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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 모세 (신 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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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는 ‘명령을 반복한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애굽에서 나와서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들려주는 내용이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장-4장은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 40년 동안의 일들을 회고한다. 5장-26장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다시 한 번 해석하고 가르쳐 주었다. 27장-30장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말씀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의 결과 즉 축복과 저주를 말씀한다. 그리고 31장-34장은 모세의 마지막 부탁과 열 두 지파에 대한 축복 그리고 모세의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끝이 난다.

신명기의 핵심주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지 말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섬기라는 것이다. 그들이 배부르게 되면 범죄와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질 것임을 경고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을 두었다고 하시면서 이 둘 중에서 그들이 살기 위해서 생명의 길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사명을 마치고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한다. 돌아보면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큰 고통을 당할 때에 태어났다. 그는 바로의 명에 따라 나일강에 버려졌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바로의 공주에게 구원받아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 자랐다. 40년이 지났을 때에 자기 동족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게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40년을 지냈다. 그리고 80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애굽으로 가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바로왕의 고집을 꺾고 동족 이스라엘을 구해냈다.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 입구까지 온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부르시는 때가 되어서 그는 가나안땅이 보이는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배울까?

첫째,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창세기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땅에 태어나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죽음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많이 배웠든지 아니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종 모세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이라도 반드시 죽는다. 아무리 큰일을 하고 위대한 일을 많이 했어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이처럼 유한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가야 한다. 그 죽음 앞에서는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다고 해서, 힘이 있다고 해서 내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육신의 삶은 끝이 나지만 영원한 나라에서의 삶이 새롭게 시작된다. 이 땅에서의 삶은 끝이 나지만 영생의 삶이 새롭게 시작된다. 물론 이 땅에서의 삶에 따라서 그 방향이 달라지고 내용이 달라진다.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죽으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서 상급을 받고 영생을 누린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잘 먹고 잘산다고 해서, 하는 일이 잘되고 부족함이 없이 편안하게 산다고 그가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음이 오면 그가 누리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진노로 떨어진다. 
이처럼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겸손히 살아가자.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자.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

둘째,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만 산다.
그러면 사람은 언제까지 살 수 있고 언제 죽게 되는가? 정한 기준이나 법칙은 없다. 아무 때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한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만 사는 것이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땅을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대로 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땅을 바라본 후에 죽은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정하신 수명이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인가?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고 우리의 생의 길이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원칙과 기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 끝나면 불러 가신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명이 남아 있으면 죽지 않는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불러 가시지 않는다.

사도행전 27장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로마군대에 잡혔을 때 그는 가이사 즉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했다. 그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로마군의 백부장과 함께 로마로 가는 상선을 타고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다. 그래서 며칠 동안 큰 고생을 하고 배가 깨어지고 다 죽게 되었을 때에 바울이 사람들 앞에 서서 죽지 않을 것이니 음식을 먹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씀했다고 했다. 사도행전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아직 그가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살리기 위해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도 살려 주신다는 것이다. 사명이 남아 있으면 죽지 않고 남들도 살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빨리 죽지 않고 오래 살려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더 이상 일을 맡기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더 빨리 불러 가실 수도 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일을 잘하기 때문에 더 오래 살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돌아가자.

셋째,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왜인가? 그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일하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해주셨다. 그의 사명이 끝나는 날까지 그의 육신의 건강을 지켜주신 것이다. 
사명을 주시고 감당할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 부르실 때에 그는 말주변이 없다고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세워주셨다. 그에게 권능을 주셔서 하늘에서 재앙을 내리기도 하고 홍해를 가르기도 하는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 그가 기도하면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주시기도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는, 주의 일을 맡기실 때는 반드시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신다. 필요한 은사와 은혜와 복을 주신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재능이든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부르시고 세우실 때에 주의 신으로 충만케 하셨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부르신 일군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지 않으면 기력이 쇠해서 고생하다가 죽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사명일 수도 있다.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한 일군이 육신으로는 건강하지 못해도 그가 아직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가 병상에 누워서도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 그를 살려 두시고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없고 능력이 없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핑계하지 말라.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핑계로 사명을 거부하지 말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이 맡기실 때 겸손히 순종하라.

넷째,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만 복을 받는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느보산에서 그 땅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사실 모세는 누구보다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한 믿음의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 가지의 결정적인 실수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복은 누리지 못했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원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면서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하면서 자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고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마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 때문에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민수기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큰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힘써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만큼만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만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애쓰는 만큼만 누리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면 약속하신 복을 눈으로 보기만 하고 받아 누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살라.

다섯째,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모세의 죽음은 출애굽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출애굽시대가 끝나고 가나안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출애굽시대의 지도자인 모세는 가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시대의 새 지도자로 섰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이제는 모세가 지도자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다. 

그래서 모세가 죽은 후에도 백성들은 모세의 묘를 찾을 수 없었다. “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죽었지만 그의 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감추셨다.
왜인가? 그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기억되거나 숭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그 모든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은 하나님이 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일군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을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일군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존경과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세가 정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그처럼 많은 일을 하고 능력으로 일한 사람은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그가 특별한 일군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10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거나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출애굽기 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께서 그와 말씀하셨다고 했다. “내가 너를 이름으로도 알고 너는 내 앞에 은총을 입은 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가 요구한 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게 하신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위대한 일군이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그가 스스로 자기 의지와 자기 힘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고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애굽으로 보내셨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큰 권능을 행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존경과 칭송을 받는 것이다. 

그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여호수아도 역시 주인공이 아니라 모세처럼 다음 시대를 위해, 새 시대를 위해 부름 받은 일군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묘를 알지 못하게 감추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옛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기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가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새 시대를 위해 세우신 새로운 지도자를 잘 따르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나간 시대가 아니라 새 시대를 바라보라.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하시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려면 복 받을만한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을 주셔도 내게 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명을 따라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명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셔서 끝까지 그리고 얼마든지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신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힘써야 한다. 나는 죽고 주님만 나타나야 한다. 인생을 마쳤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인정받아야 한다.
모세가 죽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나간 날만 생각하고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새 시대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달려가라. 그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는 믿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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