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다윗과 므비보셋의 감사 (삼하 9:3~8)

  • 잡초 잡초
  • 953
  • 0

첨부 1


다윗과 므비보셋의 감사 (삼하 9:3~8)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여러분에게 성경의 한 인물을 소개하려한다. 므비보셋이란 사람이다. 이사람은 사울왕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이기에 왕손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뻔한 사람인데 그가 5살되던 해, 이웃의 블레셋의 침략을 받았는데 그 전쟁에서 아버지, 삼촌들이 다 죽임을 당한다. 전쟁난리 중 다급한 나머지 그 유모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하다가 그만 떨어뜨려서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된다. 그런 불구의 몸으로 산속에서 2,30년 숨어지낸다.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사울의 후손인 므비보셋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이름마저 바꾼다. 그러니 므비보셋의 신세를 생각해보라. 부모없이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도 비극적인 일인데, 언제 밀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될지 알지못하는 숨막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문 9:8에 그의 내면의 상처가 그대로 그러나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다윗이 수소문해서 그를 데리고오니까 므비보셋은 다윗 앞에서 무어라 하는가. ‘죽은 개같은 나’
  
스스로를 향해 죽은 개같은 존재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 무슨 삶의 희망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절망가운데 살아가는 므비보셋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3절을 보라.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하루하루를 절망가운데 살아가던 므비보셋을 다윗왕이 거두어준 것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준 커다란 은총 2가지가 있는데.. 
1) 물질적인 보상이다. 7절 상반절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2) 명예회복이다. 7절 하반절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왕궁에서 다른 왕자들과 더불어 왕의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하는 것은 명예회복이다. 죽은 개같은 존재로 여기던 자신을 수소문해서 다윗이 찾아내어 자신을 영접하여 왕자대접을 받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 므비보셋이 받았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죄악 가운데 태어난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거두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이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람을 대할 때 가져야 할 다윗의 두가지 시선이 있다.

1. 다윗에게는 요나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불러왔다. 그런데 므비보셋을 볼 때 다윗에게는 두가지 모습이 담겨있었다. 
하나는, 긍정적인 모습이고 하나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부정적인 모습은 할아버지 사울의 모습이다. 므비보셋이 할아버지 사울왕의 모습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쏟게끔 만드는 사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사람..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했던 사울의 모습이 므비보셋에게서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 아버지 요나단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힘들었을 때 자신을 도와주었던 은인 요나단..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 속에 사울과 같이 죽이고싶은 모습만 있는 사람은 없고, 요나단처럼 은인과 같이 여겨지는 사람도 없다. 이 둘이 섞여있는 것이 대인관계이다. 
  
남편을 보라. 사랑스럽고 고맙기만 한가? 남편의 모습에 요나단과 같은 모습만 있는가. 그렇지않다. 
남편에게서 사울왕과 같은 원수처럼 여겨지는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고마운 요나단과 같은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아내가 나를 볼 때, 내 인생을 그래도 보호해주는 고마운 남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게 이렇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 세상에 없다.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우리는 말하는데, 시부모와의 갈등도 같다.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것들을 적어내라고 하면 책을 한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두가지 시각을 갖게되는 것이 우리의 대인관계이다. 
이럴 때 우린 주로 어느 쪽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게 되는가. 우리는 9가지 고마운 요나단의 모습이 있고, 1가지 사울왕의 안좋은 모습이 있는데, 우린 9가지 고마운 모습은 잊어버리고 1가지 고통을 주었던 사울의 기억을 담고 살 때가 많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므로 우린 다윗에게서 무얼 배워야하는가.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사울왕의 모습은 지워버리고, 너무나 고마웠던 요나단의 모습만 떠올렸다는 것이다. 
1절에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내가 사울로 말미암아 일가를 멸족시키리라...가 아니다. 
  
7절에서도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부분을 표준새번역에서는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겁낼 것 없다.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서 네게 은총을 베풀어 주고 싶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 임금께서 가지고 계시던 토지를 너에게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 
  
므비보셋을 볼 때 사울도 생각나고 요나단도 생각나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난 오늘 감사절에 다윗과 같은 마음이 여러분에게 부어지기를 바란다. 좋은 면도 기억나고 나쁜 면도 기억날 때 요나단의 기억만 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시각도 똑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두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행위이다. 세상에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이 어디있는가. 이렇게 배은망덕한 인간이 어디있는가. 나 자신을 보아도 난 너무 하나님 앞에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이런 나같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떠올리시는 마음이다. 바로 우리를 늘 불쌍히 여기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꾸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더러운 행위를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의로운 사람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우리의 더럽고 못된 행위를 보시지 아니하고 십자가로 구원하신 긍휼이 여기심으로 바라봐 주시는 것이다. 이런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도 남을 바라볼 때 다윗처럼 은혜롭게 사람을 바라볼 줄 아는 교정이 있기를 바란다. 
  
  
또 하나, 다윗에게 감동받는 두 번째는,

2. 하나님 은혜의 마음이 그에게 있었다. 

3절을 가만히 보라.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1절에서는 내가 요나단을 생각하면서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인간적인 은총이 아니라 3절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무슨 뜻인가. 
  
그동안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이 너무 고마워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총을 나도 므비보셋에게 베풀겠다는 것이다. 
  
난 이 장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습이 보일 때 그의 목을 치지아니하고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은혜를 베푼 이유가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받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도 용서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 은혜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니까 므비보셋에게 긍휼함이 생겨나더라는 것.
  
