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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살 수밖에 없는 사람 (대상 29:26~30, 마 18: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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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 수밖에 없는 사람 (대상 29:26~30, 마 18:33~35)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기 위해서 주시는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잘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
렇게 살면 반드시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고 잘 살 수 밖에 없는 나라, 우리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되고 잘 
살 수밖에 없는 인생,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을 정하는 것이 목회자에게는 참 고민입니다. 주
제, 타이틀 하나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 한두 명 낳아도 이름을 못 지어서 저에게 물으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 이름 하나 간단한 것도 못 지어서 ‘경자’라고, 우리 교회에 경자가 178명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수많은 분들이 쓰는데 그 이름 멋지게 하나 짓는 것이 그렇게 어
렵습니다. 설교 제목을 매 주일마다 타이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저는 30년 동안 명
성교회를 목회하면서 같은 설교제목이 별로 없습니다. 그게 어려운 일이잖습니까? 항상 다른 이름으로 
다른 메시지로 여러분에게 나아간다는 것,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해 주셔야 됩니다. 오늘 이 제목에 은
혜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왜 슬프냐?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고 왜 마음이 안타깝고 슬프냐? 한가지입니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이 땅에 있는 유일하신 내 혈육이고 내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내 생명을 
주셔서 길러주시고 장성케 하시고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일편단심 내가 잘 되기를 위해서 
염려하시고 노력하시는 분이 우리 부모님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한없이 슬픈 것입니다. 
물론 형제도 있고 이웃도 있고 스승도 있지만 부모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딱 한 분이신 부모님, 부모
님은 내게 소중한 말을 해 주십니다. 우리 아버님도 살아계실 때에 늘 저보고 그랬습니다. “왜 교회 안 짓
냐? 

교회 새로 짓지.”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 기도도 해야 되고 때가 
돼야 되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되는데, 아버지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제가 잘 알고 있습니
다. 기다려 보세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이 천국 가셨습니다. 아마 짓고 나면 우리 아버님께서 기뻐하시
리라 생각됩니다. 

부모님 다음에 우리를 잘 되고 복 받기를 원하고 우리 성도들이 살아갈 때 한없이 행복하고 잘 되기를 원하는 분이 그 외에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주의 종, 목회자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서 40년을 지내오고 모든 목회자의 똑같은 걸 발견하는데 꼭 부모의 마음입니다. 교인이 잘되면 너무 좋고 너무 기쁘고 좋은 차 사서 벤츠를 타고 다니면 너무 기쁘고 비엠더블유 좋은 것 신형 타고 다니면 더 기쁘고 렉서스 타고 다니면 기쁩니다. 좋은 집을 사면 기쁘고, 이사 가면 기쁘고, 승진하면기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괴롭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몸이 아프면 안타깝습니다. 얼굴 표정이라도 어려워지면 주의 종은 가슴이 미어집니다. 항상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을 보면서 슬펐다가 좋았다가 괴로웠다가 답답했다가 이 마음을 늘 갖고 있는 것이 주의 종입니다. 성도들 가정에 자녀들이 잘 되면 좋아합니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와 같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와도 너무 너무 예쁘게 보이고 좋은 것입니다. 좋은 차를 타면 다른 사람은 ‘저사람 좋은 차타더니 또 바꾸었네.’ 이러는데 목사는 안 그렇습니다. 

‘차 참 잘 바꿨네.’ 하면서 부모와 같은 생각을 가집니다. 이건 목사의 마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의 종을 보내실 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라고 주의 종의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인을 보고 하나님의 가슴으로 교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들은 모이면 교인을 자랑합니다. ‘아, 우리 교회는 누가 이렇게 축복 받고 은혜 받고.’ 신나서 그 자랑을 합니다. 부모들은 모이면 자식 자랑을 하듯이 목회자는 모이면 성도들을 자랑합니다. ‘우리 교인 카이스트에 있다고, 우리 교인 청와대에 있다, 우리교인 돈 벌었다.’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니까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왜 여러분을 부르십니까? “누구든
지 내게 오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길갈로도 벧엘로 가지 말고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
희가 살리라” 주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영
생을 얻고 한 사람이라도 심판 받지 않고 구원 받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 3절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태복음 15장 28절에
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3서 2절에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민수기 6장 22절에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평강하기를 원하고 은혜 받아 잘 되기를 원하고 깨끗하기를 원하고 건강하기를 원하고 영원한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의 제목이 그거잖아요? “나와 내 백성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자자손손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여러분을 한없이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에 읽어드린 다윗 왕에 대한 말씀, 다윗은 이 세상에 제일 복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도 복 받고 영
적으로도 복 받고 왕으로서도 복 받고 그의 가정으로도 복 받고 그의 인생 전체에 복을 받았습니다.  세
계에 안 믿는 과학자들 100명이 모여서 연구를 했는데 인류역사에 제일 부자가 다윗 왕이었다고 합니
다. 

