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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와 기쁨의 새 노래 (출 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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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쁨의 새 노래 (출 15:1~13)
  

히브리 민족을 노예처럼 다룬 애굽과 그 통치자인 바로는 영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지배자다. 이 세상의 지배자인 사탄의 관할 하에 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나 계획과 상관없이 정사와 권세, 어두움의 주관자와 하늘의 악한 영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산다. 삶의 영역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하고 사업을 시행하고 각 처에서 나름대로 살지만 그곳은 애굽이고 또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영적 바로의 지배 아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많은 노래가 있으나 육의 노래만 부른다. 고통과 괴로움, 갈등 때문에 ‘못 살겠네. 죽겠네. 아프네’ 의 노래, 허무와 절망의 노래만 부른다. 그러나 이 세상 속에서 부르는 새 노래가 있다. 그 감격의 노래는 구원을 얻고 체험한 자의 노래다. 탄식이 기쁨이 되고 신음이 찬양이 되고 초조함이 감사함으로 변하는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구원을 체험할 때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이다.

출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부른 이 노래는 정말 구원을 체험한데서 온 노래였다. 출14:12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의 병거들이 자기들 위에 이른 것을 볼 때 심히 두려워했고 모세를 원망하며 차라리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노예 생활이 낫겠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모든 구원의 문을 여셨다. 출14:21~3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홍해가 갈라졌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 바다를 건너갔다. 애굽의 바로의 군대는 추격해 오다가 수장되어 버렸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독특한 구원의 방법이다. 그래서 노래가 터져 나왔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구원의 은혜에 너무도 감격해서 찬송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구원 받은 일이 홍해를 건넌 하나님의 백성들과 똑같기에 여호와를 노래하게 된다. 내 힘으로 해결이 안되는 죄와 허물의 사슬에서 구원을 얻었기에 노래한다. 새 노래란 세상의 노래와 완전히 다르다. 감사와 기쁨이 담긴 이 새 노래는 구원자를 향하는 노래다.

1. 새 노래는 여호와의 이름에 집중되어 있다. (출15:2)

오늘 본문 출15:2을 보라.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라고 고백한다. 이 노래의 내용은 온전히 여호와의 하나님 됨을 말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에 집중한다. 오늘 본문 2절에서만 “여호와 나의 힘, 여호와 나의 힘, 여호와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 이렇게 세 번 여호와에 대하여 고백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는 노래 속에 자기 자신의 업적이나 자기 자신의 고달픔이나 신세 한탄은 전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여호와의 이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오늘 본문인 출15:1~18에서 ‘여호와’라는 말은 12번 이상 나온다. 대명사인 ‘그’, ‘그를’, ‘당신은’, ‘당신의’, ‘당신’ 등의 말은 33번이나 나왔다. 아! 이 구원 얻은 자의 새 노래는 세상의 노래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 구원 얻은 자의 새 노래는 사람에게 집중되는 노래들과 얼마나 다른가? 모든 것이 여호와 그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있다. 새 노래는 감상적이지도 않다. 낮은 수준의 노래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에 집중하고 있다.

2. 새 노래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출15:2下)

구원 얻은 자가 만난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는 하나님이다. 또,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다. 구원을 경험한 자는 하나님이 삼인칭이 될 수 없다. 또한 구원을 체험한 자의 하나님이 우리들의 삼인칭 부수도 될 수 없다. 오직 그 분이 내 소유이고 아니 내가 그 분의 소유라는 특별한 관계로 접어든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 우리의 구원,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부족하고 미흡하다. 내 하나님, 내가 찬송할 내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 구원의 체험은 최고로 밀접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노래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야 나는 기쁘다. 내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면 나는 덩달아 기쁘고 덩달아 나 자신이 존귀한 마음이 된다. 

사람은 언제나 내 것에 관심이 많다. 내 집, 내 교회, 내 만년필, 내 책, 내 사전, 내 요리 등 내 요리가 맛있다고 하면 신난다. 내 것에 제일 먼저 관심이 간다. 남의 것, 나의 요리가 중요하지 않다. 영적인 것도 구원을 받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나의 것, 나의 하나님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면 나의 영광이 된다. 이것이 진짜 신앙이다. 하나님이 기쁘면 나도 기쁘다. 하나님이 행복하시면 나도 행복하다. 하나님이 슬프시면 나도 슬프다. 내 하나님이시기에 내 힘, 내 구원이신 하나님이기에 그렇다. 이제 누가 뭐라 할지라도 새 노래란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높이고 나를 높이고 우상을 높이며 살았다면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아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가 모든 것의 우선이다. 


