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순 종 (요 2:1~11)

  • 잡초 잡초
  • 359
  • 0

첨부 1


순 종 (요 2:1~11)


I. 예수님의 첫 공식행사

S. Philips라는 사람은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가면서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좀 더 익어가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종교학 과목의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시험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에 담겨 있는 종교적 의미를 서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며 열심히 장황하게 논설문을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에 걸친 시험 시간이 거의 끝나고 있는데도 한 학생은 글자 하나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감독이 학생에게 다가와서 시험지를 걷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쓰도록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학생은 연필을 들어 자신의 답안지에 문장 하나를 썼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도다."
이 학생이 바로 나중에 영국 최고의 시인이 된 바이런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게서도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설레임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살아계신 하나님 경험하기 16번째 시간 -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신약의 첫 이적을 통해 은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별명은 독수리 복음서입니다. 독수리는 해를 똑바로 쳐다보아도 그 눈이 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 가장 높이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영적인 복음서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요한복음의 전반부에 속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이적은 공관복음의 이적에 비해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적을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상징 즉 싸인(sign)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2장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인가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적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이적(2:1-12),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치유 이적(5:1-18), 실로암 못가의 맹인 치유 이적(9:1-12) 기사처럼 모두 이적이 일어난 구체적인 장소를 제시하는 표적자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곳은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갈릴리 지역의 한 마을인 가나입니다. 이곳의 한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사흘 되던 날에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제3일은 예수님의 부활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사흘째 되던 날에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날입니다. 가나라는 구체적인 장소 제시어와 함께 사흘 되던 날이라는 시간 제시어가 나타납니다. 

장소 제시어와 시간 제시어가 나타나는 것이 이 표적사건이 예수님과 함께 구체적인 역사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사건과 사건이 주는 의미가 오늘 이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첫 공식행사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공식행사입니다. 첫 공식행사 - 첫 번째 표적을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시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여 첫 번째 공식행사로 잔치 집에 가서 먹고 마시는 훈련부터 시작했습니다. 뭘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일까요? 「인생은 잔치다. 예수믿는 신앙생활은 바로 풍성한 삶이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믿고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잔치가 회복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공식행사를 결혼하는 한 가정을 방문하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다고 하면 아마 가정과 교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첫 번째 기적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혼인잔치에서 행하셨습니다. 혼인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 친히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혼인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만큼 혼인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혼인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결혼관계로 맺어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우리는 또한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로서 혼인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에서 주님의 신부로 표현이 됩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이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논쟁이 되었던 성경이 한권 있습니다.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와의 사랑의 관계를 아주 깊고 풍성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자신의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앞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경험되어져야 할 장소가 바로 가정이요 교회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허공을 치는 철학이거나 또 아주 거창한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어디에서 가장 구체화되어지는 것이냐? 우리가 예수를 믿었을 때에 가장 구체적으로 그 능력이 나타나야 할 장소는 가정이요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은혜를 받으시면 그 은혜를 안고 가정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하룻동안 일하셔서 여러분이 돈을 벌었으면 그 돈들이 가정에 유익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면 그 출세와 성공과 명예가 가정 안에서 나누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 여러분의 가정이 은혜의 집, 잔치 집으로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받은 사람이라면 여러분을 통해 교회가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면 여러분은 교회의 평안을 위해 쓰임 받아야 합니다. 
II. 서로에게 포도주가 되자

은혜받은 여러분들은 변화된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즐거움이 되어야 됩니다. 시편 128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가정의 행복을 노래하며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특별히 거기에 보면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주 잘 영글어진 포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결실한 포도송이 같은 그런 모습이 아내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덴동산 이후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기쁨이 떨어졌습니다. 잔치가 부셔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껏 행복하고 마음껏 먹고 즐겨야 될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 당시 포도주라는 것은 잔치를 위하여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일이야 금방 한 솥 지으면 되지만 포도주는 담근다고 해서 금방 포도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양고기가 주식입니다. 양고기를 먹으려 할 때 누린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포도주를 반드시 마셨습니다. 포도주 없는 양고기를 저들은 먹질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포도주라는 것은 주식을 의미합니다.

자, 이 포도주가 떨어졌다. 잔치 집이 망가지게 생겼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인생의 잔치가 망가지신 분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마땅히 기쁨이 있어야 되고 행복해야 되는데 그 행복이 깨지신 분 계십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으로 초대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행복감이 깨지신 분 계십니까? 여러분의 육체에 평안함이 깨지신 분 계십니까? 여러분 삶의 환경속에 기쁨과 행복이 망가지신 분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잔치 집에 포도주 떨어진 인생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포도주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위기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고, 물질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직장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친구관계가 좋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가족관계가 악화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 인생의 깊은 허무 속에 빠져서 향기가 다 빠져 나가고 쓴맛만 남은 포도주처럼 인생의 쓴맛만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생활, 예배생활에 기쁨을 잃으신 분은 포도주 떨어진 잔치집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저는 개인뿐 아니라 교회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포도주가 떨어져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는 몰라도 교회에는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고 흘러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24장 11절에서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가운데 포도주가 없으면 사람들은 거리에서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다가 기갈하게 되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배 가운데 은혜의 포도주가 넘쳐 나시길 축복합니다. 