저는 뉴욕 타임즈에서 그걸 보았습니다. 세상에 인도의 왕들, 중국의 황제들, 이집트의 바로 왕들, 록
펠러, 카네기, 다 해도 다윗 왕 만큼 복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윗은 
이렇게 모든 일에 복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말한 대로 부하고 존귀하다가, 사람이 부유함이 있으면 존
귀가 안 따라올 수가 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존귀가 안 따라올 수가 있습니다. 다윗 왕은 임금님으로 
40년 있으면서도 누수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온 국민이 다윗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윗의 아들을 왕으
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십시오. 명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는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하에 의해서 죽은 왕들도 참 많습니다. 비참하게 살해되는 왕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얼마나 많습니까? 왕이라고 다 다윗같이 사는 게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다 다윗같이 존귀하고 부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영광스럽게 산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런 복을 받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다윗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따라하십시다. ‘주여, 내게 다윗 같은 복을 주옵소서’ 이런 말은 늘 따라하고 입으로 본인이 고백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을 구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지난주에 저희들이 어른들을 모시고 일본에 갔었는데 우리 어른들 가운데 증경 총회장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얼마 안 남았는데 비디오에다 공개적으로 유언을 하자.” 그렇게 설
득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모두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장님 
가운데 시인이신 분이 있습니다. 시를 쓰시는 유명한 분인데 그 분이 나오셔서 말하기를 유언은 하면 안 
됩니다. 

그냥 글로 쓰는 건 몰라도 말로서 그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시인 가운데도 죽
음의 시를 쓰는 사람은 빨리 죽는답니다. 슬픈 시를 쓰면 슬프게 끝난답니다. 밝은 시를 쓰고 생명의 시
를 쓰고 희망의 시를 쓰고, 희망의 철학을 가져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
니다. 노래도 슬픔의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처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낙
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면 자기도 낙엽 따라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절망의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머리에 입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뇌에 입력이 되어서 그것이 전체 지울 수 없이 지시를 한
다는 것입니다. 몸에다가 전부 그 죽음을 지시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
는 말을 하고 행복한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승리의 말을 하고 장수의 말을 하
기를 바랍니다. 오래오래 축복 받는 삶의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기네스북에 제일 장수한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105세이고 아내는 100세입니다. 부부가 같이 그렇게 
건강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110세, 120세는 있는데 부부가 다 같이 결혼하고 8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오셨습니다. 행복의 비결이 뭐냐?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남
편은 아내를 보고 ‘아이러브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행복해요, 감사해요.’ 이렇게 고백한다
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이 언어가 건강하게 하고 장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집에서 아침 6시 반에 나올 때 집사람이 뛰어나오면서 “여보 사랑합니다!” 그리고 탁 안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사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고 당신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가세요. 그래서 더블로 ‘아이러브유’ 그리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집사람이 그것을 듣고 활짝 피어납니다. 물론 우리도 60이 넘어서 징그럽기도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랑은 나이 많다고  징그러운 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영원히 늙지 않는, 변함이 없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희망과 생명이 넘치는 축복이 ‘사랑한다!’ 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다윗 같이 “하나님! 내게 축복해 주옵소서. 내가 주의전에 왔습니다. 주여, 내게 다윗 왕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한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왜 이렇게 장판을 깔듯
이 66권에다가 다윗을 싹 깔아 놓았습니까? 다윗의 히스토리를 개인의 삶인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다윗을 많이 말씀하십니까? 조금만 말해도 되는데 이 소중한, 천하에 귀중한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인데 왜 다윗의 가정 이야기, 다윗의 개인의 사생활을 왜 이렇게 길게 다룹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 같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이 다윗 같이 복 받게 하
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속에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 가지로 보십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인 면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드리지 않아도 많이 들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좋아했습니
다. 

