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눈물 후의 기쁨 (시 126:1~6)

  • 잡초 잡초
  • 401
  • 0

첨부 1


눈물 후의 기쁨 (시 126:1~6) 
  

흔히 기독교를 가리켜 ‘기쁨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복음(福音)이 무슨 뜻입니까? 눅2:10 보면, 천사가 예수님의 성탄 소식을 전하면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good news of great joy)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생과 축복을 주시니까 가장 기쁜 소식이죠. 또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은 기쁨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천국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교회는 기쁨이 가득한 잔칫집이고,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 기쁨을 맛보는 축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쁨은 그냥 기쁨이 아니고, 눈물을 통과한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뭐죠? ‘눈물 후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126편도 동일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126편의 역사적 배경은 바벨론 포로 귀환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우상 숭배를 거듭하다 바벨론에게 멸망합니다. 많은 엘리트 그룹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이 지난 후 가나안 땅으로 귀환합니다. 몇 번에 걸쳐 귀환하게 되는데, 시편126편은 1차 귀한 직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포로 귀환은 바벨론이 바사(Persia)가 되고 초대 왕 고레스가 즉위한 원년(B.C. 537)에 단행되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온갖 멸시와 고초를 당하면서 얼마나 조국을 그리워했을까요? 문자 그대로 오매불망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며 귀환을 갈망했을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소망은 사라지고,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전격 귀환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포로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속속 귀환의 길을 떠납니다. 그 때 그들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마디로 “눈물 후의 기쁨”입니다. 

[1] 바벨론 포로 귀환 : 눈물 후의 기쁨

시편 기자는 포로 귀환을 회고하면서 그 기쁨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1절~3절.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고,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마치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믿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며 서로 꼬집어보고 야단이었을 겁니다. 주변의 나라들조차 깜짝 놀라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놀라운 일이 어떻게 벌어졌다고 말합니까? 5절~6절.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지에서 귀환하기 전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며 애썼는지 모릅니다. 고생고생 했을 겁니다. 그 모습이 마치 눈물로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여러분, 농부들이 얼마나 수고합니까? 씨를 뿌릴 때도 땅을 일구고 씨를 일일이 뿌리느라 엄청 수고합니다. 그리고 싹이 나지 않나 염려하고, 그 후에는 잘 자라지 않을까 노심초사 애를 씁니다. 그 수고가 얼마나 큰지 어떤 자료를 보니까 벼를 심고 추수하기까지 무려 88 단계 손이 간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수고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시137:1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러분, 이런 눈물이 헛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추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이 그렇게 힘들고 눈물이 나도 굳이 농사를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추수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체험한 기쁨이 바로 이런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백성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들의 귀환을 위해 애타게 기도합니다.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여기서 ‘남방’은 구체적으로 팔레스틴 남쪽 ‘네게브’(Negev)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평소 땅이 바짝 말라 있는 사막 지역입니다. 그런데 우기가 되면 놀랍게도 물이 고이고 시내가 되어 흐릅니다. 이런 땅을 가리켜 ‘와디’(wadi)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다시 한번 남은 포로들에게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곧 ‘심음’과 ‘거둠’의 법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 법칙입니다. 자연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법칙이요, 더 나아가 인생의 법칙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법칙을 언급했죠.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의 법칙은 무엇을 어떻게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얼렁뚱땅 심으면 쭉정이가 나옵니다. 정성을 다해 눈물을 흘리면 알곡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정말로 큰 기쁨을 얻기 소원한다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지만, 그 중에는 헛된 눈물이 많습니다. 자기 설움에 흘리는 눈물, 신세 한탄을 하며 흘리는 눈물, 원한이나 증오의 눈물 등입니다. 우리는 가급적 이런 눈물은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 : 회개, 수고, 기도, 헌신의 눈물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떤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① 회개의 눈물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흘려야 하는 눈물이 바로 회개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깨닫고 회개할 때 눈물이 납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믿어지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다윗도 시34:18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어떤 분은 그래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눈물을 한 번도 흘려보지 않았다고. 물론 성격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성찰해 보면 얼마나 허물과 죄가 많은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런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런 눈물을 실컷 흘리고 나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죄의 독소가 제거되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생리학자가 눈물의 성분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실컷 울고 난 후 흘린 눈물의 성분을 조사해 보니까 체내의 독소가 다량 검출되었다는 겁니다. 눈물을 통해 유해 독소가 배출된 겁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많이 흘리면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있어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장수하잖아요.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여자가 남자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많이 흘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 사항은 양파 껍질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무효랍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속의 감정을 실어 흘리는 눈물만 독소를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마치 비가 온 후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영혼에 영롱한 무지개가 뜹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 놀라운 회복과 치유, 그리고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미국의 크리스천 소설가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본명은 「윌리암 시드니 포어터」입니다. 그는 300여 편의 감동적인 단편소설을 남긴 작가로 「마지막 잎새」등으로 유명하죠. 그는 본래 은행원이었는데, 공금 횡령으로 3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자기 딸에게는 감옥에 들어와 있는 것을 비밀로 했기 때문에 가명으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가 흘린 회개의 눈물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치게 해 주었습니다. 

