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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독,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다 (창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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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다  (창 1:26~31)


“하나님이 이르시되 …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26∼31절

저는 어린시절 혼자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고독이 얼마나 몸서리 치고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많이 모여서 서로 대화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1. 우리는 고독하도록 지음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고독하게 지어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고독할래야 고독할 수 없는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했듯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님의 교통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 하나님을 모시고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일체로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원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난 다음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그를 깊이 잠재워서 갈빗뼈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리 결혼 시기를 늦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혼자 살거나 계약 결혼이나 동거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주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동거생활을 하면되지 하는 생각도 안됩니다.

결혼제도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배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결혼을 통해 가정에서 자녀를 생산함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결혼은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특별히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세상에서 성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고독하지 않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아담을 꾀어서 가정에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원수가 되니 자녀들 간에도 미움이 생겨나게 되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으면 별문제 없었습니다. 사랑하고 살았으면 고독과 미움이 들어올 리가 없었고 살상과 전쟁도 일어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수 십 년 동안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은 지구촌 곳곳을 풍요롭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구를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 2만 4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굶어죽고 그로인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 인류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어떤 시대보다 더 많은 살육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 제국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을 학살했습니다. 

1990년 르완다와 수단에서는 300만 명이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끔찍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에서는 수 백만의 유대인이 사라졌고, 난징의 대학살이나 미얀마 철도공사장에서 죽어간 전쟁포로들,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유고슬라비아와 방글라데시의 대살육 사건 등 지난 100여 년 동안에 지구상에서는 전쟁과 집단 학살 등으로 약 2억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로 그 악은 우리 인류 속에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느곳에 가도 외로움과 고독함이 있습니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죄와 미움이 있는 세상에 고독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은 내게 필요하고 내게 도움이 되니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내게 손해가 나고 괴로워도 나를 희생하며 그를 도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다줍니다. 그러므로 죄와 미움이 있는 세상에 고독은 항상 있는 법이고, 우리가 애써 사랑하려고 하지만 좋아할수는 있을지언정 사랑하기 힘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을 때 우리 마음속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고독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병중의 하나입니다. 미국 캔사스 지방 신문에 “그냥 듣기만 할 테니까 전화를 걸어서 30분동안만 얘기해 주시면 5달러를 드리겠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린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삶 가운데 이러한 고독을 느끼며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매우 의미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고 더욱 과도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공허를 바쁨으로 덮어 보려고 위장하는 행동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인생은 고독, 그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남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고 테레사 수녀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은 가난 중의 가난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만 고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고독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이해와 동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과 제자들의 버림 속에 십자가에 못박혀 혼자 몸부림쳤습니다. 그 마음에 외로움이 심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당할 때 “아! 목마르다”고 외쳤습니다.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외로움에 목말랐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8절로 29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고독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독을 극복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독함이 있을 동안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위장하고 사는 것입니다. 바쁜 일을 통해서 고독이 없는 것처럼 일이 너무 바빠서 고독할 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고독이 견딜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고 도박도 하게 되고 죄도 짓게 되고 잘못된 길로 걸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3. 고독을 극복하는 길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야 우리 고독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연예인 우울증 전담 전문의사로 유명했던 한 의사가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습니다. 이 의사는 평소“우울증은 치료 된다”는 신념으로 우울증 환자들을 진료해 왔습니다.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우울증에는 의사도 어찌할 수 없구나”며 입을 모아 탄식 했습니다.

젤러는 “고독이란, 사실 하나님께 대한 본향의 향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독이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허무한 감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로움, 허무감, 우울증 등 인간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탁월한 전문의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프랑스 작가인 앙드레 지드도 “고독은 오직 하나님과 더불어 있을 때만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될 때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고독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를 겸손하게 낮춰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합니다. D.L. 무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거느리고 살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노릇을 했느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고독을 극복하고 더욱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이웃을 높여주고 존경해 주고 섬겨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용서와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할 때 심방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 심방, 교도소 심방을 하며 제가 느낀 것은 사람들이 병이 깊어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하게 될 때, 절망적이 되었을 때, 절대적인 고독에 처한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겠다 싶어 우리 교회안에 순복음호스피스를 만들었습니다.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도 그와 똑같습니다. 집을 고쳐주고 쌀을 갖다주고 학비를 대주고 병원비를 대주는 정도밖에 안되지만 그 선한 행위를 통해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굿피플을 통해서 제3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도 그 고독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로 14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합니다. 용서와 사랑, 이것은 우리가 고독에서 내 자신도 면하고 다른 사람도 이끌어내는 위대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홀로 가는 인생을 만들지 말고 함께하는 인생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게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같이 못난 이하고 함께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부호 카우센은 1만 5000개의 콘도와 수십 개의 빌딩으로 그 재산이 4억 4000만 달러(약 5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재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낙심하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1970년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가수 엔디 깁슨은 첫 음반을 냈을 때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얻었고, 22세의 어린 나이에 그레미 상을 2번이나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위의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고독과 불안을 이기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10년 후인 32세 때 빚을 태산같이 진 채 쓸쓸하게 죽고 만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항상 무엇인가 종이에 적어서 일어설 때나 앉을 때나 시간만 있으면 그것을 읽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메모지에는 “하나님의 빛이 나를 둘러싼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감싼다. 하나님의 힘이 나를 둘러싼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신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삶의 겉으로 드러나는 풍요롭고 화려한 모습은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쑥불쑥 찾아오는 고독과 두려움으로 늘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 때 고독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따라 말씀 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롭지 않습니다.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행복합니다. 기뻐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고독의 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를 항상 치료하고 극복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릭 워렌은 그의 책 ‘하나님의 인생레슨’에서 우울과 고독을 치료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료 방법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치료 방법은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육신의 원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은 마음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만하지 말고 먹고 입고 마시는 것부터 도와주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요구부터 채워줘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되고 함께 해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좌절감을 하나님께 털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두려움과 적개심, 분노와 외로움, 걱정과 두렴과 적개심, 분노와 외로움, 근심, 고독감으로 상처 받았을 때, 기도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털어놓으면 큰 위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혼자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소리를 내고 크게 외쳐서 하나님께 다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털어 놓으면 마음에 큰 위로가 다가오고 고독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새롭게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슬럼프를 이기는 데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안될 때라도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 찾고 하나님과 같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얻을 때 우리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시게 하되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봉사하고 헌신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면은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고독의 병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고독 속에 끝나기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와 충성과 온유와 같은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마음에 평안함과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안되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몸 찢기고 피 흘려 한없는 고통을 당하고 인내하고 모든 것을 예수님의 피로써 청산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집이 화려하다고 주님이 와서 같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집이 판잣집이라고 주님이 안오시는 것도 아닙니다. 화려하든 판잣집이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구원하시고 우리의 심령에 같이 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고 기쁨이 되어주고 능력이 되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할 때마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주님께 늘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누구든지 이땅에 태어났으면 다 고독하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 고독과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부음바 될 때 참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 혼자만 외롭고 고독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차이는 있어도 다 고독하고 외로운데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예수 안에서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고 그 위로와 평안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화평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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