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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좋은 군사 (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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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좋은 군사 (딤후 2:3~4)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좋은 군사다. 우리를 부르시고 군사로 모집하신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 ‘호큐리오스’란 말은 총사령관이란 뜻이다. 총사령관되신 주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천국 확장을 위한 병사로 부르셨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뱀의 머리를 밟으러 오셨다. 주님은 이 세상의 임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오셨지만 근본적으로 사탄의 일을 멸하러 오신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반역자다. 사탄이란 참소자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다 내어 쫓긴 이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되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사탄을 멸하러 오신 것이 성탄의 의미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왜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오셨는가? 아무도 영접하지 않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유대인으로 오셨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사탄의 일을 멸하시려는데 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주님이 일하시는 곳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 나갔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였다. 이런 역사는 다른 것이 아니다. 

눅11:20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탄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데서 주님은 사탄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 속에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천국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도록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지난 날 우리 자신이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날 동안 죄를 짓고 마귀의 지배 아래 살았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건짐받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살아가고 있다. 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군인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군인으로 불리워진 것을 모른다. 마치 내 멋대로 산다. 구원을 받았고 천국 백성은 되었으나 용사로 불리워진 것을 모른다. 혹시 여러분들이 총사령관이신 주님의 음성을 아직 듣지 못하고 구원 얻은 기쁨에만 안주하고 있다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주님의 교회가 강하지 못한 것은 내가 군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군인이라는 것을 알고 영적 전쟁을 시작하라. 어둠의 세력이 도전해 오는 한복판에서 마음과 생각, 말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래서 승리하는 성도, 진리와 의, 희락의 깃발을 흔드는 사기 충천한 군인이 되어야 한다. 군기가 빠져서 집 생각이나 하고 제식 훈련 하나도 하지 못하는 자세와 태도가 엉망인 오합지졸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 성도의 군기는 성령 충만이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그리스도 예수의 군병이란 어떤 자인가?

1.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다. (딤후2:3)

이 말은 예수의 군사란 용병이 아니라는 말이다. 용병은 돈벌이를 위해 군인이 된 것이다. 아프리카 맛사이족은 용맹스러워서 케냐 도시를 나가 큰 저택을 지키는 경비 용역 회사에 잘 고용된다. 그 일은 기본적으로 용맹스러운 자가 하는 일이지만 수입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용병이 정말 군인다운 군인의 자세를 갖출 수 있을까? 용병은 주어진 일을 잘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일 때 고난을 받는 자리를 피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의 궁극적 목적은 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딤후2:3에서 외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좋은 군사는 자신이 왜 군인으로 서 있는지를 안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것 때문에 군인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주님의 나라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위해 일하다 고초를 겪고 옥에 갇혀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용병이 아니기에 고난과 맞서 싸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한다. 참된 군인으로서의 성도는 하나님 나라가 내 나라다. 교회의 어려움은 곧 내 아픔이다. 교회의 승리는 또한 나의 기쁨이다. 따라서 매일 매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지면 군사된 성도는 감격한다. 그래서 고난도 불사한다. 하지만 용병은 좋은 조건만 찾는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앞장 서서 누린다. 하지만 교회가 어려우면 남의 교회이기에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짐을 지도록 할 뿐 내가 지려고 하지 않는다. 당신은 교회에 대해 어떤 마음이 있는가?

지난 주 안지은 청년이 책 한 권을 갖다 주었다. 그 앞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일본 소니 회사의 한 조립 기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마주 앉아있는 사람이 소니 회사의 오디오 제품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이 회사의 조립 기사는 벌떡 일어나 자신이 소니 회사의 말단 사원임을 밝히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소니 회사의 제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구매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기사는 정말 회사를 자기의 삶의 모든 것으로 여기는 회사원에 관한 것이다. 회사에 고용된 자로 월급쟁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회사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용병이 아닌 사원으로 회사의 성장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나의 태도도 이와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고 교회의 지체가 된 나와 여러분은 교회의 영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복음의 전초기지인 교회를 위해 뛰고 있는가? 고난이 와서 두렵지 않고 마땅한 길로 받아들이는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고 이웃에게 달려가 전도하기 위해 고난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당신은 예수의 좋은 군사다. 욕을 먹고 거절을 당하고 옷이 찢겨도 두렵지 않다면 좋은 군사다.

