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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까우신 주님을 믿음으로 맞이 합시다 (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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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우신 주님을 믿음으로 맞이 합시다 (빌 4:5)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쁨을 선포하며 구원받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받은 구원의 큰 기쁨을 소리 높여 노래하며 즐거워하라는 권유를 합니다.
그들이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받을 형벌을 속량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제하셨으며,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사 그들에게 두려움을 야기할 만한 것들을 모두 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바벨론에 의하여 심판받게 됩니다.
그리고 열국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가 잘되고 그의 길이 형통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일시적일 뿐 결국에는 바람에 날려 가듯 멸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날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도록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자신의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징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화시킴과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이후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길 뿐만 아니라 그분께 예물을 드리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탁하며 보호를 받게 됩니다.
미약한 힘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며 충성을 다할 때 그분은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적인 조건의 충족에 있지 않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시 103: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가 약할 때 위로하시고 낙심할 때 용기를 주시며 불가능할 때 가능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갔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에서 평안히 거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곧 주님 임하는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된 상태에서 돌이키어 그들이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도록 하십니다. 

(습 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습 3: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 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습 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 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 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세례자 요한의 사역은 참된 구원을 알리는 것이며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이 일을 위한 것이며 그는 이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길에 많은 무리들이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선포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많은 이들이 그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으려 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이루는 것임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며 공의를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합당한 열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에 불러들일 백성들을 선별하시는 기준으로 이 방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성령파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 오시면서 완성됩니다. 요한은 그분을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나.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곳간에 모아 들이고 쭉정이는 불로 태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별 작업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그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분은 이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가 베푸시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백성들만 구원하실 것입니다. 곳간에는 알곡만 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단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 뿐이며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참된 세례를 베푸실 분이요 종말에 심판을 행하실 분이심을 선포합니다.(눅3:16-17)
세례 요한의 이 메시지는 혈통이나 단순한 외적 종교 예식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의 말이었으나, 참된 회개를 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좋은 소식’(눅3:18절)이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시니라

사도 바울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절)고 합니다.
  
데이트 약속이 잡힌 날, 한 여인이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영업을 안 하는지 레스토랑의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연인에게 이를 알리고 약속 장소를 변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레스토랑 저 앞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눈 감아 봐.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봐.”그녀는 캄캄한 암흑 속이라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눈을 꼭 감았습니다. 눈을 감은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습니다. 손으로는 허공을 더듬으며 테이블과 의자들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고, 그 발로는 사뭇 도도하던 그녀의 구둣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아장아장 걷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만큼은 어느 때보다 밝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무엇인가 준비한 것 같습니다. 어여쁜 꽃다발과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려는 것일까? 혹시 프로포즈를 하려는 건 아닐까? 그녀는 설렘에 차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그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사람은 두려움으로 반응할 수 있을뿐 아니라 설렘으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두려운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그 여백만큼 기대하며 설레게 됩니다. 이때 설렘과 기쁨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심을 기다리는 심령에 설렘이 함께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 하지 말고(빌4:6)

무더운 8월, 여고생들 몇 명이 놀이동산을 찾았습니다. 스릴을 즐기는 친구들은 번지드롭, 자이로드롭과 같이 건물 10층 높이에서 지면까지 단 몇 초 만에 낙하하는 놀이기구들을 줄서서 탑니다. ‘왜 돈을 내가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일까?’ 이를 도저히 이해 못하는 한 담력 약한 학생은 친구들의 짐 보관소 노릇을 하다 결국 더위를 식혀 줄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맛보자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귀신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몇 걸음 걷자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두움 속입니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오싹한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양손을 내밀어 앞을 더듬어 보지만 당장 1m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코너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이 문을 열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움과 긴장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당장 1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앞날에 대한 무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사주, 팔자, 궁합을 봐주는 점집에 들어가 미래를 묻습니다. 그나마 두려움에 건전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비하여 연금에 가입하고 각종 보험에 듭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건만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도 더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염려하는 일뿐인 것만 같습니다.
기뻐하는 자는 염려하지 않고, 염려하는 자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4:5)

이는 박해에 대한 온유,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에 대한 용서, 감정의 전적인 절제 등을 포함합니다.

