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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철새교인, 텃새교인, 뻐꾸기교인, 뱁새교인 (잠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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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교인, 텃새교인, 뻐꾸기교인, 뱁새교인 (잠 27:8)


본문의 말씀에 『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16장 2절에는 『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오늘 저는 철새교인, 텃새교인, 뻐꾸기교인, 뱁새교인이라는 생소한 제목의 설교를 하기 원합니다. 

Ⅰ. 철새교인이 있습니다. 

"철새들이 봇짐을 챙긴다 / 칠백리(七百里) 긴 흐름의 마지막 이을목 / 스산한 갈밭에서/ 봇짐을 챙긴다 / 마치 그날처럼 / 쫓겨서 시달려서 / 북간도(北間島) 서백리아(西伯利亞)로 / 떠나야 했던 / 어버이들의 그 눈물 같은 / 봇짐을 챙기고 있구나 - 중략 - 
철새들은 / 한마디 울음도 남기지 못한채 / 봇짐만을 챙기는데 / 어찌 저렇게나 저 노을만이 /고운지 까닭이나 알았으면" 라고 한 이 시는 박재호(1927-1985)시인의 '철새들에게'라는 시(詩)입니다. 
철새를 후조(候鳥)라고 합니다. 계절을 따라, 기후를 따라 살 곳을 찾아다니는 새를 철새라고 합니다. 시인 박재호는 자기 일이 끝나면 봇짐을 챙겨서 미련 없이 떠나가는 철새를 노래했습니다. 

김정수씨도 '철새는 간다'라는 제하의 詩를 썼습니다. 
" 언젠가 가야 할 철새 시베리아에서 건너와 / 한가로이 어린 순 붙들고 / 가두어놓은 물에 입질한다 / 친구하자 잠간 넋을 잃고 / 정신없이 달려들다 고개 돌리고 / 등 부비며 같이 놀자던 가을은 가고/ 산중의 고운 소리 그녀를 쫓는다 / 웅덩이에서 몇 달 버티고 말 날개짓 / 겨울 한 때 따사로왔는가 / 돌아설 줄 알면서 다가 온 너의 손짓 / 깊은 포옹 한 번 못하고 / 날아 갈 창공 넓기만 하는가 / 철새, 어느 곳으로 비상할 것인 지 / 그는 가고 / 빈 하늘 시름시름 앓는 구나" 라고 했습니다. 
계절을 따라 기후를 따라 먹잇감을 따라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철새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아니합니다. 
철새인간, 철새교인, 그렇다면 철새교인은 어떤 류의 교인입니까? 

1) 바른 교회관이 정립되지 못한 교인입니다. 
(1)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2)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라고 했습니다. 

(3) 교회를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4)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고 했습니다. 

(5) 교회를 큰 집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6)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고 했습니다. 

(7)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2절에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고 했습니다. 
교회관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창조관, 신관, 구원관, 기독관, 종말관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관은 곧 바른 기독관과 바른 신관, 바른 인간관, 바른 구원관, 바른 종말관과 등식관계를 가집니다. 철새교인은 

2)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않고 진리 밖에서 자유하려고 하는 교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했습니다. 
진리는 예수 자신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자유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고 영원한 해방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과 신앙을 버렸다는 적극적인 해석이 있고 신앙생활을 쉽게 하기 위해 그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소극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견해가 다 맞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데마는 복음운동에 부담이 되는 것을 구속(拘束)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해방을 위해 떠났습니다. 

현대 교인들은 부담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가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교회의 모든 규칙과 행정이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주일성수가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교회의 각종 모임이 시간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각종 연보가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닙니다. 
연보는 구원 받은 것에 대한 보은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축복의 수단입니다. 

3)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 자기주장이 된 교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자기주장입니다. 이와 같은 교인의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설교를 듣고 수용하지 아니합니다. 설교의 첫 번째 요구는 자기주장,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박시키라는 것입니다. 
설교는 인본주의, 합리주의, 육체주의, 쾌락주의, 황금만능주의, 과학지상주의를 근본적으로 파괴시키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철새처럼 떠나 버립니다. 철새교인과 반대되는 텃새교인이 있습니다. 

Ⅱ. 텃새교인이 있습니다. 