그때 이 집이 마리아의 동생 집인지, 마리아의 오빠의 아들이 결혼을 했는지 모르지만 마리아가 잔치집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잔치 집의 주빈처럼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친척 가운데 어떤 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초청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포도주 떨어진 문제를 가지고 마리아는 예수님과 의논을 합니다. 자 예수님께서 만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마리아는 예수께서 어릴 때부터 마음 속에 두고 살았습니다. 이제 공생애로 들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능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거룩한 신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예수님하고 의논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생애 시작 첫 번째 일들을 이 포도주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게 한다는 것은 어머니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사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개인적인 문제를 예수님하고 의논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미리 "이것은 안돼는 일이야" 포기해 버리지 말고 예수님하고 의논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이라고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구원이나 인생관이나 종말관이나 우주관 같은 커다란 문제만 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문제, 정말 미미하고 세미한 문제까지 주님하고 의논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런 속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차 한 시대가 이를 것인데 그 때에 각 언덕마다 포도나무가 자랄 것이며, 각 포도나무마다 일만 개의 뿌리를, 각 뿌리마다 일만 개의 포도알들을, 각 포도 알마나 120갤론의 포도즙을 낼 것이라." 이 말은 메시야가 시대가 도래하면 풍성한 포도주가 흘러넘칠 것이라는 구약의 묵시 문학적 예언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속담이었습니다.(욜3:18, 암9:13)

이 속담을 알고 있던 독자들이 이 기적 사건을 만났을 때 그리고 이 말씀을 읽었을 때의 반응과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경이와 경탄의 눈으로 "아니 그렇다면 이 예수라는 분이 메시야란 말인가!"하는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가 그렇게 의논을 해 오셨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참 저도 답답하네요" 그러든지 또 어느 집에 가서 포도주를 한번 꾸어 보시지요. 그렇게 한다든지, 저도 길이 없어요. 그렇게 부드럽게 얘기하면 될텐데 예수님의 대답은 대단히 단호합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과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III. 주님과 상관있는 문제

분명히 예수님이 마리아의 요구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었어요. 말씀은 분명히 거절하는 말씀인데 예수님이 실제로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이 문제를 어떻게 예수님과 상관있는 문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의 때가 되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예수님의 때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들, 여러분이 기도하는 한마디 한마디, 오늘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해결함 받고자 하는 온갖 문제들이 주님과 상관있는 문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과 상관있는 문제가 되기만 하면 그 문제는 이 순간에 주님이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문제를 주님의 때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가?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집 저집 뛰어 다니지 않았습니다. 연회장이란 말은 요한복음 가나 혼인 잔치에만 나오는 말입니다. 연회장은 명예로운 자리였다고 합니다. 연회장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잔치를 망칠 수 있는 과음을 예방하기 위해 포도주 분배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연회장을 붙들고 어떡하면 좋지요 쩔쩔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툭 던져 놓고 완전히 맡겨버리고 맙니다. 

루터는 우리에게 마리아의 믿음을 배우라고 권고합니다. 마리아는 거절 같아 보이는 답변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주님 앞에 위탁하는 겁니다. 주님 앞에 던져 놓고 담대히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기도의 제목들이 주님과 상관있는 문제가 됩니다. 주님의 때가 됩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그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하라는 말씀은 불가능한 순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너희들 마음속에 내키지 않는 명령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맡겼으면, 포도주를 만들든지 안 만들든지 이제는 그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앞에 기도를 했으면, 여러분이 주님 앞에 맡겼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든 안 하든 이제 주님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여러분들에게 유익하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가 있으면 기다리게 하실 것입니다. 좀 더 기도할 필요가 있으면 기도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하면 되는 거예요.

과연 주님은 엉뚱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유대나라엔 물이 많지가 않아요. 수도꼭지라는게 없습니다. 그리고 우물이 없습니다. 밖에서 샌들을 신고 질퍽거리는 땅이라든지 모래바닥을 다닐 때에 손과 발에 먼지가 묻는 단 말이예요.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들어갈 때에, 일하고 들어갈 때에, 손님들이 올 때에 손과 발을 닦는 물들, 그 손닦는 물들이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화장실 물이예요. 그게 바로 손 씻는 항아리입니다.

