 하다, 비중 있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로 보이던 존재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 새로운 날의 아침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심령 속에 복음이 들어가면 개인이 변화가 되고, 가정에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나라에 복음이 들어가면 나라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좌정하시면 세상의 온갖 '불의, 부정, 죄악과 고통' 같은 어두움은 싹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2. 한 아기가 오면 근심이 없어지고 즐거움이 임하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스블론과 납달리 그리고 갈릴리 지방에 사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고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찼겠습니까? 언제 전쟁이 터질른지 북방과 남쪽에 있는 군사들이 언제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갈른지 아침에 눈을 떠도 걱정, 저녁에 눈을 감아도 걱정... 온통 걱정과 근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갈릴리 땅에 오심으로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요15:11)에 '내 안에 거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지친 성도와 교회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에 대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주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희열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쁨이 덜해도 주님 안에서 누리고 맛보는 기쁨이 더 충만하면 얼마든지 세상을 정복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즐거워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죄를 정복하는 비결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함에 있는 것입니다.

3. 한 아기가 오면 묶인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수의 압제가 꺾어지고 참된 자유가 생긴다는 소망입니다. 
4절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했습니다.
"무겁게 멘 멍에, 어깨의 채찍, 압제자의 막대기" 이런 것이 꺾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소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수의 모든 압제는 꺾여져 나가고 참된 자유가 오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시대의 시민들에게는 무겁게 맨 멍에가 있었고, 그들의 어깨에는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꺽어버리시고 자유를 주실분이 오실 것을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꺾이질 않을 것만 같은 원수의 압제이고 사슬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아기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껶여나가는 줄로 믿습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아기 예수가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속에서 성장하시면서 큰 빛을 주실 것입니다. 즐거움을 주실 것입니다.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열심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탄의 소망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둡고 흐린날과도 같습니다. 곳곳에 탄식과 절망스러운 환경들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에 근거한 모든 환경과 운명을 역전시켜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근거하여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7절 끝부분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하셨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