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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함으로 들어가서 (시 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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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들어가서 (시 100:4~5) 
 
 
❚시편, 주옥같은 찬송시

시편(詩篇)은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분량과 장수를 자랑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시편은 다섯 권, 150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시편만 ‘장’이라고 하지 않고 ‘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시편은 분량이나 장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참으로 귀하고 감동적입니다. 그 까닭은 시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시(讚頌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편’이라는 이름만 보면 시편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詩)인가보다, 서사시(敍事詩), 서정시(敍情詩) 하듯 150편의 아름다운 시를 담은 시집(詩集)인가보다” 하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시라기보다는 찬양에 가깝습니다. 비록 악보는 남아있지 않으나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처럼 찬양 모음집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시편은 150편 모두가 주옥같은 찬송시를 담고 있어 신구약 성경 통틀어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요 모든 성도들에게 널리 애송(愛誦)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고 시작되는 시편 1편으로부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23편, 그리고 맨 마지막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하고 끝나는 150편까지 어느 한 편도 뒤떨어지지 않는 150편 모두가 참으로 아름답고 주옥같은 찬송시를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시편 100편은 아마도 회중이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부른 찬양시편이라고 생각됩니다. 1~3절은 회중이 성전 문 앞에서 불렀을 것입니다. 또 4~5절은 성가대가 성전 구역 안(궁정=성전 뜻)에서 불렀을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찬양할 때 회중과 성가대가 번갈아 가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남아있는 것이 바로 교독문(우리 교회는 예배 때 안 하지만)입니다. 

교독문을 인도자와 회중이 번갈아 가면서 읽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성가대와 회중이 번갈아 가며 찬양을 한 것입니다. 지난주일 저녁찬양예배 때 오천교회 성가대가 와서 찬양을 하다가 어느 부분에선가 지휘자가 돌아서서 지휘하고 우리 회중들 모두가 함께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하면 회중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가대와 회중이 역동적으로 함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에는 성가대가 찬양을 하면 회중들은 앉아서 듣기만 하고 ‘아멘’하는 정도인데(심지어 아멘도 안 하고 썰렁하게 마치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 찬양은 회중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가대와 번갈아가며 찬양을 했다고 하니 참 멋진 장면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도 찬양대가 찬양할 때 감상하거나 심지어 얼마나 잘하나 심사하려는 자세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함께 찬양할 수 있다면 더 감격적인 찬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시편 100편 가운데에서도 성가대의 찬양부분인 4~5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제 막 회중과 성가대가 함께 문으로 들어서는 장면입니다. 이 문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입니다. 성전 정문을 들어서면 성전 뜰이 나타납니다. 이 성전 안뜰이 바로 4절에 나오는 ‘궁정’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온 회중과 성가대가 함께 성전 안뜰에 들어서면서 성가대가 이렇게 찬양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찬양에로의 초대입니다. 

성전 문으로 들어가 성전 안뜰에 들어서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를 찬송하자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5절에 가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감사를 해야 하는지 감사의 이유가 나옵니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세 가지 성품 때문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 하나님의 세 가지 성품이 무엇입니까? 선하심, 인자하심, 성실하심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는 그 어떤 악함도 없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이 ‘선하다’는 낱말은 또한 ‘좋다’(good)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예배 맨 마지막에 부르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을 영어가사로 보면 이렇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He's so good to me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이 오직 선하신 의도를 가지고 우리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비록 고생하고 실패하고 힘들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 있음을 믿고 잘 견뎌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없이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실’이라는 말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선하심’ ‘인자하심’ ‘성실하심’ 세 성품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라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영원히 변치 않고 한 결 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말씀입니까?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이런 놀랍고 귀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물론 자격이 별로 없습니다. 부모의 속을 지지리도 썩이는 자녀가 어찌 부모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속을 썩인들 나는 자식 아닙니까?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 사랑합니다. 아무리 속 썩이고 말 안 듣고 제 멋대로 살아도 오직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고 똑똑하고 말 잘 들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된 우리가 그토록 하나님 뜻을 모르고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했다 안 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고 한 결 같이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솔직히 저도 자식들을 키우며 예쁠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어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성적 잘 받아오면 좀 예쁘고 말 잘 들으면 좀 사랑스러운데 미운 짓 하고  성적 엉망으로 받아오고 말 안 듣고 반항하면 솔직히 좀 미울 때도 있잖아요? 안 그런 척 하시네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짓에 따라 사랑했다 미워했다, 예뻤다 안 예뻤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언제가 한 결 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자녀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놀랍고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백성으로서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은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시편 100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다시 한 번 4절을 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오직 성전의 문을 통과해야만 궁정, 즉 성전 안뜰에 들어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감사라는 문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은혜의 궁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사의 문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은혜의 궁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총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감사하는 문을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은혜도 못 받고 복도 못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도 받고 은혜도 충만하게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요즘 집집마다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고 닫는 자동 잠금장치가 많이 달려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게이트 맨’이 달려있습니다만 요즘 새로 생기는 아파트는 100% 다 이 자동 도어락이 달려 있습니다. 전에는 열쇄로 문을 열어야하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혹시나 열쇠를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편리하라고 다는 것이 이 ‘게이트 맨’입니다. 