  
2.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아니다. (딤후2:4上)

딤후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사사로운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는 좋은 군사가 아니다. 그들은 군기가 없는 군사, 훈련이 안된 군사다. 아니 용병이기에 자기 생활에 얽매이고 자기 생활의 사사로움이 항상 개입된다. 그러므로 위험한 도전도 싫고 또 쉬운 명령만 좋아하게 된다. 용병은 사실 훈련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이 돈벌이에 있는데 훈련은 돈과 상관이 없으며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군사는 훈련을 수용한다.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는 애국심이 불타기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수련하고 기능을 발전시킨다. 자기 생활이 조금 침해받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교회 안에 필요하다.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용병처럼 신앙 생활을 한다. 자기 가정, 자기 취미, 자기가 좋아하는 문화 활동, 이런 것에 연연하여 헌신도, 희생도 못하는 모습으로 산다. 때로는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족하고 일하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기 삶을 뛰어 넘어야 한다. 군인은 명령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때론 험한 산, 높은 고지에로 돌격하라는 곳으로 달려 올라간다. 늦은 밤이라도 이불을 박차고 교회로 달려와야 한다면 5분 대기조처럼 옷을 입고 달려온다. 어떤 것도 사생활을 이유로 명령과 지시 앞에 불복하지 않는다. 정말 시간이 없다, 바쁘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 

하지만 당신에게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전도 훈련, 기도 훈련, 말씀공부 훈련 등 그 때 당신은 훈련에 뛰어드는가? 아니면 숨고 도망치려고만 하는가? 정말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과 양육 과정이 당신을 최고의 사역자로, 주님의 군사로 세운다고 확신이 드는가? 즐거워함으로 참석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아직 당신은 용병이다. 아니 부르심의 이유도 모르는 자다. 이 모습이야말로 천국을 약하게 만들고 교회를 약하게 만들고 사역과 목회를 약하게 만든다. 당신의 무장되지 못한 모습이 사탄을 이롭게 한다면 사탄의 지옥의 문을 부수지 못한다. 우리는 불쌍한 오합지졸이다. 원수의 밥이 되는 것이다. 자기 생활에 얽매지이 말라. 사사로운 것이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3.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한다. (딤후2;4下)

병사의 충성의 대상은 모집하고 부른 자에게 있다. 국가가 불렀기에 국가에 충성하여 국가를 기쁘게 한다. 용병은 애국심이나 충성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나의 돈벌이를 위해 군대 속에 들어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 생활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자인가, 아닌가에 따라 용병이냐, 군인이냐를 알게 해 준다. 

빌1:20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한 바울은 정말 모집한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군사 중의 군사였다. 그러므로 군사는 무슨 일이든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다. 만약에 문구에 정해진 대로 책임을 감당하고 맡겨진 임무만 따듯하게 일하려 한다면 그는 용병이다. 

교회라는 병영 안에서 용병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적 전쟁의 대상도 모르고 천국의 확장을 위해 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모였다가 헤어지는 세상 집단이나 조직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세상에서 으뜸가는 군림의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대리점이라는 것도 모른 체 오고 가는 사람도 많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가 죄와 사탄을 공격하는 그리스도인의 병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체 세월만 보내는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주님의 명령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목하라고 해도 다른 데를 쳐다본다. 차렷하고 구령을 붙여도 딴 짓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용병도 아니고 예비군도 아니며 훈련병도 아니다.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고 예수를 위해 손해볼 수 있고 예수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수 있는 자는 좋은 군사만이 가능하다. 훈련되어 있는 좋은 군사, 그들은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하는 준비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청양교회에 가면 두 부부 교사가 있다. 그들은 공주사대를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서 목사가 그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도전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은사를 지닌 교사들인데 그 은사를 묻어두고 학교에 가서 월급 받아 밥이나 먹다가 죽는 교사로 인생을 끝낼 것입니까? 바로 서서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때 그들을 무릎을 꿇고 결단을 하고 청소년들을 위해 죽는 날까지 헌신한 것을 결단했는데 정말 그들을 통해 시골 교회가 청소년 독서실 사역이 살아나고 시골 학생들이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고 학생들의 양적, 질적 부흥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50명의 학생이 모인다고 한다.

우리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환난과 이단, 영적 침체의 문제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었던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라고 외친 이 말씀은 우리를 세우는 말씀이다. 용병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살 것인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씀이다. 군인으로 불리워진 내가 탈영병처럼 살 것인가? 군기가 다 빠진 제대병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정병된 사역자로 살 것인가? 주님이 주시는 훈장의 상급은 오직 좋은 군사된 자에게만 있다. 모집한 주님을 기쁘게 하는 특전 용사가 되기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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