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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으신 예수님 (마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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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으신 예수님  (마 9:1~8) 

    
많은 사람들에게 질병 중에 가장 무서운 병은 흔히 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암이 무서운 병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암은 고통의 기간이라도 짧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중풍이나 치매는 기간도 오래갈 뿐만 아니라, 그 정황이 너무도 비참 합니다. 제가 처음 사역한 동네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10여년 이상 자리에 누워서 꼼짝을 못하는 환자인데, 거동만 못할 뿐 아니라 24 시간 손이 떨려서 밥 한 숟갈 자기 손으로 먹지 못하는 불쌍한 노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이렇게 비참한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서 고생하는 분들이 정말 한 분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상고해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 가버나움에 이르셨을 때에,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중풍 병이란 본래 전신이 혹은 부분적으로 마비됨으로서,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병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지팡이라도 짚고 나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을 보아서, 그 정도가 아주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침상 채 매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죄악으로 병든 인간의 영적 상태를 상징해주는데, 죄악으로 인한 인간의 영적 질병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중풍병적인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1. 무능하다.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첫 번째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또는 전적 무능(Total Inability)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의 능력은 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은 죄의 힘, 죄의 세력에 끌려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7:19-20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 8:34절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사슬, 죄의 세력에 묶여있는 심령은 하나님께 대하여, 의에 대하여, 생명과 영생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심령은 죄의 속성에 강하고,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지 간에 계속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는 죄에 대하여 강하고, 선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무능한 것입니다.  

2. 마비되어 있다. 

