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롬 8:12~17)

  • 잡초 잡초
  • 304
  • 0

첨부 1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롬 8:12~17) 
 

1. 자식 된 도리를 다 합니까?

부모님을 뜻하는 한자로서, 父親 母親할 때 사용하는 ‘親’이라는 글자는 설립(立) 밑에 나무 목(木)자를 그려 놓고 그 옆에다 볼 견(見)자를 붙여 놓았습니다. 이 글자는 자녀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면 마당에 나와 서서 보다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부모의 심정과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벤자민 웨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미술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있고, 어머니의 입술에는 자녀에 대한 무조건의 자랑과 찬양이 있고, 어머니의 가슴은 자녀의 천국이며, 어머니의 무릎은 자녀의 최고의 교실이다.” 
벤자민 웨스터가 어머니에 대해 이런 말을 한 배경이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가 外出하자, 동생의 초상화를 그린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그러다보니 동생의 옷은 물감으로 얼룩졌고, 거실 바닥은 온통 물감 천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오는 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웨스터는 어머니의 꾸중을 걱정하여 서둘러 치운다는 것이 도리어 물감을 쏟아 더 더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거실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는 난장판이 된 집안보다 아들의 그림을 먼저 보았고, 그 그림이 너무나 잘 그려진 것에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엉망이 된 거실에 대해서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물감으로 범벅된 아들을 꼭 껴안고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엄마의 특별한 사랑이 그를 뛰어난 화가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벤자민 웨스터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적인 사랑 가운데서 長成하여 어느새 부모가 되었고, 이제 우리 역시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좋은 부모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자녀를 위하여 당신들의 전부를 쏟으신 후, 이제 쇠하여진 육신 외에는 더 남은 것이 없는 늙으신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부모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자녀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땅의 부모님에게 좋은 자녀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좋은 자녀인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서 우리의 부모님의 자녀로 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궁극적으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참 부모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은 …

故 김홍섭 대법관(1915~1965)은 ‘법복을 입은 성직자’로 불린 분입니다. 별명 그대로 그는 아주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그 인품까지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주 淸貧하게 살았습니다. 제대로 된 양복 한 벌 없이 항상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손에는 늘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한 번은 이 분이 시외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십 여 년 전에 강원도를 가 보신 분들은 강원도가 휴전선과 가까운 곳이라 곳곳에 군경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고, 검문소마다 군인과 경찰들이 버스를 세우고서는 “잠시 심문이 있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차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김홍섭 판사가 탄 버스 역시 검문소 앞에 멈추어 섰고 승객들이 검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올라와서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검문을 하다가, 김홍섭 판사 앞에 와서는 “선생님은 뭐하는 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행색이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질문에 김 대법관은 “예, 저는 대법원 판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그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하기를 “아니, 누굴 놀리는 겁니까?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는 판사가 어딧답니까? 어서 신분증을 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경찰에게 보여주면서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아니 판사를 판사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건네주는 그의 신분증을 본 경찰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대한민국의 대법관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이 사건의 주인공이 판사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면, 그 경찰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다가 힘없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만약 이 사건의 주인공이 저와 여러분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먼저 경찰이 여러분 앞에 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때 여러분은 “예, 저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소리를 들은 경찰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허참! 예수쟁이구먼!”이라고 말하면서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고는 여러분을 지나쳐 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렇게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만만하고 시시한 분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분인가요? 그래서 성도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본문 12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래 육신의 자녀, 즉 사람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법칙대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빚진 자”가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육신의 법칙대로 살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고,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가를 치르신 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육신의 빚은 청산되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육신의 법칙을 뛰어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희생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비록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生活할지라도, 여러분의 身分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自負心과 矜持 없이 살아갑니다. 삶의 환경이 어렵고,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부와 권세 앞에서 주눅 들고, 가난하고 병들고 어쩌고 해서 의기소침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장 5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천사도 부러워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천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영광입니다. 

