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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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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 1:1)


우리 생애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들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다 지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들을 뿐 아니라 그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참으로 우리는 특별하고,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마리아라는 처녀와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주 의롭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정리하려고 하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로마서 1장 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했는데, 그 족보 내용을 보면 별별 죄인들이 다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아브라함도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우상숭배 하던 경험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훌륭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점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도록 믿음을 키우시고 키우셔서 아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이 좋고, 깨끗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서 두 번이나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급하면 거짓말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지 못한 사라의 제안에 따른 것이지만 그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처음부터 완전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자기 아내를 통해서 낳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다윗도 이런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믿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점점 변화되어서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에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을 들어서 ‘내가 이들의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고 이들을 이렇게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장자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 장자가 아니고 에서가 장자입니다. 또, 유다는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고 장자는 르우벤 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홉 중에 막내였고, 장자는 엘리압 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다윗이 장자인 것처럼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 나라에서는 믿음이 제일 큰 사람이 장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여덟 형제가 교회에 나온다면, 큰 형이 무조건 장로가 되고 동생들이 집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덟 번째 막내라도 형들보다 믿음이 좋고, 훌륭해서 존경받는 자가 되면 그 막내가 장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교회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성도가 되길 원하십니까? 믿음의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실존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가상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누가 꾸며낸 인물도 아닙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몇 년도에 태어나셨고, 몇 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몇 년도에 승천하셨다는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기독교를 약 300년 동안 핍박하던 로마 제국은 콘스탄틴 대제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서서히 기독교 국가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기록할 때는 어느 날을 기준으로 해서 연도를 써 나가야만 그 시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로마가 역사의 기준을 정하려고 할 때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날보다 더 중요한 날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날을 중심으로 해서 인류 역사를 BC(주전, Before Christ)와 AD(주후, 라틴어로 Anno Domini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나라든지 예수님을 인류 역사의 중심에 놓고,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가상적인 인물입니까? 예수님은 실제적인 인물이고 실제적인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다윗왕의 후손이며 왕족입니다. 요한복음 18장 33절에 보면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37절에 보면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보면 유명한 다윗왕의 자손, 왕족입니다. 마태복음 20장 30~31절에 보면 두 맹인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 21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소리 높여서 외치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다윗왕의 자손이며, 유대인의 왕으로서 태어난 왕족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22장 16~18절에 보면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5~16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고, 그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고 모든 인류, 천하 만민을 위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8절에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하였고, 갈라디아서 3장 8절에는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고, 또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이미 이방인의 피가 섞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3절에 나오는 ‘다말’이라는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아랍 여인입니다. 그런데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다말은 이방여자였고 또, 이 사건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살몬은 라합을 통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라합은 가나안 땅 여리고 성에서 기생노릇을 하던 이방여인입니다. 이런 이방인을 통해서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을 통해서 오벳을 낳았는데, 룻은 이방여자였고, 과부였습니다. 이방여자이고, 과부였지만 보아스는 이 여자와 결혼을 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야는 헷 족속이고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훌륭한 솔로몬도 정상적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자녀를 낳았는데 이 자손을 어찌 순수한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와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던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이 멀리까지 와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축하하며 경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유대인만 제자로 삼으라 하시지 않고,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메시아입니까? 의인들만을 좋아하고, 의인만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죄 많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9장 12~13절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서 잔잔하라고 하시면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향해서 일어나라 하시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치료하시면 죽을병도 나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전능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고,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 고난을 당하신 분, 절망에 빠지신 분들은 낙심하지 마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때가 주님 만날 기회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 꼭 응답받으시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려움을 많이 당해서 이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살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갈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금식기도하다 죽으면 자살은 아니니까 그렇게 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했는데 사흘이 지나도 죽지는 않고 배만 고팠습니다. ‘성경에 예수님도, 모세도 40일을 금식기도 하셨지만 죽지 않으셨는데 방학은 30일밖에 안 되니 40일 동안 안 죽으면 어쩌나, 그동안 배는 얼마나 고프고 고통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오늘을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세상은 살기 싫으니 온 힘을 다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없는데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하고 아주 분명하게 세 번 씩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40여 년간 목회를 하는 동안 주님이 때때로 오셔서 말씀을 해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무덤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고, 우리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가 아픈지, 소원이 무엇인지, 급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귀를 지으신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며, 입을 지으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이 되기 시작할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것이 아니다. 내가 세웠느니라. 이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는 것은 네가 잘나서도 아니고, 네가 설교를 잘해서도 아니다. 내 백성, 내 양을 내가 모아 준 것이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마산, 거제도, 창원, 김해, 울산, 양산 등 여기저기에서 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혹시 자기가 결정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모아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번 다니엘 세이레기도 기간에는 꼭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믿음 지키고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기 계신 분 모두 주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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