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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길 (요 5: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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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길 (요 5:24~29)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경우를 보더라도 결실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먼저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며, 병충해를 방지합니다. 그 후에 얻어지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새 생명을 얻는 데에도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간결하게 나타낸 것이 본문 24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망과 생명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 모두가 숨을 거둘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귀한 말씀입니다. 사망에 처한 심령이 생명으로 옮겨지는 과정은 무엇입니까? 

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내 말을 듣고....”하셨습니다. 내 말이 란 누구의 말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위에 오신 분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므로 우리를 구원하고자 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귀하고 고마우신 분이 이 땅위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유일무이 (唯一無二)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한 길이 아닙니다.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가장 좋은 길도 아닙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공로로 인해 죄인인 우리가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새 힘을 얻어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복음(福音)이라고 합니다. 가장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나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복된 소식을 들으려면 들려주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즉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4절에“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전파하여 듣게 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먼저 믿은 우리들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에게는 내가 믿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장 19절에“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4장 1절~2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 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질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를 습관화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증거에 대하여 매우 단호하게 그리고 다급하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음증거에 대해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도에 대해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한 사람은 전체 신자가운데 5%정도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절대 다수인 95%는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는 것으로 조사 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우리가 외형적으로 볼 때 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자동차가 앞으로 가도록 하는 것은 구르는 타이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엔진의 힘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때 저절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조종사가 조종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연만물과 연류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역사학자는 역사를 설명하기를, 영어로 역사를 History라 하는데“Hi Story”즉“그분의 이야기, 곧 하나님 그분의‘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설명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한 달 만 지나면 2010년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기준하여 2010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이후 2010년인 것입니다. 

인간역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과 자유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인 영혼이 구원받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진리 안에서의 누리는 참된 자유의 삶입니다. 이처럼 소중한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에“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귀에 들려진 한 순간의 말씀이 사람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의 모임은 예배를 가리킵니다. 모여 예배하는 일을 개을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드리는 예배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심령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이에 감사하며 감격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령한 예배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한 마음과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되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20:12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내가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하셨습니다. 성도의 표징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일을 지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만 일방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감사를 올려드리고, 정성된 예물도 올려드리고, 찬송을 올려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성령의 생수를 내려주시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도,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창세기 12:1~9).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내 종 다윗, 내 종 다윗”이라고 하시는 다윗의 이름이 성경에 800번 이상 나옵니다. 다윗은 안식일은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씩 꼭꼭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게을리 했던 롯은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에서는 축복의 반열에서 멀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사울 왕은 패망했습니다. 
반면 예배를 잘 드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신앙생활의 승리자이며,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에“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습니다. 구원받는 과정의 처음단계는 말씀을 듣는 것이고, 다음 단계는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하셨습니다. 

듣는다고 하여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씨앗은 농부가 뿌리지만 싹이 나게 하는 것은 농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듯, 복음은 사람이 전하므로 듣게 지만 믿어지게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三. 듣고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영생을 얻었고”라는 말씀과“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 진행형입니다. 그리고“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은 현재 완료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구원은 현재 벌써 영원한 생명을 확보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어 천국에 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실하게 확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는 때에는 참된 기쁨도, 소망도 담대한 믿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확신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생명은 어떠한 생명입니까? 영원한 생명 입니다. 본문 28절~29절에 밝히시기를“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생명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있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복음은 먼저 믿는 우리들로 인해 전해질 때에 듣게 되며, 들을 때에 성령님의 감화로 믿음이 생겨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13절~14절에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꾸 들어야 믿음이 무럭무럭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보호와 능력을 힘입을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자녀의 권세로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0장 19절에“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하셨습니다. 나를 해하려는 원수를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5절에는“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파 많은 세상을 이기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지에서 실로암 안과 병원장이 되어 남자 헬렌 켈러로 불리는 김선태 목사(68, 실로암 안과병원장)가 있습니다. 그는 2007년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선태 목사는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입니다. ‘남자 헬렌 켈러’ 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절망에 절망을 헤쳐 온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숨 쉬는 드라마’로 헬렌 켈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뚝섬에서 놀고 있었는데 거기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함께 놀던 8명 중 7명이 즉사했고, 김 목사만 살아남았으나 눈에 파편을 맞아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였습니다. 얼마 후 폭격으로 부모님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친척집을 돌다가 구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친척집을 나와서 거지가 되었습니다. 엄동설한에 밖에서 잠을 자다 한쪽 다리가 동상에 걸려 썩기도 했고, 앞을 못 보니 상한 음식을 얻어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번은 옻나무를 가득 쌓은 남의 집 창고에서 잠을 자다가 온몸에 옻이 올라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평생 그의 은인이 된 한 할머니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 간호를 해줬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성직자의 삶을 꿈꾸게 된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 할머니가 말하기를 “나는 돈은 없지만 일평생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대신 너는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아원에서 살면서도 그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박사 학위 3개를 따는 꿈을 꾸면서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박사 학위가 3개였던 헬렌 켈러처럼 가난하고 앞 못 보는 이들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5.16 군사혁명이 나고 군사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편된 문교 정책에 의해 맹인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가 대학에 가려면 국가고시를 보아야 했는데, 당시에는 앞 못 보는 사람은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문교부를 서른 두 번이나 찾아가 매달렸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는 공부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심을 했습니다. 무작정 문교부 장학과로 쳐들어가서 막대기를 휘두르며 항의를 하는데, 그때 마침 신문기자들이 와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기자들이 앞 못 보는 그를 장관실로 데려갔습니다. 결국 문교부 장관은 그에게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특전을 주었고, 그는 시험을 거쳐 숭실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전공했고, 미국 맥코믹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훗날 명예 철학박사 학위와 명예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헬렌 켈러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점자 성경과 점자 찬송가를 소개했습니다. 또 앞을 못 보는 젊은이 1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1986년에는 재계의 지원을 받아 서울 등촌동에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개안수술을 받은 이가 2만 7000명이 넘었습니다. 또 실명 위기에 처한 35만 명에게 무료 안과 진료를 실시했습니다. 최근에는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안과 시설을 갖추고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김선태 목사의 가슴에 간직한 성경 구절은 고린도전서 15:10의 말씀“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권세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권세를 믿었던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기록하기“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들으므로 믿음이 생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우리들은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생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험한 세상을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이 힘은 믿음과 기도가 있는 곳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기도할 힘이 예배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믿음과 기도와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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