"정결 예식을 따라서 항아리를 준비했다" 하는 것을 아주 고상하게 얘기를 하는데 그게 아니고 항아리에 손 씻고 발 닦을 물이 있는데 거기 보니까 항아리가 텅텅 비어있어요. 여기다가 물을 담아라. 여러분 지금 마실 포도주입니다. 그냥 손 닦기 위한 물이 아닙니다. 마실 포도주를 지금 만드는데 예수님께서 정결 예식에 필요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겠습니까? 포도주 떨어졌으니까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까 속이 상해서 엿 먹어라. 그래서 그 손 닦는 항아리에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음식항아리가 왜 없겠습니까? 밥 짓는 물통이 왜 없겠습니까? 지금 잔치 집인데, 밥 짓는 항아리가 있었을 거라구요. 빵 굽는 항아리가 있었을 거라구요. 부엌에 여러 가지 그릇들이 있을 거라구요. 그러나 거기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지 아니하고 손 닦는 항아리에 왜 물을 채우라고 했을까?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손 닦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까? 한 두 가지 정도 응답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우선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천지가 하나도 만들어 진 것이 없습니다. 물고기 하나 만들어진 것, 꽃 한송이 피게 된 것, 하늘에 별 하나 만들어 진 것,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 - 성경에 보면 그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도 만들어 진 것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역사를 운행하는 운행주이십니다. 역사의 승리자이십니다. 바로 그분 안에서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일, 지옥의 백성이 천국가는 일, 마귀의 종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 예수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을 분명히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 그 아무 것도 구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추호라도 내가 잘나서 예수 믿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은 분명히 100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사역입니다. 여기는 감사 밖에 없어요. 눈만 감으면 눈물이예요.

여러분 나를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도 미천하고 성질도 더럽고 손발에 자비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이 나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제자로 삼으시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들이 내 가운데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여러분들 가운데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창조보다 더 엄청난 기적입니다. 세상에 기적이 많고 많지만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 보다 더 엄청난 기적은 이 땅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감사예요. 구원받고 아버지 집에 나아와 예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났으면 다른 기적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인간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둘째, 정결 예식 항아리에서 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손 닦는 것은 유대인의 결례입니다. 율법입니다. 유대인의 결례, 손 닦는 것, 껍데기를 닦는 것 - 이 의식, 무의미합니다. 무익한 것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복음만이 능력입니다. 말씀만이 능력입니다. 예수만이 능력입니다. 껍데기 씻지 말고 본질을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먼저 바꾸려고 하지말고 네 마음부터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식을 바꾸려하지 말고 내 신앙의 본질을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마음을 바꾸라. 가치관을 바꾸라.」여러분 존재가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손 닦는 항아리에 분명히 더러운 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정결 항아리가 예수님의 눈에 띄었던 이유는 손님들이 손과 발을 닦을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더러운 것들도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찌꺼기들이 물과 함께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물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불순물까지 바뀐 것입니다. 우리 안에 찌꺼기까지 모두 바뀔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구원은 받았는데 더러운 찌꺼기들이 아직 변화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이 표적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IV. 순종이 기적으로

저는 오늘 본문을 읽을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 졌을까? 하는 짓궂은 상상력이 발동되었습니다. 물은 무색이고 맛이 없어요. 그런데 포도주는 색깔이 있고 향이 있어요. 전혀 다른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을까?

물을 길르러 우물에 갔는데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져 있는 거예요. 이렇게 신통한 일이, 신나서 포도주를 길어 왔을까? 아니면 물을 길을 때는 물이었는데 머리에 이고 어깨에 걸머지고 오는 사이에 이것이 점점 바뀌어 빨간 포도주가 되었을까? 아니면 결례에 붓는 순간에는 물었는데 항아리에 도달하고 나니 포도주로 바뀌어져 있었을까? 아니면 정결 예식 항아리에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간 사이에 보글보글 끓더니 포도주로 좍 변해져 있었을까? 아니면 마술램프처럼 연기가 한번 지나가더니 포도주로 바뀌어졌어요. 누군가 야 이거 봐라. 포도주로 바뀌었어. 정말 포도주로 바뀌었네. 서로들 야단법석했을까? 아니면 다시 정결 예식 항아리에서 퍼 가지고 손님들에게 가는 사이에도 여전히 물이었는데 연회장이 마셔보더니 야 나중에 나온 포도주가 끝내주네.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을까? 제 생각에는 그리고 성경 전체하고 본문하고 연결해 보니까 제일 마지막 순간에 연회장이 맛을 보는 사이에 포도주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끝까지 순종을 요구하거든요.

물을 길을 때도 여전히 물이었어요. 어깨에 걸머지고 머리에 이고 올 때도 여전히 물이었어요. 갖다 부을 때도 여전히 물이었어요. 퍼다 주라. 이거 연회장에 갔다 줬다가 물을 갔다 주면 이게 뭐야 하고 귀싸대기 맞을 수 있는 일이예요.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귀 싸대기 맞더래도 죽도록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래요. 주님이 갖다 주라고 하셨으니 갖다 주면 된다 끝까지 순종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절대순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회장에 갖다 줬을 때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했을 거예요. 이것 자칫하면 어느 뺨을 맞을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갖다 주는 거예요. 그런데 연회장이 마셔보더니 캬~ 했을 때에 그 종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야 과연! 그분이 도대체 누구길래? 

표적은 절대 순종, 무조건 순종,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에 병이 나았다 그래요. 그런데 여전히 속이 쓰려요. 그런데 여전히 다리가 아파요. 또 약이 생각나요. 끝까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뺨을 맞아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나왔는지 연회장은 모르는데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만약에 정결 예식 항아리에서 포도주를 떠왔다고 하면 포도주를 퍼온 하인들은 알더라 그렇게 얘기했을 텐데, 성경은 분명히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 항아리에서 물을 뜰 때는 분명히 물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순종할 때에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순종만이 순종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순종만이 순종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류영모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