② 수고의 눈물 :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잘 보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 배후의 수고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수고의 눈물을 흘렸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은 대로 거두는 게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하기를 소원한다면 반드시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때로는 결과가 잘 안 보여도 이 법칙을 확신하면서 끝까지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쉽게 성공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결코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크리스천 운동선수 두 사람이 우리를 즐겁게 했죠. 어제는 장미란 산수가 세계역도선수권대회 4연패의 소식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주초에는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가 낭보를 들려줬습니다. 오초아와 접전 끝에 1점차로 석패해서 LPGA 「올해의 선수상」은 놓쳤지만, 신인왕과 다승왕, 그리고 상금상 등을 차지했습니다. 

데뷔 첫 해에, 그것도 만21세에 그런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배후의 사연을 들어 보면 눈물이 납니다. 신 선수는 경기를 할 때 배짱이 두둑하고 항상 웃음을 띠고 있어 별명이 ‘웃음 천사’죠. 그런데 그 웃음 뒤에 눈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자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1년 동안 병원에 있다 돌아가셨습니다. 골프는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잖아요. 그러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 수고의 눈물이 오늘의 신지애를 만든 겁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혹시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어쩌면 좀 더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힘들지만 좀 더 수고의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의 기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③ 기도의 눈물 :

기도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영적 무기입니다. 기도로 우리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되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큰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눈물에는 진심이 있고,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중년에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38:5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당장 죽는다고 하던 사람이 15년 수명 연장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여러 가지 뒷바라지를 하지만, 눈물의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눅23:38 보면,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가던 중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암 전문의 원종수 박사의 간증을 들으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는 어린 시절 몹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에서 350등 할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공부라도 잘 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 전국 의사 고시 수석 합격 등의 타이틀을 하나하나 이뤘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암 전문의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특별히 귀한 것은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음 전도자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만큼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간증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옛날 시골에서 매일 10리 길을 걸어서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를 들쳐 업고. 그러다 겨울에는 할 수 없이 아이를 집에 두고 다녀온 후에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곤 했다는 겁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눈물의 기도로 인생을 승리하시고,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④ 헌신의 눈물 : 

헌신의 눈물은 예수님을 닮은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물론 그 눈물은 세상 사람들의 눈물처럼 설움과 한탄의 눈물, 혹은 개인의 사사로운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한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감람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습니다. 눅19:41~42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 ”

우리는 나 자신과 가족, 자녀를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야 되지만, 더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민족과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헌신의 눈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 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흘린 헌신의 눈물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 중 최초의 여성 선교사 스크랜톤(Mary F. Scranton 1832~1909)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 설립자입니다. 바로 지난 10월에 100주기에 맞춰 그의 4대손, 5대손 몇 명이 내한해서 양화진 묘지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가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후 목사이며 의사였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와 함께 내한했습니다. 시니어 미션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슬픔을 복음을 위한 헌신의 눈물로 승화시켰고, 이 땅의 여성들의 구원과 개화를 위해 크게 헌신한 바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흘린 눈물을 주님께서 다 닦아 주실 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설움과 한탄, 그리고 원한과 증오의 눈물이 아니라, ‘눈물 후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런 눈물로 하나님의 큰 기쁨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