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러가 한적한 곳에 서보라 (눅 5:15~16)

  • 잡초 잡초
  • 425
  • 0

첨부 1


물러가 한적한 곳에 서보라 (눅 5:15~16) 
 
  
오늘은 대강절 두번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대강절을 지킬 때에는 우리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그 은혜를 기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경건의 훈련을 하는 절기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주일인데 주제는 "회개"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회개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을 똑바로 보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본다는 말은 곧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바라볼 때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보게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대부분입니다. 

데카르트는 '본인의 지성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본인의 옳고 그름과 도덕적 판단은 늘 옳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자기에게 후하기 때문에 자기 잣대로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객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후한 사람은 그만큼 자기가 편한대로 하고, 성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범죄인이 흉악한 죄를 저질러서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의논할 때 제일 무거운 형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죄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 태도가 180도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남에게는 날카롭지만 자신에게는 무딜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눈이 밖으로 향해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냥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왼손처럼 쓰는 방법은 오른손을 훈련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남처럼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자기에게 정직하고 자기를 남처럼 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은 바쁜 사역 가운데서도 "물러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일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물러가 한적한 곳에 서 있음으로 인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고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성과 능력의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들도 분주한 생활 속에 빠져 있다가도 때때로 가던 길을 멈추고 물러가 한적한 곳에 서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상을 떠나 하나님과 마주하는 시간, 생활을 떠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육신의 눈을 닫고 영의 눈을 열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첫째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가끔씩 자기가 그리고 있는 그림으로부터 멀찍히 떨어져서 자기의 그림을 바라보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릴때 뿐이겠습니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안보이던 것도 보이게 됩니다. 
가까이 보면 자기가 일등인 것처럼 보여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느 지점인가가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의 습관도 보이고 자기의 생활도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에서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잘하고 있는 일이라도 그 일에 지나치게 빠져 있으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열심히 사역하는 중간 중간에 그 사역의 현장을 떠나서 자신과 거리를 두고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나친 자기 몰입이나 자기 애착은 자신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높은 곳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높은 곳에서는 보입니다. 동등한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한 계단 높은 곳에서 보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다 보입니다.
  
漢文에 登高望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멀리 바라보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는 멀리 볼 수 없습니다. 
싸움꾼들의 말에 의하면 승자의 법칙 중에 하나가 "상대방보다 높은 곳을 선점하라"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는 상대보다 높은 위치 서 있을 때가 싸움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어디 싸움 뿐이겠습니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부분에 반응하지 않고 전체에 반응하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좁은 부분만 바라보면 분노하던 것에 대해서도 전체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한 계단 높은 곳에 올라서서 보아야 합니다.
잘한 사람들과 비교하셔야 합니다. 자신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셋째,잠깐 멈춰서서 보아야 합니다.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잠깐 이라도 멈추어서서 보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멈추어 서야 앞뒤 좌우를 볼 수 있고 높이도 깊이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것 저것 바쁘게 쫓기는 삶을 사는 인생이지만 잠깐은 멈추어 서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일을 주셨고, 안식년을 주셨고, 쉬는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명곡이라해도 쉼표없는 악보는 결코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한 걸음 멈춰 서서 바라보아야 100보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냉철한 시각에서 시장전망을 못해 사업이 금세 망하다든가 사기를 당해 쪽박 차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시점에 멈춰서서 자신과 주변을 냉철히 돌아보고 통찰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걸인시인으로 알려진 영국시인  WH 데이비스(1871~ 1940)의 대표작 '가던 길 멈춰 서서'.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 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 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오늘 이 시간이 그리고 금번 대강절 두번째 주 기간이 바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회개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고 그런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