이 세 가지를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성전을 사랑하는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 여호와의 전에 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금님이 
되면 온갖 부귀 영광 좋은 것은 다 갖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성경을 그렇게 사모합니
까? 

그렇게 기도합니까?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정말 신앙의 사람입니
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많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다윗
이 그래서 복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링컨이 다윗을 좋아해서 다윗이 지은 시편을 다 외었다고 하지 않습
니까? 

오바마 대통령도 다윗을 좋아해서 다윗의 시편을 다 외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다윗을 
좋아하고 오바마 같이 다윗을 좋아하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다윗 같은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다윗의 축복의 포인트는 어디 있습니까? 다윗은 인간관계를 잘 맺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도 
인간관계를 잘 못 맺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관계에 모가 있고 마음이 좁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쟁하고 다투고 분열하고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여, 주여’, 하는데 인간
관계는 옳지 않습니다. 

어제 우리 총회장님께서도 그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며느리가 교회에 봉사는 잘하는데 시어머니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막 울면서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 우리 시어머니를 데려가든지 나를 데려가든지 누구 하나 데려가세요. 나는 시어머니하고 못 살겠어요.” 하고 기도하더랍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인간관계도 잘 맺어야지 남편도 좋은 남편, 그리고 자식도 부모도 시부모도 친정 부모도 어떤 분은 친정 부모한테는 폭삭 빠지고 시집 부모한테는 잘 못하고, 그건 안 됩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세상 사람과 잘 지내야지 우리의 행복과 힘과 능력과 축복이 사람을 통해서 오는데 사람과 잘 만나고 잘 사귀어야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비결입니다. 다윗은 그걸잘 했습니다. 사울 왕은 그걸 못 하잖습니까? 원수를 맺습니다. 정치인들이 제일 어려운 것이 적을 많이만드는 것입니다. 관용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관용하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양보하면 자기가 죽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은 무섭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헤롯왕도 자기 아들 두 형제를 죽이고 부인도 죽이고 장모도 죽입니다. 네로왕도 자기 스승도 죽입니다. 자식도 죽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사도세자가 그 아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세조는 조카도 죽이지 않습니까? 단종이 조카 아닙니까?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잔인합니다. 무섭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치는 양보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가 모두 그렇습니다. 인정사정없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은 정치를 하면서 모든 정적을 다 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권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 권력을 지켜주신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사업을 하는 분은 하나님이 내게 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을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사업에 대해서 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를 하나님이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자녀를 길러 주신다고 믿기 때문에 자녀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을 안 합니다. 자녀의 앞날에 대해서 무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부로 만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부부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산다고 믿고 부부간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남편 뒤에 형사를 붙여서 조사를 한다든지 요사이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편이 가 봐야 오리지 더 가겠냐?’ 이렇게 생각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믿으십시오. 자고 오면 바빠서 어디서 주무시고 오는가보다, 생각하고 편히 주무시고 오라고 하고 사람이 모든 일에 여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왕들이 적을 만들어서 다 죽이고 싸우는데 왜 다윗만은 모든 분들을 다 용서할까? 왜 관용하고 왜 사랑할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원수를 맺지않습니다. 모든 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손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힘이 되니까 나라가 발전하여 그나라가 세계적인 나라가 되고 부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적을 만들면 에너지가 거기에 다 들어가고 국력이 거기에 다 쏟아지고 맙니다. 나누어지면 모든 것이 다 거기로 쏟아집니다. 

금이 가 보세요. 다 그리로 새어버립니다. 부부간에도 금이 가 보십시오. 행복이 다 새어 버리고 맙니다. 사랑이 다 새어 버립니다. 경제도 서로 형제간에 싸우면 다 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저께도 우리나라 재벌이 자살하셨다고 하는데 너무 충격입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니고 형제간에 고소하고 고발하고 싸우다가 너무 안 되었습니다. 그 형님이 어마어마한 수 십 조 재산인데 큰 재벌하신 형님인데 그거 좀 주면 안 됩니까? 