그리고 장차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그 자리에 오지 못한 이 땅의 높은 자 큰 자 가진 자들로 인하여 여러분이 받은 복을 감사하게 될 것이고,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입을 은혜와 예수님과 더불어 심판의 보좌에 앉을 그 날, 여러분이 받은 영광과 특권으로 인하여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도 감이 안 오는 분들이 있지요? 그래서 본문 14절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證據하는 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證據하는 분은 하나님의 영,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하여 하시는 일은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인도를 받습니다. 

세상적인 것이나, 자신의 욕망이나, 혹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탄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여행을 가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여행에 필수적인 것이 ‘가이드’입니다.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사람, 그리고 여행객들을 잘 아는 사람, 또한 이동하는 길과 교통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가이드입니다.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만, 터키-그리스의 소아시아 성지순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이드는 아테네 한인 교회의 권사님이셨는데, 언어, 문화,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성경과 세계 역사를 풍부하게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신앙까지 좋아서 가는 곳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기둥만 남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터에 갔더니 가이드 권사님이 그때의 일행이었던 서울 새문안교회 권사님들과 목포에서 오신 목사님 내외분들에게 각자 기둥을 붙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그 기둥에 교회의 살이 차올라서 다시금 그 땅에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하라고 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 여러분, 가이드가 좋으니까 그 여행은 지금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 아주 특별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未知의 세계와도 같고, 내일과 미래는 아직 가보지 않아서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생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아시고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구름기둥 불기둥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의 모든 인생길을 인도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인생길의 가이드로 여러분과 동행합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이 성령님이 여러분을 가이드 하는 이상, 길 잃는 일이 없을 것이고, 방해하거나 해치는 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의 영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그 두 번째 모습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입니다.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그 이름대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 속에 거하게만들어 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에게 임한 성령님의 또 다른 역할은 “양자의 영”으로서의 역할이라는 말이지요. 

같은 15절에 “종의 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종의 상대방은 주인입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주인이 잘해줘도 종은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의 마음에는 “혹시 주인에게 책망을 듣지 않을까, 혹시 잘못해서 주인에게 벌이라도 받지 않을까?”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종이 아니며, 따라서 성령님도 종의 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양자”라고 하니까 친아들과는 달리 차별대우를 받을 것 같고, 천대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드십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 왕실에 들어가서 왕자로서 자랐고, 왕실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모세가 바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다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을 기록할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아버지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주어졌는데요. 아내가 자기 자녀를 낳아도, 아들을 낳든지 딸을 낳든지 상관없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갖다 버려야 했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는 주변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아이를 양자로 입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양자에게는 가문에 속한 모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도 양자 출신이었습니다. 네로를 양자로 입양한 그의 의붓아버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었습니다. 황제가 죽으면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 암투가 벌어지기 마련인데, 네로는 양자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의 5대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분명 양자였지만 양자라고 해서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받는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고 변호해주는 분이 있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양자가 되면 막대한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양자를 삼을 때는 반드시 증인을 세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證據해 주는 증인은 누구입니까? 천사들입니까? 여러분 주변의 이웃들입니까? 여러분의 가족들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친히 證據하십니다. 

이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관공서에 가서 중요한 서류를 발급받을 때나 또 은행에 가서 현찰을 찾을 때 신분증을 제시합니다. 그렇게 해서 신분이 확인되면 아무리 중요한 서류라도, 아무리 많은 현금이라도 그냥 내줍니다. 그처럼 성령님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인함.”이라고 증명해 주시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보면 무서워합니까? 아니죠! “아빠!”라고 부르면서 쫓아가서는 아버지의 품에 안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향해서 열린 마음, 사랑의 마음, 친근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모든 속사정을 다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 남편이나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것,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것,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무거운 짐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놓이고 얼마나 행복해지는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가까이 하셔서 들으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항상 새로운 힘을 주시며,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두 번째 특권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후사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그 세 번째 모습은 본문 17절이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여기서 “상속자”라는 말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을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상속자입니다. 

