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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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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젠가 놀이가 있습니다.  차례대로 밑에서 하나씩 빼 위에 쌓아가는 놀인데, 빼 거나 쌓을 때 쓰러뜨리는 이가 지는 놀이입니다.  젠가 놀이에는 무엇보다 균형이 제일 중요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균형이 깨져 무너질까 긴장감이 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실 때, 모든 균형이 유지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물리법칙에도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흐름에 관계된 법칙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10도의 찬물에 30도의 더운물 냄비를 담그면 30도의 열이 찬물로 빠져나가 균형이 맞아집니다. 절대로 반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균형을 맞추려는 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도 좌뇌 우뇌, 오른 팔 왼 팔 등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원리가 있다면 믿음의 실천이 있습니다.  제자는 원리와 실천이 균형을 이룹니다.  그래서 바울이 쓴 신약의 편지들은 한결같이 전반부에서는 믿음의 원리를 말씀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믿음의 원리대로 사는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로마서의 후반부입니다.  12장 1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은 이들은 ‘그러므로’이렇게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롬 12:1-2, 개정)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몸으로 사는 제자의 삶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요,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함과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곧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1.제자의 새생활은 낮아져 더불어 사는 모습입니다(15-16절).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입니다.  다큐영화 [워낭소리]에서 소가 자기를 판다는 소리에 눈물을 보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물에도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단순하고 솔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다 못해 난해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아프지 않던 배가 아픕니다. 참 희안한 일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조금 쉽습니다.  웃는 자들과 함께 웃기는 더 힘듭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속은 배가 아픕니다.  그리스도인의 새생활은 주님을 닮아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입장을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가수 김건모가 [핑계]노래에서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라고 열창을 했습니다.  ‘이해하다’는 영어로 ‘under+stand’라고 합니다.  밑에서 보는 것, 눈높이를 낮추어서 같이 보는 것,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해 못할 것 별로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입장 바꿔 생각하면 공부하는 것 힘들고 잘 하고 싶어도 맘대로 안 된다는 것 다 압니다.  뭘 안 그런척하고 있으세요. 예전에 부모님에게 한 대도 안 맞은 것처럼!   아이들은 부모가 돼 본적이 없으니, 그 입장되어 생각해보기 조금 힘듭니다.  그래도 동생이 속 터지게 하는 것 생각하면 이해는 갈 겁니다.  

복음은 입장 바꿔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히 2:17-18을 보면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입장 바꿔 사람이 되셨으니, 유혹도 받고 시험도 받고 고난도 당해 보셨으니,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예수님 닮기를 원하는 우리들은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 마음을 같이는 제자들입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쯔빙글리가 어느날 스위스의 산 위를 걷다 좁은 산길에서 두 마리의 염소를 보았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길이라 두 마리가 다 오르고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서로 팽팽히 맞선다 싶은 순간, 염소들에게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라가려던 염소가 먼저 길가에 누웠고 내려오려던 염소가 그 위를 밟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누웠던 염소가 일어나 올라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보면서 종교개혁자는 깨달았습니다. 올라가려는 자는 먼저 낮아지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려나간다는 것을.  십자가 복음을 잘 묵상해 보십시오.  복음은 낮아지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빌 2:6-8, 개정)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낮아지면 형통합니다. 먼저 엎드리면 다 풀려집니다.  복음은 낮아져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2. 제자의 새생활은 선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17절. 21절)

살다보면 별의 별 사람 다 만납니다.  그렇게 별난 사람들이 얼키고 설켜 사니 엉뚱한 일도 생겨 원수같이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성경(19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고,  서로 원수를 갚다가 보면 서로 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 5:15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25 전쟁은 공산정권인 북한이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하면서 남한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이 함락되자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북에서 온 이들을 찾아 죽이러 다녔습니다. 해방되자마자 공산정권에서 피난 왔던 할아버지는 방바닥 온돌 구들 밑에 숨어 지냈고  배설문제 때문에 하루에 주먹밥 하나로 연명했습니다. 당시에 벽은 볏짚으로 만들어 몰래 창고로 만들어 쓰고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바로 거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죽창 든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이 닥치고는 남자들을 색출하는데, 죽창으로 볏짚 벽을 차례로 찌르면서 오는데 다음 찌를 차례가 벽 창고에 숨어 있는 아버지를 찌를 차례였습니다.  바로 그 때, 마당에서 “동무, 다음 집으로 갑세다. 여기는 없는 것 갔소!”  그래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이 수복되었습니다. 평상이 이웃이던 이들이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이제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원수를 갚으러 다녔습니다.  서로 물고 물었던 것이  6.25 동족상잔 전쟁입니다.  원수를 갚느라, 사상전이라고 하지요, 군인보다 민간인 더 많이 죽었습니다.  국군과 연합군은  전사:95,800명 부상: 294,280명  실종 및 포로: 89,262명 등 계 479,342명.  민간인은 사망(학살당한 인원 포함): 370,599명  부상: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 등  계 990,968명입니다.  전쟁 미망인 20만,  전쟁 고아 10만입니다. 

사람이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원수 갚는다고 동분서주 하지만 살림 나아지셨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롬 12:18, 개정)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저는 이 구절이 약간 어색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에는 왼지 수동적인 느낌입니다. 화목할 수 없다면 그냥 모른척하고 지내도 된다는 느낌말입니다.  

원문을 더 잘 번역한 쉬운 번역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롬 12:18, 쉬운)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확 다르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아니라,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같은 사람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전혀 생각이 없더라도 내 쪽에서 조금이라도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20절,  원수에게 먹을 것이 없고, 나는 있거든 샘통이다 고소하다 하지 말고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원수가 마실 것이 없고, 나는 있어 원수가 고생하고 있거든 더 고생해라 하지 말고 마실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   그 베푸는 것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얼굴이 후끈거립니다.  낮 뜨거워서 견딜 수 없어 그 다음에 자기의 행동을 바로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마 28:19-20에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을 누립니다.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빰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 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이 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 준 후에는 돌에다가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 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오늘은 중고 친구초청 주일입니다.  그리고 중고등부만 아니라, 여기에 함께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친구입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깁시다. 그리고 악이라도 선으로 갚읍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우리들을 주님이 제자로 압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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