여러분, 이 교회에서 기도많이 하고 은혜많이 받은 분들은 용서의 대가들이 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세상에... 속좁기는 교회에서 최고이다. 허구헌날 성령체험은 제일 많이 한 것 같은데 대인관계에서 비열한 짓은 제일 많이 한다. 기도많이 하고 은혜를 누구보다 더 많이 체험했다면 대인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하지않는가. 
  
바울을 보라.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이 야만인에게 무슨 빚을 졌는가. 없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에는 다메섹도상에서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사랑으로 거두어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그 마음 가운데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빚진 자의 심정이 그에게 있더라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빚진 자의 심정이 있으시길 축원한다. 
이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왜 저 인간을 용서해야 하는데...’ 이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왜 저 인간을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용서하는 자리에 까지 가려고 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런 다윗과 바울과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대인관계가 훨씬 좋아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지 세월이 꽤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다윗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렇게 믿었던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까지도 다윗에게 등을 돌린다. 그래서 다윗이 왕궁을 떠나 피신을 하는데...
  
그럴 때 당연히 므비보셋도 ‘나도 왕의 운명과 함께 해야지’ 하면서 다윗과 함께 왕궁을 떠날 준비를 하는데 좋지않은 일이 일어났다. 
  
시바라는 종이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서 만들어 다윗에게 말을 함으로 다윗을 오해하게 만든다. 

삼하 16:3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다윗에게 이런 말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어디있는가. 
그렇게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는데.. 자기가 지금 아들에게 쿠데타를 당해서 어려움을 겪고있는데.. 
므비보셋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다시 정권을 되찾을 날이 임했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불러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두루두루 살펴보겠지만 지금은 워낙 다윗이 다급한 상황이니까 그 자리에서 졸속으로 일처리를 한다. 
  
4절에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무슨 말인가. 그 못된 놈의 재산을 다 몰수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므비보셋이 왕이 피난 갈 때 따라가지도 못했다. 
  
므비보셋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황당한 일이 없고 이렇게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굉장한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므비보셋의 태도를 보라. 나중에 쿠데타를 제압하고 다윗이 왕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 므비보셋이 무어라 말하는가. 
  
삼하 19: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쉽게 말해서, 내 생명의 은인 다윗왕이 저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찌 나만 편히 발뻗고 잠잘 수 있느냐는 것.수염도 안 깍고 옷도 안 갈아입고...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다음이다. 
므비보셋이 그런 태도를 보이니까 다윗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시바의 말을 들으면 므비보셋은 아주 배은망덕한 놈인데, 당사자의 말과 태도를 보면 그게 아니고..
  
그래서 아주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이 어정쩡하게 판결을 내린다. 
29절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그랬더니 30절에서 놀라운 말을 한다.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자신에게 섭섭하게 대했던 다윗을 향해 신기하리 만치 상처가 없다. 왕만 무사히 돌아왔으면 이런 물질은 하나도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은 아무런 재산도 없었더랬지 않느냐.. 는 것. 개같은 자신을 거두어 준 고마운 왕이신데.. 이까짓 밭이 무슨 대단한 것이냐는 것.
  
나는 여기서 므비보셋과 다윗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19장에서의 므비보셋을 가만히 살펴보라.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신을 두갈래 시각으로 보았던 것 처럼, 므비보셋도 같은 상황 가운데 있다. 
  
죽은 개같은 자신을 구해준 다윗의 고마운 모습과 지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해서 자신의 재산을 몰수한 상처 준 다윗과... 이 두가지 일들이 므비보셋에게 있을 때 그는 죽은 개같은 자신을 거두워 주었던 고마운 다윗의 모습을 기억하더라는 것. 
은혜는 이렇게 흘러간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은혜를 입으니까 그 아들 절둑발이 므비보셋에게 받았던 은혜를 베풀고, 므비보셋이 다윗왕에게 은혜를 입으니까 므비보셋은 또 그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고... 은혜의 선순환이다. 
  
내 아내에게 어느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보,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따지지 않아줘서 고맙소’
그런데 어느날 내가 아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따지면서 추궁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
‘따지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나한테는 왜 이러느냐’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자리를 도망쳤다. 
  
여러분, 인간 사이에 갈등은 왜 자꾸 일어나는가. 배은망덕의 악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어떤 일 때문에 며느리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면 상처를 그대로 며느리에게 쏟는다.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에 앙심을 품는다. 그러면 어느 기회에 받았던 앙심을 되갚는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상처를 받고 그것을 또 되갚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오늘 예배 가운데 다 끊어지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길 바란다. 
  
난 지난 세월동안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참 감사했다. 
이따금 어느 성도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가 된 적은 있지만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 자연인으로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오늘 감사절을 맞아 여러분에게 3가지 권면을 드리고싶다.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우리가 아직 연약하여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밑바탕에 있을 때 우리에게 두가지 시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때 다윗의 마음으로 대하게된다.
  
2.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난 여러분에게 참 감사한다. 이렇게 불편하고 좁은 교회에서 부족한 목사를 섬겨주고.. 귀한 권사님과 순장님들.. 저 분들이 있기에 내가 목회한다.
여러분도 주변에 고마운 분들을 자꾸 발굴하고 고마움을 표하라.
  
3. 나의 므비보셋은 누구인지 돌아보라.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므비보셋과 같이 내가 은혜를 베풀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보길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