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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으로 (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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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으로 (눅 15:11~32)


1.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세상과 성경은 각각 다른 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재능'을 중시한다. 어떻든 꿩을 잡아야 매가 된다. 세상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다. 그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살아남고 1등을 해야 주목을 하고 기억을 해 주는 "더러운(?) 세상"이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재능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부인하고 부정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추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인격"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더 주목한다. 물론 이 문제는 양자택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만일 인격은 좋은데 수술 실력은 부족한 의사가 있다면 그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있을까? 인격은 훌륭한데 타율이 형편없는 야구선수를 고용할 구단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꾸만 세상은 그쪽으로 가고 있고 크리스챤들조차도 그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어서 인격보다 재능을 위한 기도와 노력을 더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여전히 우리의 재능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성령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2,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1)아버지는 아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였다. 본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요청을 들어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 인격적이었기 때문이다. 

2)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으셨다. 본문 20절을 보면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의 귀환소식을 듣고 나온 것이 아니다. 아들이 떠난 날부터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잊지 않으셨다. 마음의 문을 열고 계셨다. 아들을 보자 먼저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돌아올 줄을 믿고 있었다.

3)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자신의 돈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이 얼마나 미웠을까? 이번에 단단히 혼을 내지 아니하면 언제 또 가출할지 모르는 아들에게 그냥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생환 잔치를 열었다.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기뻤다. 아버지는 선악의 시비보다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를 기뻐하였다.

4)아버지는 매정한 큰 아들에게도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이 다 그 아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리도 기뻐하는지를 설명하였을 뿐이다. 집을 나간 탕자보다 더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집안의 탕자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젠가는 큰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 줄 믿었다.

3.이 세상의 진짜 문제는 재능의 부족이 아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인격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이어받은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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