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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인이신 하나님 (엡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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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신 하나님 (엡 1:15~23)


인류역사에서 많은 나라와 문화 속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회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분제
도(身分制度)’입니다.  신분제도는 출신에 따라 계층을 나누는 제도입니다.  신분은 계급과 다른 것입니
다.  계급은 사람이 사회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나뉘는 것입니다.  이런 계급과는 달리 신분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분의 특징은 혈연적 관계에 의해 세습되는 것입니다.  신분제도
는 고대시대부터 존재했습니다.  

고대사회는 왕족, 귀족, 평민, 노예의 구분이 확실하게 정해졌습니다.  
이것이 유럽사회의 전반에 흐르던 제도였습니다.  동양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이런 분명한 신분제도가 
있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부터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아주 엄격했습니다.  신라의 신분제도를 ‘골품제도’라고 말합니다.  골품(骨品)은 뼈에도 품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신분의 벽이 높았다는 말입니다.  신라의 골품제도는 성골(聖骨), 진골(眞骨), 육두품(六頭品)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신분제도가 현대사회에는 대부분 없어졌습니다만 오늘까지도 영향이 미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입니다.  그래서 신분제도하면 인도를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인도의 신분제도를 ‘카스타제도’라고
부릅니다.  카스타는 4계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힌두교 성직자와 학자를 가리키는 브라만과 왕족, 귀
족을 의미하는 크샤트리아, 평민을 대표하는 바이샤, 그리고 하인을 가리키는 수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카스타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카스타 밑에 카스타가 있는데 그들을 ‘파리아(paraiyar)’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천민중의 천민으로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파리아는 모든 것에서 격리되었고, 사는 지역도 달랐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사용하는 우물조차 격리되었는데 파리아 전용 우물은 동물의 뼈로 표시해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활동하던 시대에도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의 파리아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종’이
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종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신분도 계급도 자기 의지도 없던 사람
들입니다.  종은 철저히 주인에게 속한 자들이어서 주인이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명
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했고, 주인에 의해 삶이 결정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종과 주인의 관계를 인간과 하나님, 믿는 자와 예수님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종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신 하나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의 주인이실까요? 

첫째는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라고 해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의 대부분의 편지는 언제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교리와 실천입니다.  전반부는 교리를 말하고, 뒷부분은 실천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1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래서 역시 여기에도 교리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예정이 나오고, 교회가 나오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 20절과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
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그는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은 현 세상만이 아니라 오는 
세상까지도 다스리십니다.  모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님
은 바로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만물이 우연히 생긴 것으로 말합니다.  진화되어 
발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
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
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다윗도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
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
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러분,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는 법칙과 질서와 순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창조의 질서와 순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산업화와 과학화로 삶이 편리해 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지금 심각한 지구의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속출합니다.  

점점 오존층의 파괴되고, 산업폐기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만물이 보존됩니다.  우리 모두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질서를 따라가고, 순리가 파괴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교회의 주인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에 관한 진리를 알려줍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입니다.  교회론이 중심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교회의 핵심적인 진리가 무엇일까요?  그
것은 한마디로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처음 말씀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세우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교회를 주도하고, 운행하고, 이끌어가는 분도 물론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교회의 
중심이고, 머리이고, 주인입니다.  

이것을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각인시켜 주고, 특히 에베소교회에 더욱 강조합니다.  이것이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세상기업이나 일반회사와는 다른 것입니다.  회사에는 오너가 있고, 사장도 있고, 주인이 있습니
다.  그러나 교회는 어떤 사람도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모든 교회는 세워지는 순간부터 이것에 뿌리를 두고, 기초를 삼고, 세워집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교회
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이단으로 가는 길의 하나는 문선명이나 박태선의 경우처럼, 그리스도 대신에 자신들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리에 인간이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이고, 어떤 사람, 어떤 세력도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기에, 교회의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의도와 생각대로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열기도 하고, 때론 막기도 합니다.  주님이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합니다.  주님이 세우기도 하고 허물기
도 합니다.  주님의 교회이기에 오직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주님보다 앞서
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
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기에 많이 심고, 눈물로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이젠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중심에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그의 계획대로 교회를 이끄십니다.  주인이신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종이 되십시오.  그리고 주인보다 앞서지 않는 믿음과 신앙을 다짐하십시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인생의 주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만물과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을 말하면서 성도들을 향합니다.  그들을 향한 기도제목
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
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그들로 인해 감사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성도들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어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
과 함께 하여 결국 그의 뜻을 이룬다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 결국 성도들의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제 나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부
르신 하나님, 나와 동행하시는 예수님,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주
도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알고, 믿고, 주님이 나와 동행하면서부터 이젠 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시간도, 재능
도, 물질도, 심지어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기
에, 모든 것은 주인의 뜻대로, 주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
입니다.  바로 거기에 생명과 풍요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순종하고 따르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으로 부릅니다.  주님은 바로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이제 실제로 주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분의 뜻대로 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인이신 주님께 철저히 나는 종이어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
는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습니다.  기쁜 날도 있지만 울고 통곡하는 날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은 나의 주인이신 주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매번 좋을 때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프고 힘
들 때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나의 주인이신 주님이 내가 아프고 힘든 것을 즐기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아플 때는 더욱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주인이신 주님을 믿고, 내 삶의 어떤 환경과 형편에
서든지 원망과 불평 없이 주인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때에는 더욱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은 이후 이젠 내 삶에 어떤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듯이, 모든 것에는 뜻이 있습니다.  모든 고통에도 분명 뜻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뜻대로 행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고, 수용하기 힘든 것도 오직 그의 뜻입니다.  이것을 알고 주인
의 뜻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중세 독일역사에는 30년 전쟁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천주교와 개신교 사
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독일은 큰 곤욕을 치렀고, 나라는 힘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전쟁 
후에 흑사병이 유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만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는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
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Silesia)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 곳에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라는 목사가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목회에만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과로로 자주 쓰러졌습니다.  중풍으로 인해 절룩
거리고 눈까지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열정은 식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슈몰크 
목사는 예전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
니다.  

교회와 사택이 불에 타버렸고, 사랑하는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몸부림치며 자녀의 시신을 가슴에 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에게 임한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교회와 성도를 위해 힘을 다해 일했을 뿐이었습니다.  도저히 받아
드리기 힘든 현실 앞에서 그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
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런 그가 눈물로 기도하면서 고백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549장의 가사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고통가운데 뜻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
이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고백하며 부를 노래요 고백이요, 기도입니다.  성도여러
분, 주님은 만물의 주인이고, 교회의 주인이며,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주님보다 앞
서지 말아야 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고,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고통 속에 나를 이끄
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주인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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