뭐 하나 형님 가지시라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살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개도 묶어서 죽이려고 하면 그렇게 어려운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자살해서 죽는 것이 얼마나 몸부림치고 혀가 나와 죽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또 죽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비 오는 날 나타나는데 어떻게 잠을 자겠습니까?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따라 하세요. “우리는 
같이 살자.” 이게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형님, 같이 삽시다. 동생, 같이 사세. 친구, 같이 사세. 적으면 
적게 먹세. 옷이 하나면 다리 하나씩 끼우세.” 그러면 돼지 뭐가 대단한 겁니까? 같이 살자. 이것이 기독
교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사랑하는 주님. 다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다윗 왕이 왜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됩니다. 마귀의 자녀는 자기 
혼자 살아야 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다 같
이 잘 살도록 해야 됩니다. 모든 분과 손을 잡고 누구라도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있습
니다. 

누구도 품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왜 기도합니까? 사랑하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 앞에 은혜
를 받아서 우리는 인간관계의 모든 담을 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큰 사랑,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못 품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이 왜 잘 살까요? 기독교 정신 때문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니까 
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립보서 2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
도의 마음이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비의 마음, 사랑의 마음, 나누는 
마음입니다. 오늘 교독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
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여러분, 비판하지 마십시오. “정죄하지 말
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
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
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너희 아버지가 자비한데 너희도 자비
해야 할 것 아니냐? 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많은데 네가 정죄함으로 네가 정죄 받고, 너는 남을 볼 때 
남의 눈에 티만 보고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오히려 내 눈에 들보를 보고 남의 눈에 티는 아무것
도 아닙니다. 

이런 맘을 가지고 살면 다 다윗 같이 살 수 있고 다윗 같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남에게 주면 하나님이 흔들어 넘치게 준다고 했습니다.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나
누어 주고 불쌍히 여겨주고 긍휼을 베풀어 주고 자비를 베풀어 주면 하나님은 너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어 흔들어 넘치게 너를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왜 잘 됩니까? 이런 나라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꼭 들으셔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일본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습
니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나라입니다. 모든 일에 일본은 미국 다음입니다. 일본의 국력, 미국 다음입니
다. 일본의 과학, 미국 다음입니다. 일본의 지식, 미국 다음입니다. 일본의 민주주의, 미국 다음입니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일본이 왜 저렇게 잘 살까요? 기독교 정신입니다. 예수
님 정신, 다윗의 정신입니다. 다윗의 마음, 성경에 있는 마음입니다. 가지고 배워서 저렇게 복을 받는 것
입니다. 

제가 예를 들 테니까 잘 들어 보십시오. 일본은 1854년 일본과 미국이 화친하면서 조약을 맺으면
서 복음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언제 들어 왔느냐? 구출라프 선교사가 1832년에 군산 앞바다까지 왔다가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결국 쫓겨났습니다. 두 번째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까지 왔는데  또 
쫓아냈습니다. 미국하고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비해서 30년 늦게 1884년 9월 20일 제
물포에 알렌이라는 선교사가 들어오고 그 다음해에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4월 5일 부활절 아침
에 인천으로 옵니다.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도 바로 연세대학을 세우고 숭실대학을 세우고 배제학당을 
세우고 이화여대를 세우고 기독교 학교를 세워서 우리에게 전부 기독교 교육을 시킵니다. 고종황제도 간
절히 원하는 것이 그 기록에 많이 나옵니다. 학교를 많이 세우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일본
은 훨씬 더 많이 세웁니다. 일본에도 우리나라도 학교가 하나 없는 때에 선교사들이 와서 서양의 지식과 
학문과 자연과학과 천문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를 세워서 전 일본 사람들을 교회가 세운 학교에서 기
독교 교육을 시킵니다. 

