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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살전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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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살전 3:11~13)

 
작년 이 맘 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과연 우리의 예배당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금융 위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 막히는 바람에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괜히 저도 고생이고 여러분에게도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서... 그러나 주님이 하시는 일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먼저 우리교회 식구들이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광주로 이전하려는 교회의 결정에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동의했습니다. 

또한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가 목표로 한 금액 이상의 돈이 모아졌습니다. 아울러 부채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광민교회 예배당을 아주 적절한 금액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주일 동안 수리하고 이렇게 벅찬 감격을 안고 새 예배당에서 첫 번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의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지방에 제일 먼저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오래 머물 수 없어서 데살로니가로 건너가 삼 주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도 유대인들의 방해를 받고 쫓겨나 베뢰아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어서 아덴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덴에서는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 중에도 항상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을까,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의 믿음을 살피고 격려와 위로를 통해서 시련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그들을 도와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그 간절한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역자인 디모데를 대신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 후 그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어려움을 잘 견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 때문에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그토록 기쁘게 했습니까? 그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살전 3:8~9)

그들이 주님 안에 굳게 섰다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이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지체들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오늘의 기쁨은 재물입니다. 또 외모가 기쁨입니다. 학력과 지식이 또한 기쁨입니다. 성공한 자식을 자랑하는 것도 큰 기쁨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와 오늘의 상황은 많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 당시에는 믿음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섬기는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유혹이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부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똑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또 아무리 크게 성공할지라도 행복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주님의 섭리가 어떤 것이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우리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또 어리석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과정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능력을 주신다는 믿음과 그런 주님에 대한 자랑하는 마음 속에 참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 매우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주님을 닮는 삶이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고 또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그들의 믿음을 보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감사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판사, 검사가 되어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감사하는 내용을 보면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누고 베풀기 때문에, 또한 섬김을 통해서 얻는 기쁨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보다는 아파트 투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주식 투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승진했기 때문에, 일류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 우리가 흔히 하는 기도가 마치 로또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것처럼 참으로 유치하게 보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참으로 크고 또 놀랍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크기는 우리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은혜 중에서 진짜 좋은 것은 다 제쳐 놓고 극히 제한적이고 또 거품 같은 것들만 감사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값진 은혜를 주님이 주시고 싶어도 정작 우리가 그 은혜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주실 수 없습니다.

주님을 닮은 사람은 굳센 믿음으로 자신도 기뻐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기뻐하며 감사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성령은 바로 그런 사람들 안에 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삶을 가득 채우게 마련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포한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눈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그들이 주님의 재림이 자꾸 지연되는 것 때문에 어느 정도 실망하여 흔들리고 있다는 보고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데살로니가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초대 교회의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주후 오십 년 경까지 초대 교회를 지배하던 것은 곧 다가올 종말과 재림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주님의 부활 승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증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자기들도 주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서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자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서 자신들의 구원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보고를 들은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자들도 그 주님 앞에 나아가 서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장차 그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 것이라고 그가 말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그런 모습으로 빚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거룩하게 빚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결코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굳게 지킬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립니까?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도 또한 주님의 은혜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넘치게 하시는 주님만을 굳게 믿고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거룩한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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