그런데 이 ‘게이트 맨’에는 반드시 나만 아는 비밀번호를 입력해 두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비밀번호 잊어버릴까봐 친절하게도 비밀번호를 자기 집 전화번호나 자기 생일로 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누구만 좋으냐? 도둑들이 “이란 친절한 집주인이 있나?” 하고 금세 열고 들어옵니다. 반드시 나만 아는 비밀번호를 정해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비밀번호를 알아야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비밀번호가 바로 감사입니다. 

이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고는 집에 들어갈 수 없듯이 우리도 감사라는 신비하고도 비밀스러운 코드(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Mistery입니다)를 알지 못하면, 감사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감사라는 코드를 통해, 감사라는 문을 통해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거기에는 바로 앞서 설명 드린 대로 5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세 가지 성품, 즉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성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온갖 은혜와 복과 능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감사의 문을 반드시 거쳐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의 제목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올해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씩만 마음속으로 생각해 봅시다. “나는 올해 ◯◯가 가장 감사했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올 한 해 저 개인적으로는 물론이요 우리 교회가 전 교회적으로 가장 감사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성전건축은 무척 힘들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일입니다. 뜻하지 않던 난관이나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사서 해야 하나 싶어 꺼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성도들 중에도 웬만하면 성전 건축 안 했으면 하는 분도 많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성군 다윗에게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던 이 귀하고 위대한 사명을 오늘 이 시대에, 내가 우리교회 출석할 때 허락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은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특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특권인 것입니다.

요즘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00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후, 예정대로만 진행된다면 꼭 1년 후인 내년 11월, 12월 중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새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엊그제 시작했는데 벌써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꼭 1년이면 됩니다. 그 때 우리가 새 성전에 입당하면서 봉헌예배를 드릴 텐데 그 때 이 시편 100편을 찬양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얼마나 감격적이겠습니까? 찬양이 저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감사함으로 새 성전 정문에 들어서면 우리 앞에 새 성전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 성가대와 함께 온 회중이 감사하며, 찬송하며 성전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내년 이맘때쯤, 내년 추수감사주일 때쯤이면 이 놀라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 생각만 하면, 이 상상만 하면 너무 즐겁습니다. 너무 기대됩니다. 자다가도 빙그레 웃습니다. 운전하고 가다가도 너무 좋습니다. 이 감격적인 날이 곧 다가올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번의 성전 봉헌식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이고 또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새로 성전을 지어 드린 스룹바벨 성전 봉헌식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은 역대하 5장부터 나오는데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성대한 봉헌식을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했다고 합니다(대하 7:1). 바로 이 말씀이 내년 2010년 우리 교회 표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입니다. 또 스룹바벨 성전의 성전 봉헌식은 에스라 6장 등에 나오는데 참으로 성대하고 감격적인 봉헌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두 번의 성전 봉헌식 모두 예외 없이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솔로몬도, 또 스룹바벨 총독을 비롯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최선의 제물을 준비해 감사의 번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의 찬양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왜 성전 봉헌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하고 감사의 제물이 드려져야 하고 감사의 찬양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성전을 완성한 것이 결코 인간의 노력이나 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헌금해서, 우리가 애써서 지었다고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성전 봉헌식, 저와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봉헌식을 상상해 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직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감사와 찬송으로 드려지는 우리의 교회 새 성전 봉헌식 말입니다. 올해 추수감사주일에는 이렇게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고 잘 진행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리고 내년 추수감사주일에는 성전을 봉헌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스룹바벨 성전 봉헌을 앞두고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십니다. 학개 2장 9절 말씀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감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특히 새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가 지금 짓고 있고 또 앞으로 봉헌하게 될 새 성전을 통해 얻게 될 우리 교회의 영광이 이전 그 어떤 영광보다 클 것이며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리라는 은혜의 약속 말입니다. 우리 모두 내년 이맘 때, 내년 추수감사주일에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는 은혜를 맛보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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