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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든든히 서 가는 교회 (행 9:10~1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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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서 가는 교회 (행 9:10~18, 23~31) 

 
 
예루살렘에서 왕성해졌던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확산되었습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지요. 오늘은 그 과정에서 교회의 몇몇 지체들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은 일관성 있게 하나님의 교회에 관심을 둡니다. 어떻게 교회가 탄생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땅 끝까지 확장되어 가는지를 보여주지요. 사울의 회심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까닭은 그의 회심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교회가 이방 세계로 확산되는 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울 개인과 연관된 문제는 과감하게 생략됩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 정도의 시간과 다소에서 보낸 10년 가까운 세월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침묵하지요. 이는 자칫 사울이라는 개인을 영웅시하는 일을 막아줍니다.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이지만 그 역시 교회의 한 지체로 활동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에 대하여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15)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이라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인의 뜻에 따라서 적합한 때에 적합한 용도에 맞게 사용될 뿐입니다. 주인의 뜻에 따라 귀하게 쓰일 수도 있고 천하게 쓰일 수도 있지요(딤후 2:20). 주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준비시키기 전에는 사울조차도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에 불과했습니다(딤전 1:13). 주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기심을 입었기 때문에 귀히 쓰임 받은 것이지요.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은혜 베푸심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회심한 후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습니다(20). 주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그는 목숨을 다하여 그에게 두신 주님의 뜻을 준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수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당장 다메섹에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아 광주리를 타고 성을 탈출했었지요(24-25). 그때부터 그는 일생동안 온갖 종류의 고난들을 받았습니다. 외적인 고난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그의 마음을 눌렀다고 회상합니다(고후 11:23-28).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의 육체에 채운다고까지 고백했지요(골 1:24). 그는 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행했습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한 개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는 회심하는 순간부터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는 ‘자아’에 대한 인식보다 ‘교회아’로서의 인식이 더 분명해야 합니다. 도 닦듯이 홀로 경건생활을 하면서 인품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성숙한 기독교 신앙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께서 회심케 하신 목적은 개인의 삶이 행복하게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이 목적이었다면 일생 고난을 겪은 사울은 예수를 잘못 믿은 셈이 되겠지요. 모든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도구여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주님께서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교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나니아’라는 인물도 사울만큼이나 귀한 지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의 세워짐을 위해서 그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11-12).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는 사실과 다메섹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받았음을 아는 아나니아로서는 수행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일이었습니다(13-14). 하지만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직가 거리의 유다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였지요(15-17). 사울과는 쓰임새가 달랐지만 그 역시 주님의 충실한 도구였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위해 생명의 위험까지 각오를 했지요.

사울을 향한 그의 첫 마디는 “형제 사울”이었습니다. 핍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사울은 잔인한 핍박자로서 ‘천하에 죽일 놈’ 취급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더니 꼴좋다’는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요. 하지만 사울이 회심한 이후 그가 핍박했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들었던 첫 마디는 환영의 말이었습니다. ‘형제여!’라는 이 한마디가 눈이 멀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사울에게는 대단히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안수하는 아나니아의 손길 역시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세계 선교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되었던 자를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환영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다메섹에서 아나니아가 했던 일과 유사한 일을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라는 인물이 행합니다. 아나니아의 환대를 받고 다메섹에서 열심히 사역했던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였을 때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26). 사람을 믿어주지 않고 이전의 선입견으로 판단할 때 괴롭습니다. 모든 의욕과 열정을 잃고 낙심하기도 하지요. 아무도 반갑게 영접해 주지 않는 분위기 자체가 깊은 상처가 됩니다. 이전에 상처를 주었던 가해자가 이제는 상처를 받는 피해자가 된 셈이지요.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 사이를 중재 하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그 역할을 위한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었는데 그의 성품 때문인지 사도들은 ‘위로 혹은 권면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나바로 불렀습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서 밭을 팔아 구제했던 인물입니다(4:36-37). 교회의 필요를 알고 적극적으로 헌신했던 사람이지요. 사도들조차 사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을 때 바나바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했습니다.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했지요(27). 사울이 고향인 다소에 묻혀 지내고 있을 때 그를 세계 선교를 위해 전도 여행으로 이끌어 낸 인물도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 역시 자신의 역할에 헌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울은 아나니아나 바나바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울뿐 아니라 아나니아와 바나바 역시 대단히 귀한 지체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빈곤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말씀 사역자를 귀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말씀이 귀하다고 해서 너도 나도 말씀 사역만 감당하려 한다면 그 교회가 든든히 서 가기란 힘들겠지요. 나가서 목숨 걸고 선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지만, 온 마음으로 새신자를 환영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필요가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면서 필요를 채우는 사람, 잘 조정하여 화해를 이끌어 내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바나바 덕분에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출입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면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변론했지요(28-29). 그러다가 다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은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습니다(30). 이 말씀은 교회가 결코 순교를 부추기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순교자의 영광과 상급을 운운하며 순교를 부추기는 일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성공지향적인 사상의 부산물로 보입니다. 건강한 교회라면 형제가 죽을 수도 있는 현장에 계속 머물도록 두지 않을 것입니다. 순교에 열광하는 일을 좋은 신앙으로 두둔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31절 말씀은 6장 8절 이후부터 시작되었던 핍박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요약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당시 팔레스틴의 정치적 상황은 유대인들이 더 이상 교회에 관심을 둘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AD 37-41 재위)가 즉위하면서 예루살렘의 성소에 자기 형상을 세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41년 1월 24일에 칼리굴라가 암살되기까지는 이전처럼 흩어진 기독교인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핍박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의 평안을 정치적 상황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문맥을 보면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주께서 회심시키신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지요. 그렇다면 정치적 상황도 교회에 평안을 주시기 위한 주님의 섭리의 손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이 성도를 연단한다 해도 너무 심하게 지속되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셨지요. 고난을 적절하게 조절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안정을 얻으려면 몸의 지체들이 각자 머리되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체들이 머리의 지시에는 관심이 없고 각자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면 평안할 수 없겠지요. 이러한 평안을 기반으로 해서 교회는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일은 “주를 경외함”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바나바의 삶에서도 보았듯이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때로 목숨의 위협을 각오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 재정적인 헌신을 각오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진정으로 주를 경외할 때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있고 성장이 있었음을 봅니다.

누가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이라 하지 않고 “교회”라고 했습니다. 복수가 아닌 단수를 사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은 어디에 흩어져 있든 그분의 몸으로서 하나라는 다시금 생각하게 해줍니다. 오늘날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시대입니다. 또한 개인의 행복에 큰 관심을 두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교회아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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