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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세 가지 감사 (딤전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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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감사 (딤전 1:12~17)


어느 가정에서 네 식구가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 앉았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 막내둥이 아들이 서툰 말로 기도를 하고 있고, 엉터리 신자인 아빠는 아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님, 맛 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아빠가 아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아빠한테 감사해야지 왜 하나님한테 감사하냐? 아빠가 돈 벌어서 너 밥도 먹여주고, 옷도 사주는거지 언제 하나님이 쌀 갖다주고 돈 갖다 주었니?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하나님이 햇빛도 주시고 물도 주시니까 곡식이 자라서 먹을 수 있는거지 아빠가 비오게 할 수 있어요?

-어 이놈 봐라.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고 돈 벌어오니까 쌀도 사고, 햄도 사서 먹는거지 하나님이 언제줬냐? 고생은 내가 하고 감사는 하나님이 다 가로채가네...

그때 아이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얘야, 다음부터는, ‘아빠가 수고해서 맛 있는 음식 먹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라. 

그렇게 해서 아빠와 어린 아들과의 설전이 끝났다 한다. 믿음이 없는 남편은 아내가 평상시에 늘 입에 ‘감사합니다’를 달고 다니는데다가 막내둥이 마져 감사 감사하니까 심통났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자기가 수고해서 돈 벌고, 자기가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일 수록 감사가 커지는 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감사의 삶이다. 그러나 분주함 속에서 감사를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3:15에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고 있고, 살전 5:18에서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이렇게 감사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감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를 잃어버리거나 약화되면 우리의 영적인 생활도 약화되게 된다. 감사는 우리 자신의 영적상태를 나타내는 바로메타인 것이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감사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가 감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1.직분 맡기심에 감사(12-13)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은혜 받기 전 바울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는 교회에 대하여 훼방자, 핍박자, 폭행자였다. 그가 예수 믿기 전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는 사도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는 교회를 박해했던 유대교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기독교인들을 증오했다. 그래서 멀리 다메섹으로 피신해 있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영장을 가지고 좇아갈 정도로 열심인 사람이었다. 

2)은혜 받은 후, 바울의 모습
그러나 교회를 그렇게 핍박했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전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사도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워낙 악명 높은 박해자였기 때문에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을 주셨다. 이제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도라는 직분을 받게 된 것이다. 지난 날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주시고 직분을 주신 것을 생각하니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날의 과오를 철저히 회개했다. 13절 하반절에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해서 저지른 행동’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때때로 교회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는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알지 못하나이다.’

3)겸손함으로 받은 직분
바울은 결코 교만하지 않았다. 자신은 직분을 맡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주셔서 직분을 맡겨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격 없는 자를 인정해 주고 직분까지 주었을 때 진실한 감사가 우러나오는 것이다.

2.구원받았음에 감사(14-15)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예수 믿기 전까지 그는 자신에 대한 상당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베냐민 지파, 바리새인, 율법에 박식한 학자, 유대의 젊은 관원, 가말리엘 문하 출신등..’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달라졌다. 

15절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자아’라는 눈꺼풀이 벗겨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애통하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가 약해지는 이유는 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을 잊고 자아가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초기 교회 사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였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고통 중에 탄식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오직 예수’다.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감사,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다녀도, 직분은 가지고 있어도 감사가 식어 있다면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은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부모 은공을 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는 어린이나 학생, 청년들은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로 안다. 다른 집과 비교해 가면서 투정부리고, 불만 원망이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들지 못했다는 말은 아직 은혜를 모른다는 말이다. 

마18장,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자.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가 책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 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엡 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영원한 지옥의 자식,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놓여 저주 받을 인생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 

엡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이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을 생각하니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감사가 약하다면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3.모든 사람의 본을 삼게 하심에 감사(16)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해 박해자였던 바울이 바울이 감격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실, 죄인 중에 괴수와 같았던 자가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 받았다는 것과,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신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감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후에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 그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시는 주님의 목적을 깨닫고 더욱 더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직분도 주시더니 이제는 나를 후대에 믿는 이들의 신앙에 본이 되게 하시는구나!’

자신을 향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계획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자랑삼아 왔던 것을 다 내려 놓기로 작정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심령은 예수로 가득 채워졌다. 그는 예수로만 채워졌고, 예수님만 바라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일제 강점기 시대에 황해도 완악에 유명한 깡패가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김익두였다. 장날 김익두를 안 만나면 재수 좋은 날이라고 했다. 읍내 장터를 휘잡고 다니면서 온갖 행패를 다 부렸다. 그러던 그가 미국인 마펫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다. 믿는 자의 사표가 된 것이다. 한국근대교회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다.

죄인 중에 괴수요, 교회를 향하여 훼방자, 박해자였던 그가 변하여 주의 일꾼 되었을 뿐 아니라 본을 끼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감사의 조건을 물질적 부요와 육체적 강건함에서 찾지 않았다. 그는 이 서신을 습기차고 어두운 감옥에서 적고 있다. 그의 심령은 감사로 충만하였다.
1)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은 것 감사
2)나 같은 죄인이 주의 일군 된 것 감사
3)나 같은 죄인을 성도들의 본 삼으신 것 감사.

감사절을 맞으며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오늘 말씀에 의지하여 3가지로 감사할 수 있기 바란다.

1.나 같은 죄인 살리사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

2.나에게 직분주심을 감사.

3.본을 보이는 성도로 삼아주심에 감사.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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