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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풍성한 추수를 위하여 (신 1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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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추수를 위하여 (신 11:13~17)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가운데 추수감사절을 맞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한 거지와 노인이 공원 벤치에서 만났습니다. 노인은 말없이 거지를 데리고 음식점으로 가서 그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만족한 듯 바라봅니다. 그가 먹기를 마치면 음식값을 지불하고 그 다음 해를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추수감사절 저녁, 그 도시의 병원에는 두 명의 응급환자가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너무 많이 먹어 질식한 상태였고, 다른 한 명은 남을 대접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음식이라고는 입에 대지도 못했던 가난한 노인이었습니다.
조그만 불씨 하나가 큰불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꺼진 불씨에서는 불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되,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로 의무감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 나누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그 나눔이 참된 기쁨이 되고 서로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넘쳐남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사랑과 넉넉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이들이 되십시오.
“주님, 의무감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넉넉히 나누게 하소서.”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고 있습니까?

어제 그제 이틀에 걸쳐서 교회 김장을 담갔습니다. 다같이 바쁜 분들입니다.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심야 기도회 전에 한 분이 파를 준비해 주셨고 심야 기도회를 끝나고 난 다음에 몇 분이 남아서 무채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이른 아침부터 그걸 버무려 김장 속 재료를 준비하고는 미리 주문한 절임 배추에 속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비록 비용은 많이 들어갔지만 몇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김장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추수감사절 귀한 잔치 자리 함께 나눌 공동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 후에도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결코 한가한 분들이 아닙니다. 사업에 바쁜 분들도 계시고 몸이 불편한 분도 계십니다. 특히 중직들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변함없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수고한 분들의 손길과 더불어 나누는 그 정성을 귀한 은혜와 복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두기 위해서는 가꿔야 하고 가꾸기 위해서는 뿌려야 합니다. 하지만 뿌리고 싶어도 뿌릴 밭이 없다면 뿌릴 수가 없으니 가꿀 수가 없고 가꾸지 못했으니 당연히 거둘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우선순위 일 번은 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마음껏 뿌리고 가꾸고 거둘 수 있는 밭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밭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을 준비해야 하는데 내 밭 내 땅이 없습니다. 아니다 내게는 몇 백 평 몇 천 평 몇 만평의 땅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당장으로 봐서는 내 것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가서 보면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는 내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마지막에 가서 결산할 때보면 결코 내 것이 아닌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주인이 그냥 두고 보니까 이게 내 것인 줄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아닙니다. 

잠시 내게 맡겨져 있는 것일 뿐이죠. 우리가 입고 사는 이 몸만 해도 그렇습니다. 내 몸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내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주님이 생명을 거두게 되면 이 몸은 버려집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왜 그렇게 하냐고 하면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무엇을 하던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뿌려진 씨앗이 온전히 싹을 티우고 잘 자라 열매를 맺은 수 있는 그런 토양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이야 말로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 밭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우리 마음의 밭의 상태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열매를 거둘 수도 있고 전혀 열매를 거두지도 못한 채 황량하게 버려진 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마음이 패배 의식으로 가득하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어제 김장만 하더라도 나이 드신 분들 몸이 아프신 분들도 함께 하셨습니다. 