베르디는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이태리 밀란에서 베르디를 추모하는 오페라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 오페라를 지휘할 것이지 의논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두 명의 명 지휘자가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두 명 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습니다. 두 명을 놓고 갑론을박 싸우다가 결국은 두 명 다 지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긴 부분을 둘로 나누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지휘자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휘자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한 지휘자는 자기는 저 지휘자보다 유명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어야 지휘하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를 지휘자로 모시지 않으면 오페라 권위가 없어지니까 더 많은 돈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지휘자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런 귀한 오페라에 지휘자로 선택된 것만도 감사합니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나는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돈을 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무료로 봉사하며 지휘하였습니다. 

오페라가 끝났습니다. 겸손한 지휘자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지휘자의 인기는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입니다. 위나라 문후가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어떤 왕으로 생각하는고?> 신하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책황이라는 신하가 왕앞에 설 차례였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아니 옵니다. 언젠가 중상국을 토벌하신 후에 그 곳에는 소신을 봉하셔야 마땅한 데 황 태자를 영주로 세우셨습니다. 도리에 어긋난 처신을 하신 왕이시기에 어지신 왕이라 할 수 없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발 대발하였습니다. 문후 왕은 이 신하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임좌 신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임좌가 무슨 말을 할 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왕이 물었습니다. 임좌가 대답하였습니다. <자고로 어진 임금밑에서는 직언하는 신하가 난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책황은 확실히 맞는 직언을 하였습니다. 이런 신하가 왕밑에 있다는 것은 왕이 어진 왕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말했습니다. <허허.... 참 옳은 말이로고. 내가 책황에게 큰 잘못을 할 뻔 하였구나> 그리고 책황을 다시 불러 드렸습니다. 

  기뻐하라 (빌4:4)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불화의 원인이 된 인물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고하고, 주를 대하는 성도 개인의 올바른 생활 태도를 교훈하고 성도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그 밖의 덕목들에 관해 언급하며 “기뻐하라.”(4절)고 합니다.
기쁨은 빌립보서 전체를 아우르는 바탕입니다.

(빌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실제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가 빌립보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기쁨의 본을 보인 바 있습니다(행 16:19-25).

빌립보서는 바울서신 중에서도 옥중서신이며, 기쁨의 서신이라 불리웁니다. 주의 일에 전념하고자 가정을 갖는 것마저도 포기할 정도로 열정적인 복음의 일꾼 바울이, 마음껏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권면하며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어야 할 바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의 부자유한 상황,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감금 상태에 처해 있으면서 오히려 자유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지 말고 기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놀이동산의‘귀신의 집’에서 암흑 가운데 여고생은 한 치 앞의 일을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했지만 그 곳에 불이 켜지고 모든 것이 빛 가운데 환히 드러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불 꺼진 레스토랑에서 눈을 꼭 감고 설레임을 안은 채 연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 여인은, 이제 한 줄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청혼 반지를 들고 환히 웃고 있는 연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하고 한 치 위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조건부의 행복에 일희일비하고 소원 성취라는 전제 하에 기뻐한다는 것은 나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체보다 그분의 능력과 이적을 더욱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광으로 가득한 구름 위에 가리워진 주님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주님이 행하신 일들, 그 손끝만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구름을 걷고 주님이 오십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항상’ 주님을 기뻐한 자에게 그것은 평강을 주는 희소식이요,‘ 그리 하시는 한에서’ ‘때때로’ 주님을 인정해 드리곤 했던 자에게 그것은 두려움을 주는 비보일 것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소식입니까?
여려하지 말고 관용하며 기뻐하며 가까우신 주를 맞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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