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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요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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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잘됨 같이 (요삼 1:2)
 

오늘 본문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좀 더 정확히 언급하면,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한 축복입니다. 사도는 가이오를 일컬어 “사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가이오가 사도의 인정을 받은 신실한 성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오에 대하여 상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 사람 나옵니다.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행 19:29), 고린도 사람 가이오(고전 1:14), 그리고 더베 사람 가이오(행 20:4)가 그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 명의 가이오 중에서 누가 요한삼서의 수신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경은 성도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본문을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하시는 권면으로 받아야 합니다.

사도는 가이오에게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지 않고,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여기서 “같이”는 “바로 그와 같이”라는 뜻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된 것과 똑같은 원리로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혼의 잘 됨과는 상관없이 번영과 건강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전혀 무관심한데도 큰 성공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명예를 누립니다. 몸도 건강해서 힘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런 형통함과 건강은 성경이 말씀하는 축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교만하게 되고 세상 번영에 도취되어서 구원의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설교를 경청하는 성도님들이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라는 말을 들었던 가이오와 같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된 것은 어떤 상태를 가리킬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으로 거듭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5)…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천국도 없고, 심판도 없다면, 이 땅에서 부요하게, 향락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도 않는 천국을 바라보면서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의 창조주이며 우리의 구속주이며,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과 최후의 심판을 믿습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이 모든 것을 믿으려면 그 영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육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일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늘에 속한 일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2장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공부를 많이 해서 박학한 사람이라도, 심지어 세계적인 석학이라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캄캄절벽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생동안 오직 이 땅의 일을 위해서만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실상을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면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영혼이 잘되지 못한 사람의 형통과 건강은 무익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 되려면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질상 그리스도인은 영혼이 잘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의 현 상태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하나님과 불화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세상일을 더 좋아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영혼이 매우 걱정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 상태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항상 열심을 품고 부지런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고 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의 몸인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기를 즐겨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므로 마음이 기쁘고 평안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자족할 줄 압니다. 형제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한 마음으로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 주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이와 같은 간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 성도들은 물질적인 번영을 누릴 때든지 또는 역경의 때든지, 건강할 때나 병약할 때든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은혜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상 영혼이 잘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세상 유혹에 빠져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복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늘 영적으로 깨어 신앙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은혜로운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삶에 시련이 다가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시련이 심할수록 하나님께서 넘치는 위로를 부어주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30개 회원국 평균의 1.6배로서 3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 자살률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스무 살 난 수퍼 모델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자살로서 생을 마쳐야 했다면, 그런 화려한 성공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그 여성의 죽음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면의 공허감이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처럼 극단적인 일을 저질렀을까요? 만약에 그 여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었더라면 톱 모델로서 겪는 강박감과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 곧 영혼이 잘된 사람만이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복됨을 이같이 선언했습니다.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보장이 있으므로 영혼이 잘 된 그리스더인은 모든 사람이 절망이라고 외치는 때에라도 하나님을 앙망함으로써 희망찬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싫어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우리 사회에서 떳떳하게 대우 받으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릅니다. 집집마다 자녀 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휠 정도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회에서 명예를 얻고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아무개가 사법고시를 패스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성공을 자랑하는 것밖에는 다른 의미가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왜곡된 성공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교육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습니다. 인성 교육이니 전인교육이니 하는 말은 공허한 구호로 남아 있을 뿐이고, 오로지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데 교육의 모든 역량을 다 모우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 풍토 속에서 남보다 공부를 잘해서 성공한들 그리 명예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성공의 성격이 너무나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해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서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경제위주의 시대가 되어서 물질적인 번영이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돈벌이가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탈세도 하고, 뇌물도 주고받고,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고, 마약이나 인신매매나 도박과 같은 불건전한 사업도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수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이 잘 된 것과 같은 원리로 범사가 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별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교회 밖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아니라 사업을 하는 현장에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정치가도 될 수 있고, 사업가도 될 수 있고, 예술가나 학자나 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건 최선을 다해 노력함으로써 인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돈도 벌 수 있다면 많이 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 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의 영광을 위해 행합니다. 무슨 일을 이루면 자기가 영광을 차지합니다. 무슨 인간 승리를 외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이룬 공로와 그로 인한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것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룰지라도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나온 영걸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규합하여 거대한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기를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 일을 시작한 이유는 그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편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가지 목적이 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본주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니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어 성 쌓기를 그치고 온 지면에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기 위해 시도했던 바벨탑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고, 하나님의 뜻은 실현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세상 사람들의 성공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게 될는지를 보여줍니다. 

한편, 요셉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이 두 번이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처럼 신앙이 좋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열일곱 살의 꿈 많은 소년이 노예로 팔려 애굽에 끌려가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노예가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쾌활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자기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형통케 하셔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셔서 7년 기근으로부터 천하만민의 목숨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1편에 이르기를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즐겨 행함으로써 범사에 잘 되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이 잘 됨 같이 강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건강은 예로부터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건강한 삶이 곧 웰빙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금하고, 소식하고,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잘 된 것과 같은 원리로 강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걷는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침 마라라고 하는 오아시스에 이르렀더니 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쓴물과 같은 우리 인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치료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 영혼이 잘 될 뿐 아니라 우리 육신도 강건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 됨 같이 강건하라는 말씀은, 영혼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치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같이 예언했습니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죄악 뿐 아니라 질병에서도 자유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신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도 이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사복음서를 읽어 보면, 주님께서 수많은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우리 대신 질고를 담당하신 주님을 의지하여 아픈 데 손을 얹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대속의 은총을 의지하여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함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육신의 질병을 위해서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대로, 주님께서 몸소 가난을 경험하심으로 우리가 부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는 엄연한 순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고 나서 나머지 두 가지 복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경청하신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되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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