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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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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라보는 믿음 (창 13:14~18)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링컨을 이어 미국 17대 대통령직을 승계해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통합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 달러에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왜 쓸모없는 얼음덩어리의 땅을 사느냐고 항의했으나 그는 알래스카의 미래를 본 것입니다. 

세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열네 살에 양복점 점원이 되었으며 열여덟 살에 구두수선공 딸과 결혼할 때까지 그는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아내의 인도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열심히 글을 배우고 책을 읽어 40세 때는 달변가와 명필가가 돼 미국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못 배우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대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대통령직도, 알래스카도 그가 바라본 미래 속에 이미 있었습니다. 미래는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꿈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예계에 내노라하는 송승환씨가 토크쇼에 출연해서 아쉽게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수들을 발굴해서 음반제작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어느 날 박진영이 음반제작을 해주십사 하고 찾아왔더랍니다. 그런데 인상을 보니 가수로 성공할 상이 아니더랍니다. 그래서 연세대를 다니며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올거라고 일장 설교를 해서 보냈는데 후에 박진영이 가수로 대성하고 음반으로 대박을 터뜨리더랍니다.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솜씨도 가수 지망생에게서 장래성을 보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에 투자하고 미래를 붙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거듭나는 능력을 믿지 못하면 과거에 매여 삽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날마다 낙심하고 후회하며, 두려워하고 연약함에 빠지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은 낙심 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새로운 길도, 새로운 희망도 보지 못합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교회 권사님들을 존경합니다. 연세는 70세를 넘겼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과거를 이야기하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미래의 땅으로 건너가기 위한 꿈을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분들은 거듭나는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속에 이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변화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낙심이 있다면 그것을 소망으로 변화시키고,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화시키며, 과거의 모호함 속에 빠져 있다면 그것을 미래의 희망으로 변화시키십니다. 

패배 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비전 있는 사람들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력으로 삶이 변하면 성도는 뜨거운 꿈을 갖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6- 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이 말씀은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믿음으로 살고 헌신하고 순종하면 장차 반드시 하나님께서 상주실 것을 믿고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에 투자하며 미래를 붙들라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때 당장은 비올 기미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경고에 인격과 생명을 걸었기에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인류의 중시조가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축복이 아니라 장차 미래에 주실 상을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바라고 붙들어야 할 언약의 축복은 무엇인가? 말씀 속에서 미래를 바라고 미래를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생각하기 전에 13장1절 이하의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은, 금이 풍부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아지니 자기 조카 롯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은금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가축의 때와 가축의 목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목초지는 적고 먹여야 할 양의 때는 많고 그러다 보니,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끼리 싸움이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브라함은 이러면 갈라서자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목초지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재산이 축복일 수 있지만, 때로는 재산이 가정의 불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보이는 땅을 롯이 먼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자기 눈에 보기 좋은 소알 땅을 선택을 하고 그곳을 향해서 떠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본문에 내용입니다. 롯이 자기 눈에 좋은 땅을 선택한 것이 소돔성입니다. 

본문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아브라함과 달리 롯은 자기 눈에 좋을 대로 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눈에 좋을 대로 하는 것은 저주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13절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좋다고 찾아간 성은 하나님 앞에 죄악의 도성이였습니다. 선택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잘못 선택하면 완전히 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보는데로 따라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롯은 소돔성에 살면서 불법한 행실을 날마다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벧후2:6-8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롯이 거하는 성 사람들의 모습을 날마다 보고 듣고 하니까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믿음의 사람은 범죄 할 자리에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발을 금하고, 내 눈을 금하고, 내 말을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 좋을 대로 행한다면 어찌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데로 따라가지 않고, 약속에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축복의 땅으로 삼으시고, 아브라함을 그리로 부르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갔습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그곳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을 때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에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말씀에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유는 롯처럼 세상에 물들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어째하든지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데로 쫓지 않고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고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 바라보고 세상 중심으로 살면 형통치 못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서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중심의 삶을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출8:26 “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세상 중심이면 마귀 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은 보이는 땅 전부를 아브라함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에서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땅이 한 평도 자기 것이 없었습니다. 후일에 자기 부인인 사라가 죽고 마므레 막벨라 굴이 자기 소유의 매장지가 되어서 겨우 가나안에서 그것만 자기 땅이 되었는데 그러면 왜 하나님은 당장에 되지도 않을 약속을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에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믿음은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래를 보며 전진하는 성도님들이 반드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한 약속은 솔로몬 때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은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신다고 하시고는 10년이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서 10년이 지나갔으니 85세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언제 그 일이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데, 아브라함은 믿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예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맞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고,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다 너와 후손에게 주시겠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은 보잘 것이 없습니다. 크지도, 부흥되지도, 큰 일을 이루어 놓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가 될 것을 확신하고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마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 우리에게 그 믿음이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그것을 준비하면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미래에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감사함으로 현실에 충실하십시다. 준비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사방팔방을 다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15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이와 같은 축복을 약속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축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눈은 롯의 눈과 달라서 가나안을 선택한 줄 아십니까? 아브라함의 눈에도 소알 땅은 축복의 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절제했던 것입니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바울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눈이 시키는 대로 한다면 어찌 믿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절제는 믿는 사람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눈에 보이는 대로 좇아가지 말고, 믿음의 눈을 가지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에는 네게 손해가 되고, 믿지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하늘에 쌓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실 것입니다. 

마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고후9:5-7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심은데로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냥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14;19-20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축복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한 만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까지의 축복은 그냥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늘에 보물을 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미래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예배에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축복받을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비결입니다. 그것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지 아닌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한주에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과 일주일에 계속적으로 예배드리는 것과 어느 것이 하나님을 더 잘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닙니까?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는 사람이 세상 중심이겠습니까? 아니면 일주일 내내 예배를 드리기 힘쓰는 사람이 세상 중심이겠습니까?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닙니까? 

신앙은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과 시간, 시간 드리는 것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시간, 시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을 삼으신 것입니다. 누가 가르켜 주는 이 없어도, 누가 예배드리라고 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은 시간만 나면 여호와를 위해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요4장의 수가성의 여인은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 생수가 공급된다는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고 그는 삶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그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만족을 찾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그에게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만족을 찾아 주었습니다. 생수는 예배의 회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생수의 공급은 예배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예배를 통해서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예배드리는 날은 하나님이 복을 주는 날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예배의 회복을 가져와서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미래의 열쇠는 주님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먼 미래를 바라보고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축복받을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쌓아서 축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365일 예배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축복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그래서 사방팔방을 바라 볼 줄 아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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