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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을 향하여 (신 1: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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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향하여 (신 1:19~33)
  

불교의 역사관은 윤회론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돌고 돌고 또 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관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종말로 끝나는 것입니다. 
역사는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지만 이 역사의 방향은 하나님이 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과 대결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는 여정은 
마치 인류의 역사와 같으며, 또한 우리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이 여정 속에는 많은 환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시험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홍해바다가 가로 막히기도 했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야 하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으로 인해 고난을 당해야 했고, 
무서운 추위와 싸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현실은 결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은 아니었습니다. 
당장에 죽음의 고비가 다가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합니다.
마실 물이 없어 울부짖는 자식들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하였고, 
자기들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때로는 역사의 방향을 바꿔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과거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승리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일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이었으며,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더군다나 애굽 군대를 물속에 수장 지내신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추격할 수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마라의 쓴 물이 있었지만 그 물을 달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우리도 과거로부터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결코 멈추어 서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노량진에서 대치동으로, 대치동에서 다시 수지로 왔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역사의 방향이요 흐름입니다. 
어느 누구 혼자서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영적인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을 떠나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올라가서 차지하라고 하십니다. 
21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그러자 백성들은 먼저 정탐을 하고 오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지,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지 알고자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말을 좋게 여겨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을 택합니다.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합니다.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합니다. 
그 땅이 좋기는 한데, 올라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그리고 원망합니다. 
이유는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온 것입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없다고 올라갈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앞길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고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앞길은 내 힘으로 나가야 되고, 나는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관심 있게 읽어볼 백성들의 해석이 있습니다. 
27절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셨다니.
그냥 애굽에서 멸망당하게 내버려 두시지, 
왜 이곳 멀리 아모리 족속의 땅까지 인도하셔서 
그들에게 넘겨 멸하시려고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왜 애굽의 장자를 치셨으며,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물을 내시며, 르비딤에서 아말렉 군사들을 치셨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소문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자기 방식대로, 자기 느낌대로 그렇게 함부로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다루고 계십니까?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타이르시고, 설득하고 계십니다. 
화를 내실만도 한데 그렇게 안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하나님은 참 좋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앞서 가셔서 그들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신 것처럼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또한 그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으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안으시고 인도하셨다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들로 삼으시고 그렇게 안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이요, 더디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셔서 그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며 우리를 안고 목적지까지 이르게 해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가나안이라는 비전을 향해서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 땅을 향해 가는 과정에는 홍해바다도 가로막혀 있을 수 있고, 
메마른 광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방향은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목적지인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겪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곳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안고 가시며, 나가서 싸우라 하시며, 친히 싸워 주십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하루만 가면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길로,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길은 더 고달프고 힘든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이끄시는 그 길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름길로 가다가 군사들을 만나면 
애굽으로 되돌아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가나안에 이를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은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갈 길을 지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는 길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합력하여 함께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부터 특별비전집회를 엽니다. 
이 모임부터 모두가 함께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시간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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