"동면(冬眠)으로 떠날 채비 끝내고 / 사르라니 입김 따라 / 환절기 봄 녹는 소리/ 벗어버린 알몸 그대 말없이 가누나/ 한 겹 벗어내어 / 오히려 진실했던 몸 / 하얗게 벗은 채로 / 위선으로 감싸 안는 허울은 싫어. / 
살구 빛 햇살 뒤로하고 / 총총히 떠나는 모습 / 보내는 마음보다 / 아름다움의 설 자리 낮게 비워둠이라 / 하늘 가득 철새의 환영(幻影) / 미련한 마음 가두고 / 우주의 큰 약속인 양 / 하얗게 무리지어 떠나는 / 이 아름다운 계절이여" 라고 한 이 詩는 이경숙의 '텃새의 이별'이라는 시(詩)입니다. 

그러나 텃새는 철새가 될 수 없고 하늘 가득한 철새의 환영이 오히려 텃새에게는 함정입니다. 텃새를 유조(留鳥)라고 합니다. 텃새는 계절 따라, 기후 따라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지방에 내내 사는 참새, 까치, 까마귀, 꿩 같은 종류의 새입니다. 
텃새의 전통은 유조입니다. 텃새의 유산도 텃(기반, 기초, 본래, 곁에)입니다. 텃새는 멀리 멀리 나르는 힘이 주어지지 아니했습니다. 

텃새는 사계절을 즐기는 새입니다. 계절 따라 번식하고 계절 따라 털을 갈고 어떤 텃새는 계절 따라, 상황 따라 털 색깔을 다르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호색(Protective color)이라고 하지만 텃새에게는 운명 같은 것입니다. 
텃새교인은 철새교인과는 다르게 바른 교회관이 정립된 교인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교인입니다. 자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를 터로 삼고 진리를 터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설교를 터로 삼는 교인입니다. 

Ⅲ. 뻐꾸기교인이 있습니다. 

"뻐꾸기가 몰래 탁란(托卵)을 한 새끼 / 오목눈이 새끼들이 줄탁( 啄)도 하기전 / 둥지 밖으로 다 밀어내 버리고 / 오목눈이 둥지보다 더 크게 자란 새끼 / 둥지 위에 턱 올라 앉아 / 큰 입을 딱딱 벌리고 있다 / 
까만 부리 빨간 입 속으로 먹이가 계속 들어간다 / 먹이 물어 나르기에 힘이 부친 오목눈이 어깨위로 / 긴긴 해가 저물고 있다 /

'이소(離巢)하라, 이소하라!'/ 어미는 계속 주변을 맴돌며 뻐꾹거리고 / 부잣집의 잘난 자식들이 / 늙은 부모 동남아 관광시켜 드린다고 / 현지에 가 버리고 온다는 데 / 그렇지 때가 되면 빨리 이소해야지 /
'홀딱 벗고 홀딱 벗고' / 사랑도 번뇌도 미련도 다 버리라고 / 먼 먼 동남쪽 하늘에서 / 아침부터 저녁까지 검은등 뻐꾸기 / 이하생략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텃새입니다. 이 시는 홍해리(洪海里)의 '뻐꾸기'라는 시(詩)입니다. 

뻐꾸기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뻐꾸기가 뻐꾹, 뻐꾹 소리를 내면 진흙 묻은 고무신 벗어 터는 아버지 한숨소리 가득하고 마굿간의 소는 분주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뻐꾸기과에 속한 새는 벙어리 뻐꾸기, 두견이, 메사촌, 검은등 뻐꾸기 등이 있습니다. 이 뻐꾸기과에 속한 새의 특징은 자기가 낳은 알을 부화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새들이 보통 5-6개씩 알을 낳는데 이 알을 어떻게 부화시켜 종족을 번식시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 박사라고 하는 얼마 전에 은퇴한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윤무부 교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뻐꾸기과에 속한 새는 모두가 전혀 다른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1개씩 몰래 낳는 다고 합니다. 이런 줄도 모른 채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던 새는 자기 알과 함께 뻐꾸기 알을 부화시키는데 뻐꾸기가 약 이틀정도 먼저 부화한다고 합니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는 먼저 먹이를 먹게 되는 데 이때 어미 뻐꾸기는 둥지 주위에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새끼들에게 알린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다른 새에 의해서 부화한 뻐꾸기는 자기 어미를 찾아 그 둥지를 미련 없이 떠난다고 합니다. 이것이 뻐꾸기의 번식생태입니다. 

