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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은사와 열매 (갈 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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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와 열매 (갈 5:16~24)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진흙으로 모양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신 생기는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호흡에 있습니다. 호흡이 끊기면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호흡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 호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적 호흡입니다. 육적 호흡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영적 호흡이 중요합니다. 영적 호흡이 끊기면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 교회에 하신 말씀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맙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되고 맙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입니다.

예수님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령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주신 말씀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천이란 그리스도의 영 즉 하나님의 영 다시 말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인생관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엉뚱한 것 같아 보이고,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수로 바둑을 두는 사람과 같아서 결국은 승리하고 결국은 성공합니다.

세상의 수와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풀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잠시는 흥황한 것 같으나 결국은 말라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와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여호와의 전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늙어도 진액이 풍족하게 되고 잎이 청청하게 되어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세상에 나타내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의 수와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게 되고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누가복음 11장에도 나오는데 누가복음은 그 말씀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9-13)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로 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그 말씀 속에는 다른 것도 다 구하지만 하나님에게 우리가 성령을 간절히 구하기를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속내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5절에 보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성령의 세례는 받는데 많은 날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로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 창조 때부터 성령이셨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을 쏟아 버린 우리들에게 다시금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도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면 우리는 모두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안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 나라의 철학과 사고방식과 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로 인생과 세상의 바둑을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공하고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나지 아니하면 밤낮 악인의 꾀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어서 밤낮 하여 얻는 것이 바람에 나는 겨 뿐인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은사를 상으로 받습니다. 은사는 사람의 힘과 노력을 뛰어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미국에서도 보면 아주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gifted입니다. 은사를 받으면 어떤 사람이 남들이 하지 못하는 방언도 할 수 있게 되고, 예언도 할 수 있게 되고, 병도 고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질 수도 있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 은사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방면에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 은사를 잘 개발하여 그 쪽 방면으로 헌신하여 살게 되면 그는 탁월하고 뛰어난 사람이 되어 결국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탤런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탤런트를 주셨습니다. 탤런트도 일종의 날 때부터 타고 나는 뛰어난 어떤 방면의 능력입니다. 일종의 소질과 재능과 같은 개념입니다. 넓은 의미의 은사입니다. 은사와 탤런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그 은사와 탤런트를 개발하여 살면 그는 성공합니다. 반드시 성공합니다. 남이 좇아 올 수 없는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와 전공과 직업을 택할 때 대개 은사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은사를 좇아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연봉을 좇아 직업을 선택합니다. 이때 부터 우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고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평생 살아가는 것과 같은 불편함과 답답함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은사를 좇아 살면,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 그 은사를 더욱 더 강화하고 개발하여 살면, 성령과 은사를 좇아 살면 그는 세상에서도 탁월한 사람이 되어 그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은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성령을 받으면 삶에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성령의 열매보다 성령의 은사에 집중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능력을 비교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to do'에 속한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to be'에 속한 것 같아 보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속한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사람 자체의 성품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늘 능력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봅니다. 능력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아무 쓸데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능력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능력이 악한 것이고 아무 쓸데 없는 하찮은 것이라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사와 탤런트를 선물로 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됨입니다.

좋은 성품은 뛰어난 능력보다 중요합니다. 좋지 못한 성품을 가진 뛰어난 사람은 참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사만 받고 열매는 맺지 못했다면 그는 영적으로 골치 아픈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를 하나, 하나 곱 씹어 보면 참 기가막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 자비와 양선의 열매,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 하나, 하나를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열매가 내 삶에 주렁주렁 맺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그동안 은사 위주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 동안은 제가 해온 목회와 사역으로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각양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회가 서로의 은사를 가지고 키 재기를 하며 경쟁하였듯이 저 역시 은사의 키 재기를 하며 살아온 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며 살아온 모든 삶이 다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해온 사역과 목회의 열매들로 인하여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땅에 묻어 두지 아니하고 죽을 때까지 사용하여 열 달란트 맡은 사람과 같이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제가 욕심을 내고 싶은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를 경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제하고 후배들의 은사개발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후배들을 앞세우고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보다 더 많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고 후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예수 믿고, 성경을 공부하고, 깊은 기도로 훈련하여 제 삶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힘을 쓰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날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항상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샘솟는 기쁨으로 말미암아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피스 메이커가 되고 싶습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젊었을 때의 혈기를 잘 다스리고 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이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젊어서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때로는 사납고 날카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였고 또 그런 모습을 좋아하기도 하였으나 나이들어가면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넉넉함으로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모세가 맺어던 온유함의 열매도 맺어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지도자로서 교인들에게 충성을 가르치고 강요한 삶을 살아온 것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앞으로는 지도자의 자리를 내려 놓고 교인들과 함께 낮아져서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후배들에게 충성하는 근사한 늙은이가 되어 보고도 싶습니다. 절제의 열매를 맺어 늙어갈 수록 많아진다는 노욕을 버리고 검소하고 단순하고 심플한 삶의 멋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때까지 하나님께 집중하고 열심히 살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고 싶습니다. 예수를 정말로 잘 믿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내 삶이 곧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고후 3:3)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가 진동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좇아 행하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생각과 소욕을 버리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오늘 본문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못 믿으면 육체의 소욕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함입니다.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는 마음 가난한 자가 되고 성령에 대해서는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 훌륭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열매를 맺어 성품과 생각과 모습이 꼭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만 합니다. 진짜 예수쟁이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냥 주일 날 예배당만 덜렁덜렁 다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오늘 본문이 약속하신 성령의 각양 아름다운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으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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