성경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일본은 잘 배웠습니다. 잘 배워서 성경대로 민주주의를 저렇게 잘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미국이라고 하면 다 받아들입니다. 자기 것을  버리고 미국 것을가져다가 정치에 심고 교육에 심고 문화에 심고 삶 속에 다 심었습니다. 전부 그걸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치 기독교 복음이 유럽에 들어갈 때 유럽은 헬레니즘이지 않습니까? 헬라 철학이지 않습니까? 헬라 철
학에 기독교의 이 정신, 히브리즘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이것이 뭉쳐져서 전 유럽을 기독교국으로 만든 
것과 같습니다. 

일본에도 일본사람들의 문화와 정신 속에 기독교의 사랑, 기독교의 희생, 기독교의 겸손을 가져다가 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사람은 기독교가 이것 하나입니다. 제목이 사랑입니다. 남에게 배려하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다 같이. 예수님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같이 살게 합니다. 율법은 얼마나 차별합니까? 

모든 장애인을 성전에 못 오게 하는데 예수님은 장애인과 건강한 사람이 다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율법은 여자와 남자를 완전히 나눕니다. 여자가 어떻게 나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남자나 여자나 스구디아인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에게도 직접 가서 고쳐주고 하나 되게 하십니다. 기독교는 나누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모두 존경하면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모두 180개국이 모여서도 하나가 됩니다. 전 유럽이 부족들이 모두 다른
데도 다 하나가 됩니다. 전부 하나가 됩니다. 일본이 이걸 이루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일본 사람이 얼마나 친절합니까? ‘스미마세이, 아리가또고자이마쓰’ 뭐든지 칭찬해주고 좋아하
고 남에게 상처 되는 말을 인터넷에나 방송에나 일절 하지 않습니다. 공격하지 않습니다. 일본 국회가 그
럽니까? 

우리는 소림사의 청년들같이 국회가 그럽니다. 일본은 얼마나 신사적입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일본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일본은 미국 것, 외국 것, 서양이라고 하면 블랙홀같이 쏙 빠집니다. 얼마나 받아들이느냐하면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때려도 받아 줍니다. 우리는 원자탄을 때리는 게 아니라 와서 다 주고도 미국을 그렇게 싫어하고 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은 미국에 홀랑 빠져서 물건을 만들어도 모두 좋은 사람, 이웃을 위해서 만드니 옷 하나를 만들어도 세계적이고 자동차를 만들어도 세계
적입니다. 

왜? 남에게 좋도록 만드니까 그렇습니다. 음식을 만들어도 절대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만듭니다. 제가 일본 어느 곳에 가서 배를 탔는데 계곡을 40분을 내려오는데 휴지 하나가 없습니다. 절대로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안 합니다. 내가 남의 다리를 밟으면 내가 미안하잖아요? 일본은 정반대입니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거기에 다리를 놓아서 미안합니다.’ 오히려 밟은 사람한테 사과하고 미안해합니다. 어느 누구하고도 다투는 사회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증오하고 정죄합니다. 

이게 다 어디에서 나온 지 아십니까? 이게 다 유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천 년여를 우리가 싸운 것입니다. 유교는 뭐입니다? 개인도덕입니다. 삼강오륜은 ‘나’ 중심입니다. ‘나’ 하고 ‘너’ 하고만 있습니다. ‘우리’ 라는 게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 틀리면 싸웁니다. 나하고 안 맞으면 정죄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모두가 다 정죄입니다. 

모이면 정죄합니다. 다 갈라놓습니다. 내게 맞추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게 맞추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전부 너에게 맞춥니다. 우리는 커피로 손님을 대접해도 내가 좋은 것을 갖다 놓고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가면 음식도 묻습니다. ‘네가 무얼 원하느냐? 무엇을 드릴까요? 커피를 해도 설탕을 넣을까요? 안 넣을까요?’ 하는데 우리는 그냥 전부 타 놓고 내가 탔는데 먹으라고 합니다. 밥이고 뭐고 내가 해 놓은 것 먹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어느 것도 내가 안 합니다. 