뻐꾸기는 그 둥지의 알보다 월등하게 크고 먼저 부화하지만 그 둥지의 주인은 아닙니다. 먹이를 물어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에게 먹여 주는 새는 뻐꾸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뻐꾸기의 생태를 생각해 볼 때 뻐꾸기의 아침이슬 머금은 해맑은 소리와 아름다운 봄의 전령사의 이미지가 깨어지고 맙니다. 

실컷 이용만하고 결국 자기 종족을 찾아 떠나는 뻐꾸기 교인, 처음부터 뻐꾸기는 둥지와는 상관없었습니다. 자신을 부화시켜준 데 대한 고마움이나 사랑이나 한 둥지에서 같이 부화한 새에 대한 형제의식이나 동지의식도 없습니다. 스스로 능력이 생기면 원래 뻐꾸기의 모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부화하기 전까지는 같은 온기를 느끼면서 동일한 자격과 사랑을 받습니다. 

Ⅳ. 뱁새교인이 있습니다. 

"숲으로 하늘로 / 뻐꾸기는 날아가고 / 뱁새 알은 썩어가고 " 주근옥의 '뱁새 알'이라는 시(詩)입니다. 
뻐꾸기 알을 품어서 부화시켜주는 대표적인 새가 뱁새입니다. 그 외에도 뻐꾸기 알을 부화시켜주는 새는 산솔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딱새, 숲새, 큰유리새, 쇠유리새, 개솔새, 도이솔이 등이 있습니다. 
이 새들은 번식력이 강합니다. 1년에 2-3회 번식합니다. 뻐꾸기의 알은 16일 만에 부화하고 이 새들의 알은 이틀 늦게 18일 만에 부화합니다. 이 새들은 먼저 부화된 뻐꾸기에게 애써 구한 먹이를 먼저 물어다 줍니다. 자기 새끼는 부화하지도 않았는데 몰래 남의 둥지에서 부화한 남의 새끼를 먼저 먹입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자기 새끼와 차별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낳은 알보다 몇 배가 크고, 부화하면 자기 새끼보다 훨씬 더 큰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이나 의심도 없이 어미로써 의무를 다하는 새들입니다. 도이솔이는 몸 길이 13cm밖에 되지 아니합니다. 뱁새를 포함한 그 외 대부분의 종류의 크기도 그만 그만합니다. 
이들은 대개 한 해에 4-6개의 알을 낳아서 13일 동안 품고 새끼 기르는 기간은 15일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철새와 텃새에서 얻는 교훈은 신앙의 본질, 즉 정체성에 대한 교훈입니다. 뻐꾸기와 뱁새에게서 얻는 교훈은 신앙생활 원리에 대한 교훈입니다. 
어떤 철새는 때가 되어도 날아가지 않고 텃새처럼 계속 머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없어진다고 합니다.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죽거나 다른 동물에게 잡혀 먹힌다고 합니다. 결국 철새는 텃새가 될 수 없고 텃새는 철새가 될 수없습니다. 

믿기로 작정된 자는 믿게 되고 믿지 않기로 작정된 자는 믿다가도 떨어져 나갑니다.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부른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철새는 결국 날아갑니다. 
결국 뻐꾸기는 자기의 종족을 찾아 갑니다. 자신이 자라던 둥지를 박차고 떠나가 버립니다. 
옛 말에 '기만즉일(器滿則溢) 인만즉상(人滿則喪)'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그릇이 차면 넘치고 사람이 가득 차면 잃게 된다는 옛말이 우리 삶 속에 굽이굽이 마다 새로워지는 세상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 1절에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 했습니다. 
새의 생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적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병행해서 자연의 생태계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임을 부정해서도 안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입니다. 

여러분은 환경 따라, 자신의 처지 따라 마음대로 교회를 옮기는 철새교인입니까?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지사충성하는 텃새교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도 모른 채 스스로의 능력이 생기면 날아가 버리는 뻐꾸기교인입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순응하는 뱁새교인입니까? 
산솔새 교인, 붉은 머리 오목눈이 교인, 딱새 교인, 숲새 교인, 큰유리새 교인, 개솔새 교인, 도이솔이 교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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