여러분, 대기업의 회장 자리를 이어받을 상속자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한 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을 상속자 역시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그 이상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납니까? 이 말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말 중에서 최고로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서 본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예수님과 함께 공동으로 이어받을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리는 모든 영광을 여러분도 함께 똑같이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그 유업을 자녀들이 나누어 갖습니다. 그래서 자녀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돌아오는 몫은 적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무한합니다.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상속자인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리는 모든 영광을 빠짐없이 충만하게 무한대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제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 하도 빚이 많아서 장차 부모로부터 다른 것을 물려받지 못해도 빚은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빚이 청산되어서 이제는 물려받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하고 또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예수님과 똑 같이, 사실 차이 나게 주셔도 감사한데, 예수님과 똑 같이 주신다니 이런 은혜, 이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렇게 엄청나고 놀라운 영광을 받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너무나도 엄청난 말씀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세 번째 특권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말씀을 마치면서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➊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까? 
➋ 두 번째,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세상 그 어떤 신분이나 특권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와 장차 받을 복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믿습니까? 
➌ 세 번째,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모습과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계시는지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지도자이자 신앙의 대선배인 이상재 선생은 기독 청년들에게 다음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를 지붕 위에 올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소란 동물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닥다리를 놓고서는 그리로 올리려고 애를 쓰면서 “소야, 지붕으로 올라가거라. 제발 지붕으로 올라가거라.” 하면서 소 궁둥이를 툭툭 치며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순종의 덕입니다. 

아마 요즘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소를 지붕 위로 올려라”고 한다면 “아버지 돌았어?” 라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상재 선생이 길을 지나다 보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늙은 여인으로부터 길가에서 회초리를 맞고 있었습니다. 한 참을 때리던 여인은 그때사 분이 풀린 듯 집안으로 획 들어가 버렸고, 회초리를 맞던 그 중년 신사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상재 선생은 그에게 다가가서 “어찌된 일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중년 남자는 “제가 어머님의 말씀을 어긴 것 때문에 사람들 보는데서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이 “억울하지 않소? 그 나이에 이게 뭔 일이요?”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억울하긴요. 이제부터는 어머니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으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상재 선생은 기독 청년들을 향하여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라고 효에 대해 교훈했습니다. 

이 세상의 자녀와 부모의 관계도 이러한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하나님께 효도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걸음을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여러분의 모든 사정을 아뢰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차 아버지의 나라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듯이 여러분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과 더불어 세세 무궁토록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여러분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더욱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는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 몇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로 자녀의 삶은 일종의 유유상종으로서, 아버지처럼 살아가는 것, 즉 아버지와 닮게 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보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矜持 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어느 집안, 어느 가문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늘 자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릭 워렌 목사가 작성한 “사명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남은 한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헌신하고자 한다. 나는 나의 삶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드릴 것이며, 그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의 가족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며, 그의 말씀을 나누는 일에 헌신할 것이다. … 나는 더 이상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것이며, 보잘것없는 생각들과 하찮은 대화, 생각 없는 행동, 아무 소용도 없는 후회, 상처뿐인 분노, 그리고 믿음 없는 걱정을 하느라 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 지금의 삶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알기에, 나는 “부요”보다는 “예배”를, “나”보다는 “우리”를, “편안함”보다는 “성품”을, “명예”보다는 “섬김”을, “소유 지위 기쁨”보다는 “사람”에게 가치를 둘 것이다. …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떻게든지, 그리고 나에게 부탁하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의 대답은 항상 ‘예’일 것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다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하나님도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도 주님의 사랑도 아무 것도 모르는 자에 지나지 않으며, 장차 주님 앞에 서는 날, 그리고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 하나님의 가족들이 모이는 잔치 자리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금생과 내생에 복 받을 일임을 기억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자녀답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