얼마나 즐겁게 하시던지 지켜보는 사람도 덩달아 마음이 즐거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분들에게 나이 드신 분이 몸도 불편하신 분이 뭘 하신다고 하느냐고 그냥 저쪽에서 쉬고나 계시라고 해보십시오. 당장은 그것이 그분을 위하는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요? 아니요. 그렇게 되면 그분들은 금방 더 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 마음을 우리의 삶을 쓰레기더미로 만들지 마십시오. 아니 지금까지는 쓰레기더미였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십시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옆에 난지도라고 커다란 인공산이 있습니다. 그건 쓰레기들을 갖다 버리면서 인공적으로 생겨난 산입니다. 그저 먼지만 풀풀 나고 악취만 풍기던 그곳이 지금은 놀랍도록 바뀌었습니다. 나무들을 심고 산책로를 만들고 해서 아름다운 생태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도 월드컵 생태 공원이라고 해서 현재 월드컵 공원은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의 5가지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있으며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및 다른 혼합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인근의 월드컵 공원과 서울 월드컵 경기장 시설의 열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보세요 쓰레기더미의 대변신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쓰레기더미 산이 지금은 아주 훌륭한 공원이요 에너지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이를 위해 땀흘린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같은 게 뭘 하냐고요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요. 그래요 난지도 쓰레기더미도 다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들이 아니라고 그 쓰레기더미가 놀랍도록 유익한 곳으로 대변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더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고 쓰레기 유출수가 한강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옹벽을 치고 그 폐수들을 따로 모아 정화하고 이런 노력들을 기울였더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공간이요 오히려 에너지원으로 대변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나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마음을 우리 생각을 좀 먹는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십시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그리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밭을 우리들에게 잠시 빌려주신 주인이십니다. 그러면서 네 마음껏 가꾸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을 쓰레기더미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는 쓰레기더미와 같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를 덮으십시오. 그리고 사랑이라는 공원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미음이라는 돌 다 캐내버리세요. 캘 수 없을 만큼 뿌리 깊거든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세요. 그리고는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다이너마이트로 그것을 폭파시켜버리면 됩니다. 아무리 볼품이 없어도 아무리 무능한 것 같아도 아무리 아프고 가진 것 없고 나이 먹었다고 해도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사로잡으면 쓰레기동산이 귀한 공원이요 에너지원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한이 내 안에 쌓여있어도 하나님이 날마다 빼내버리시면 이윽고는 다 사라지고 그 마음이 기쁨과 사랑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으면 삼십팔 년 된 병자도 일어나 자기 누웠던 들것을 당당하게 들고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것이 내 마음과 같지는 않을는지 몰라도 주님이 하시고자 하면 안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원래 주인은 하나님이시잖아요. 우리가 물건을 샀다가도 어디가 이상하면 A/S를 받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를 A/S해 달라고 하십시오. 내 몸 이거 불량품입니다. 고쳐 주세요. 내 마음 이거 불량품입니다. 고쳐주세요. 그럼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반품 불가라고 하실까요? 아니요 하나님은 백 번 천 번 고쳐주시고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업그레이드한다고 하던가요? 거기다가 더하여 불평 불만 시기 원망 다툼과 같은 가시도 다 제거해 버리십시오. 그거 백해무익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그저 그런 마음 가지고 있어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나만 부글부글하고 내 마음과 내 몸만 상하지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런 손해날 일을 뭐 하려 합니까? 그러니까 그냥 마음을 바꾸세요.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언제까지 투덜거리고만 있을 겁니까? 마음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으면 되잖아요. 마음에 안 드는 옷은 그거 좋다는 사람 줘버리면 되잖아요. 그거 처박아 놓고 투덜거리고 있다고 입만 삐쭉 내밀고 있다고 달라질 거 없어요. 있다면 내 몸 내 마음만 상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우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셔서 우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먹고 배부르게 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귀한 은혜로 우리 모두의 삶이 평안과 풍성함으로 가득하여 기쁨의 노래가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며 땀 흘려 수고함으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네게브 사막을 가다보면 분명 사막인데 나무가 무성하고 여러 가지 곡식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그들이 땅을 파고 물이 새나가지 않도록 비닐을 깔았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요단강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서 물을 대줍니다. 미국 L/A에 가보면 도시가 아주 푸릅니다. 집마다 마당에 나무가 자라고 잔디가 깔려 있습니다. 어떻게 사막 기후에 이게 가능한가 했더니 그들이 자동으로 물주는 장치를 해 가지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잔디를 깎아주고요. 

그러니까 도시 전체가 아주 푸릅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겠습니까? 심는 것보다 가꾸기가 더 힘들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땀 흘려 수고하고 날마다 돌아보는 사람이 풍성한 열매를 기쁨으로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에 맞게 비료도 주어야 하고요 벌레 먹지 않도록 수고도 해야 되고요 그 외에도 신경 쓸 일이 많죠. 비가 너무 많으면 물꼬를 터 주어야 하고 비가 모자란다 싶으면 또 물을 대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거기에 더하여 좋은 일기도 주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땀 흘려 수고함으로 가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건 먼저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농부는 가을의 풍성한 추수를 머리속에 그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목표를 항상 머리속에 그리십시오. 그리고 그 복된 씨를 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생각도 복된 생각으로 가득하고 그 생각을 우리의 말에 담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도 복된 말을 하는 겁니다. 마음에 신경질을 품으면 내 말도 신경질적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열매도 신경질적인 열매가 거두어집니다. 그래 내 마음만 더 불편해지죠. 그러니까 항상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 믿음의 말 격려의 말 축복의 말을 하도록 하십시오.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하지 마시고 날마다 축복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고 하나님이 복 주시도록 그렇게 축복하십시오. 너희가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나님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야단칠 시간이 있거든 내가 그 이상으로 축복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 양약계의 선구자인 정사인 선생께서 창부타령을 변주한 굿거리 장단의 신민요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후렴) 니나노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사 좋다” 그래요 짜증은 내면 낼수록 더 짜증나는 거요. 불평하면 더 불평할 일만 생기는 거요. 누구를 미워하면 더 미운 꼴만 눈에 띄는 거요. 화를 내다보면 더 화낼 일만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먼저 좋은 씨를 뿌리세요. 

우리 마음으로부터 부정적인 생각은 다 던져버리세요. 쓰레기더미도 변하여 좋은 테마공원이 되고 에너지원이 되는데 더군다나 하나님이 하시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고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냥 우리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그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안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 좋으라고 그렇게 하냐고요? 그게 바로 나도 좋고 너도 좋게 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도 함께 하셔서 우리를 복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우리로 배불리 먹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복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저앉지 마세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라 해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서 날마다 자기 일을 축복하고 자기를 축복하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을 그리고 모든 가족들을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고 원수까지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모두를 복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구약 민수기 6장에서는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날마다 축복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탈무드에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거니와 예수님께서도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또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놔두고라도 바로 내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치고 시간 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덧입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죽음의 길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한 마디로 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몰라요. 그게 바로 우리 영혼의 암입니다. 속으로는 죽어가고 있는데도 죽음의 암이 걸려 있는데도 모르고 있어요. 그래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요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누군 그런 말을 합니다. 병원 가기가 무섭다고요. 아니 병원이 왜 무섭습니까? 아픈 것이 나타나면 치료하면 되고요 건강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간 시간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차를 카센타에 끌고 가서 쭉 점검해봐 주세요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진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활이 편안하고 풍족하도록 점차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한데 시간 시간 주님 앞에 나온다는 것이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는 것이요 땀을 흘리며 가꾼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 일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크고 복된 일로 나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믿어도 누구보다도 열심을 내어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니면 듣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힘쓰십시오. 섬기며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거든 앞장 서서 섬기십시오. 