너 원하는 게뭐냐, 네가 원하는 걸 따르는 것입니다. 너에게 맞추어야 해요. 우리는 다 좋아도 내 싫으면 그만입니다. 
생명 걸고 싸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부 나누어집니다. 너에게 맞추면 만 명이 모여도 하나가 되는데 
내게 맞추니까 만 명이 모여도 만 개입니다. 다 나누는 것입니다.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기
독교가 들어왔는데 무엇을 받아들였느냐? 컴퓨터로 말하면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안의 것
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는 안 다니면서 기독교 학교에 가서 전부 안의 것을, 성경에 있는 안의 좋은 
걸 다 받아들였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할렐루야! 아멘!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데 껍데기만 받아들였습니다. 위의 것은 포장을 씌웠는데 우리 속에는 기독교의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인들도 더 합니다. 교인들도 전부 바리새인같이 유교식으로 교회에 다닙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교파가 많은 데가 없고 이렇게 전 국민이 싸우는 나라가 세계에 없습니다. 방방곡곡 싸움판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왕따를 시킵니다. 유치원도 가면 싸웁니다. 

온 나라가 싸움판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대한민국 5천만이 하나가 된다고 해 보십시오. 이 힘을 가지고 나가면 우리가 뭐가 무섭겠습니까? 일본과 비교하면 인물도 우리가 낫고 키도 크고 우리가 훨씬 더총명합니다. 노래를 해도 일본 노래하고 우리 노래가 다릅니다. 우리가 성악도 잘합니다. 문화도 대단합니다. 영화배우 배용준을 일본 여자들이 홀랑 반해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우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이 모아지지 않기 때문에 힘을 쓰지를 못합니다. 일본하고 싸우면 백발백중 지는 이유가 모아서 싸우지를, 나가지를 않으니까 우리 힘이 다 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너 죽고 나 산다고 하지만 다 그 사람은 자기도 죽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나 살려고 나 잘되려고 모두 짓밟고 그러지만 결국 다 짓밟은 다음에는 자기가 짓밟힐 차례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앞엣것만 보고 나만 살고 너는 죽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런 권력은 오래 갈 수도 없고 그 권력이 결국은 짓밟히고 맙니다. 다 짓밟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 민족과 여러분이 복의 근원되기를 바랍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아서 남에게 주면 하나님은 내게 더 주십니다. ‘아, 주는구나! 더 주어야 되겠구나, 나누는
구나! 더 주어여 되겠구나, 사랑하는구나! 더 사랑해야 되겠구나.’ 하늘 문이 열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마
귀의 세계는, 사탄의 세계는 우리를 분쟁하게 하고 다투게 해서 우리를 버립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 
한 다음에 둘이 다투지 않습니까? 부부간에 나누어집니다. 형제간에 나누어집니다. 이웃 간에 다 나누어
져서 서로를 정죄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사탄의 나라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언제나 혼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광중에 같이 있고 사탄의 세계는 언제나 외롭게 혼자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이웃을 향하여, 아내를 향하여, 부모 형제를 향하여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과 한 번 인사하십시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너무 예뻐요 아름다워요, 너무 너무 훌륭해
요 멋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멋있어요?’ 우리는 칭찬이 자자하도록 해야 됩니다. 교회는 어떻게 보면 늘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여가지고 잘못하다가는 소곤거리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제일 분쟁의 씨앗이 될 수가 있습니다. 모여서 서로 남을 비판하고 남을 정죄하게 되면 그만 바리새파로 
한 순간에 흘러 가 버리고 맙니다. 

교회는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려고 모이는 곳이고 모여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모이는데 교인들이 모여서 이 말, 저 말 하다보면 그 교회가 상처를 받게 되고 그 교회의 성장은 멈춰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위기에 와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밖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안티를 한 번도 두려워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반 기독교적인 안티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안티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는 한 조롱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유럽사람이나 미국 사람은 일본 사람 하면 극진하게 대우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낮추어 봅니까? 일본 사
람은 어디 가도 섞일 수 있습니다.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유럽에 가면 유럽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부터 예
수의 사람으로 일어나시고 거듭나시고 가정과 여러분의 삶이 다윗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만 얼마나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가 기도를 이렇게 많이 하는데도 우리 문제가 풀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에 얼마나 시기와 다툼과 악
한 생각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품어 줄줄 모르면서 나 하나 잘되려고 늘 기도하는 사람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여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돌아서게 하옵소서. 우리도 이제 세계에 가장 축복 받
는 민족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민족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들 한 가정, 한 가정위에 
다윗과 같은 명문가의 축복의 가정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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