죄악으로 병든 그 영혼은 영생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영적 세계에 대하여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죄악으로 병든 심령은 자신의 실리와 자존심과 세상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비상한 감지력과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합니다. 죄악에 문드러지고 마귀의 화인을 맞아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자기 힘으로 스스로 주님께 나올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침상에 누운 채로 메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저희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행구절인 마가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의 믿음까지를 보신 것입니다. 네 사람이 아무리 데리고 오고 싶었어도 환자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도 갈망을 했기 때문에, 네 사람이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볼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그들은 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가면 꼭 낳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일치 합심하는 신앙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신앙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따라서 천국에 가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신앙보다도 일치 합심하는 신앙은 더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다시 말하면 온 가족의 믿음이 하나가 될 때, 가정은 행복해지고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개개인의 믿음이 좋다고 해도 일치 합심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큰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를 깨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오는 데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인파들 때문에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보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주인의 승낙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불쌍한 형제를 기어코 살리고 보아야 하겠다는 열성과 집념으로 최선을 다하여 마침내 그 병자를 주님 앞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열성과 믿음을 보면서 1)교회도 구령 전도에 이처럼 합심하여 불타는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또한 신자 개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구원받지 못한 식구들이 있다면,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처럼 억지로 끌고라도 주님께 데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없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방해가 되고 있는 수많은 인파에 대하여 말이 없고, 오직 행동만 할뿐이었습니다. 말없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전력투구 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신자들도 그리해야 될 것입니다. 말만 많으면 행동은 없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무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그 뜨거운 열성과 그 정성된 모습을 보시고, 또한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적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놀라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왜요? 그들은 주님께 이러한 말을 듣기 위해 그 병자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죄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1)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아시는 주님, 2)병자의 심리 상태를 보시는 주님, 3)서기관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깜짝 놀라운 방법으로 접근하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방 사람들에게는 질병은 죄의 결과라는 보편적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용서되지 않고는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랍비 아미는 “죄 없이는 죽음이 없고, 범죄 없이는 고통이 없다.”고 했고, 랍비 알렉산더는 “그의 죄가 용서 받기 까지 그의 병은 낫지 않는다.”고 했으며, 랍비 히야벤 압비는 “모든 죄가 용서 받기까지, 병이 나은 병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죄와 고통 사이에는 이렇듯 깨뜨릴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예수님 당시에 있어서 정통적 유대 신앙의 일부였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이 무엇입니까?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적 질병관이 무엇입니까? 인간 세계에 있는 모든 질병과 고통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찾아온 것은 틀림없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욥의 경우를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실제로 그의 과거가 험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병자를 고쳐주실 때에도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38년 병자의 질병을 그의 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1)병자의 죄악도 아시고 2)그래서 두려워하고 불안에 떠는 그의 심리상태를 아시기 때문에 “작은 자야 안심하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현대 의학적인 입장에서도 마음이 육체적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미치고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어떤 의사의 임상 실험이야기입니다. 한 소녀의 빈혈증을 치료하는데 수개월 동안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속에 있는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주일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녀의 피가 매우 신선한 피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의사는 소녀에게 “지난 한 주간 동안 생활에 무슨 변동이 있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녀는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어떤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내 마음에 원한을 품고 있던 악한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 소녀의 정신 상태에 변화가 생김에 따라, 그 소녀의 혈액 상태도 변화가 온 것입니다. 즉 그 소녀의 마음이 치유됨과 동시에, 그녀의 몸도 완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질병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질병의 70-80%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나는 오래 전에 조대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과 한 달 동안 예배를 드리며 그들에게 설교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외과 과장이었던 의사가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습니다. 그 의사의 말에 의하면, 수술을 앞두고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은 매우 불안하고 초조해 하고 공포에 떤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수술 후에 예후도 좋지 않고 회복도 매우 더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믿는 신자의 경우,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안심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수술에 임하는데, 그렇게 되면 수술도 아주 잘되고 예후가 아주 좋아서 회복도 급속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대하실 때 그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직관하셨기 때문에,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3절에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고 한 것입니다. 막 2:7에 보면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라 받았느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서기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말은 옳습니다. 그들의 말대었습니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국경일이 되면 해마다 대통령이 수많은 죄수들에게 사면을 해줍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통령이 죄수들을 사면해 주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죄를 용서받기 전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라는 서기관들의 생각을 즉시 아셨습니다. 중풍병자의 심리 상태를 아시고 사죄를 선언하신 주님은, 단번에 서기관들의 심중을 아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의 눈에 너무도 환하게 열려 있었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생각을 불꽃같은 눈으로 모두 감찰하십니다.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저속하고 육욕적인 생각을 모두 아시고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39:1-3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투철한 신전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서기관들의 무지를 책망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러분에게는 어느 말이 더 쉽겠습니까? 사람들에게는 전자가 더 말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사해지든지 말든지 다른 사람을 향하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백 번 일어나 걸어가라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고, 망신만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두 가지가 다 쉽습니다.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는 서기관들에게 주님께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통념에 의하면 죄가 용서 되지 않고는 병이 나을 수 없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았으니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또 서기관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했는데, 죄가 용서 받았다는 증거로 중풍병자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기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중풍 병을 고쳐주신 우리 예수님은 만병의 대의사이십니다. 현대의학이 그토록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의사들이 못 고치는 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만병의 대의사이신 주님께서는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만병의 대의사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병든 몸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주님께 여러분의 믿음이 인정을 받고, 육신의 질병이 고침 받는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만병의 대의사이신 주님은 무엇보다 영혼의 의사가 되십니다. 병원에 가보면 내과, 외과, 치과, 산부인과 등등 진료 과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과 의사이십니다.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 다시 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의사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면 영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하늘나라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보니 천사가 지금까지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큰 책을 갖다 주었습니다. 

첫 장을 넘겨보니 잔글씨로 가득 쓰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천사는 “당신이 세상에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를 기록한 것입니다.”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 둘째 장을 펼쳐 보았더니 첫 장보다 더 잔글씨로 가득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라는 물음에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말로 지은 죄들입니다.” 라고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셋째 장을 보니까 둘째장보다 더 잔글씨로 더 많은 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또 물었더니,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생각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생각으로 지은 죄가 더 많습니다. 그 다음 장을 들쳐보니 거기에는 아예 글자가 없고 대신 새까만 색뿐이었습니다. 천사가 “이것은 당신의 마음에서 지은 죄입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은 그 심령이 크게 병든 사람이며,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고, 영혼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오는 사람은 모든 죄가 밝히 드러나고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능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연역해서 죄를 범했을 때마다 자백하여 주님께로부터 죄 사함의 은총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 사함의 길은 형통과 축복의 길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습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영혼이 살아납니다.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천국을 얻고 천국의 주인이 됩니다. 모든 복은 죄 사함을 받는데 있습니다. 이 놀라운 복을 꼭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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