아이들 운동회를 가서도 그 작은 상 하나 받겠다고 온 힘을 다해 달음박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상급을 풍성하게 쌓아놓고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주저할 게 무엇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이나 입으로 방정 떨지 마십시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복된 말을 하도록 하시고 자기 자신과 하는 모든 일을 그리고 모든 가족과 이웃들 원수들까지도 축복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까지도 섬기십시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귀한 섬김과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과 사랑으로 가득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야 합니다.
뿌렸다면 거두어야 합니다. 뿌려놓고 나 몰라 하고 내 팽개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수고하여도 하나님이 엎어버리시면 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또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만 심는 것이 아니라 이 물질의 씨도 심어야 합니다. 풍성한 추수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씨를 심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하나님이 불어버리신다고 하십니다. 

경제적으로 풍성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십일조와 봉헌물을 온전히 드리십시오. 하나님 앞에 물질적으로 인색하면 하나님 역시 너희가 심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두는 것도 인색하게 거둘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게 무슨 기쁨으로 거둘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있는 것은 가라지 뿐이요 이삭이 달려 있는가 했더니 쭉정이뿐인데 거기서 거둘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먼저 조건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그러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그 때를 맞추어 땅에 내릴 것이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둘 것이요 가축을 위한 풀이 있을 것이며 먹고 배부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우리가 잘 해야 됩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 드릴 수 있는 기회 축복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엎드릴 수 있는 기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나눌 수 있는 기회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는 기회 없는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기회 부족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풍성함을 누리를 수 있는 기회 화가 나는데 오히려 웃어줄 수 있는 기회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도 믿고 신뢰하는 기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기회로 가득합니다.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그 모든 기회들을 불평하는 기회 좌절하는 기회 도망치는 기회 숨는 기회 저주의 기회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게 다 속는 것입니다. 정작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듣고 내 마음속에서 속삭이고 있는 악한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그러면서 착각하기를 이건 내 생각이래요. 내가 생각해 보니까 그렇대요. 그런데 그게 내 생각이 아니라 내 마음에 심어준 사단의 생각이란 말에요. 

우리가 밥을 먹는데 한 숟가락 덜 먹으면 못살 거 같죠? 아니요. 그러면요 내 몸은 그 작은 양을 가지고 내 몸에 필요한 만큼 영양분을 뽑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답니다. 그래 심지어는 두 끼만 먹어도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하는 분도 계셔요. 그만큼 소화 기능도 더 활발해지고 모자라는 부분만큼은 먼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저장해놓았던 것들을 내다가 슬슬 써먹기 시작하고 그래서 날씬해지고 날씬해지는 만큼 필요한 양도 줄어들게 되어 몸매도 보기 좋게 되고 더 건강하게 되어 일석이조라는 겁니다.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면 그만큼 내가 쓸 것이 적어지니까 힘들 것 같은데 우선 불필요한 지출을 막게 되고요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더하여 주시니까 이거는 일거양득 정도가 아니죠. 이런 장사라면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이제부터는 내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선언하시는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 끝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작년 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우리나라가 보내왔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셨습니까? 아직까지도 찬바람이 가득합니까? 마음에는 불편함으로 가득합니까? 이제 다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십시오. 어떻게 생각하면 저나 여러분이나 참으로 바보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복 주시겠다고 은혜로 우리의 길을 이끌어가시는데 우리 방정맞은 생각과 말로 그걸 다 엎어버리곤 했으니 말입니다. 

지금 힘든다고요? 그게 하나님이 복된 자리로 이끌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때 감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품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러니까 힘들다 죽겠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멋지게 만들어 주실지 기대가 된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환경이 열린다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이루실 줄로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또한 그렇게 열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놀랍도록 달라질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신나게 하십시오. 감사하면서 하십시오. 축복하면서 하십시오.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을 노력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아래 매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열심히 인생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열심히 삽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틀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적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운명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인생의 생로병사를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나약한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인생은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러면 무엇이 은혜요 복입니까? 사람들은 부요와 건강과 장수와 성공 같은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복의 열매일 뿐입니다. 진정한 복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시고, 이 모든 삶의 조건을 날마다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바라볼 때 하나님께는 모든 풍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이 모든 풍요를 누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라. 여기서 가장 좋은 것은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왕 따를 거라면 기쁨으로 따르십시오. 이왕 할 거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하고도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는 안타까운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항상 기쁨으로 섬기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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