3. 새 노래는 여호와가 하신 일을 고백하는 것이다. (출15:3)

출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하나님은 진퇴양난에 처한 백성을 위해 구원 행동을 하셨다. 그런데 출14:13을 보면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하였고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하였다.

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겠다고 하셨다. 힘 없는 자로, 이기지 못하는 자로 싸우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싸우시는 여호와를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용사이시다. 앞장 서서 돌격하고 적진을 박살내는 전사 중의 전사이시다. 나의 구원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시는 하나님, 나의 구원을 위해 적군을 진멸시키는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용사이시다. 용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오른손을 사용하신다. 익숙한 오른손으로 싸우시는데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6절)”라고 하였고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12절)”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오른손으로 하신 일이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① 원수를 부숴뜨린다. (출15:7)

우리의 원수는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고 우리를 노예 삼으려는 어두움의 세력들이다. 죄와 허물이란 사슬로 묶어 영원히 노예로 삼으려 한 사탄과 귀신의 무리들이다.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그 원수를 부수셨다. 출15:7에서 원수를 엎으시고 원수를 지푸라기 같이 사르시는 용사이신 하나님 때문에 나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② 자연계를 움직이신다. (출15:8~10)

여호와께서 원수를 멸하실 때 바다를 움직이신다. 출15:8을 보면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라고 하였고 출15:10을 보면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라고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다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까지도 움직이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연계를 움직이시는 광대하고 크신 용사이시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바람, 파도, 물고기, 박넝쿨, 벌레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사무엘 사사의 기도를 위해 우레를 사용하셨고 히스기야의 부르짖음을 향해 해시계에 나아갔던 태양의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나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에 서 있는 교회를 위해 자연계를 움직이신다. 흉년이 들고 풍년이 들고 비가 내리고 지진이 나고 무서운 해일이 일어나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세상의 악한 주고나자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삼으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계를 움직이신다. 그 힘 있는 오른손으로 움직이신다. 어찌 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고백하지 않을 수 있는가?

③ 주의 백성을 주의 성산으로 인도하신다. (출15:13)

여호와의 하신 일은 구속하신 백성을 그냥 광야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출15: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분의 성품 중의 하나인 인자함, 즉 사랑 때문에 백성을 인도하신다. 주의 성산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신다. 싸우시는 용사로서의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은 인자하신 용사이시다. 자기 거처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귐을 원하신다는 뜻이다. 구원 얻은 백성들의 예배와 찬양을 원하시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날마다 구하며 연합하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계21:3을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하였다. 여호와는 당신이 현존하시는 집, 그 만남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 얻은 자는 그래서 예배하므로 하나님을 만난다. 감사로 찬양하고 기도하므로 헌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난다. 

이렇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고백하는 자가 어찌 새 노래로 노래하지 않는가?

원수를 부숴뜨리시기에, 자연계를 움직이시기에, 주의 백성을 성산으로 인도하시기에 노래는 절로 나온다. 맥추 감사절의 감사의 조건은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있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다 뛰어넘어 하나님이 행하신 일, 용사가 되시어 나를 구원해 주신 구원의 사역에 달려있다. 바로보다 더 끈질기고 홍해보다도 더 무섭게 나의 구원을 가로막은 사탄과 죄와 허물을 어떻게 벗어던졌는가? 내가 할 수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무력화 시켰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살리셨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모세가 노래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노래했다면 더욱 큰 목소리로 이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노래해야 한다. 마음을 다해 노래해야 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해야 한다.(엡5:19) 행복이 여기서 터져 나온다. 새 노래가 울려 퍼질 때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확고해진다.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6번의 ‘없으며’의 상황이지만 구원, 그 단 한 가지 영적 경험이 기쁨의 이유며, 감사의 이유며, 노래할 이유인 것이다. 새 노래로 찬송하는 일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감사함이 마땅하다.

더 이상 조건은 없다. 더 이하의 조건도 없다. 구원 얻음이 감사해서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전부다. 추수 감사절에 꼭 붙잡아야 할 감사의 보물이다. 감사하고 노래하고, 노래하고 감사하고 그렇게 행복한 한 주일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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