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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사 8: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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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사 8:9~15) 
 
 
2004년에 대만에서 일어난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1월 어느 날 두루미 한 마리가 대만의 한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에 통상 두루미들은 한반도 지역에서 겨울을 나고 시베리아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이 두루미는 길을 잃고 방향을 정 반대로 잡아 북쪽 시베리아가 아닌 남쪽 대만으로 날아간 것입니다.

대만에서는 이 두루미를 보고 야단이 났습니다. 1934년 이후 70년 동안 두루미가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대만 국민은 두루미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며 최고의 길조로 손꼽습니다. 그래서 이 두루미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의 붉은 털이 유달리 예뻤기 때문에 붉다는 뜻을 가진 단(丹)자를 두 개나 붙여 “단단”(丹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단단이 공군비행장에서 노닐다 비행기 안전을 위해 쏜 산탄을 맞아 부상을 입었습니다. 단단은 타이베이시립동물원 야생동물구조센터로 긴급 후송되었고, 수술로 6발의 산탄을 제거한 뒤 정성껏 돌봤습니다. 그 결과 단단은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타이베이시는 단단이 대만에 계속 있게 되면 있으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자매결연시인 서울시 협조를 받아 해마다 철원으로 찾아오는 두루미들 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길을 잃은 두루미가 참 안쓰럽습니다. 어쩌다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을까요? 두루미를 되돌려 보낸 대만 사람들이 참 정이 넘쳐 보입니다. 두루미를 사랑해서 돌봐주었고 결국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따지고 보면 영적으로 우리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가서는 안 될 길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방황하고 있는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해 주시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점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본문의 예언을 하게 된 당시 남왕국 유다의 주변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아하스 왕이 아버지 요담의 뒤를 이어 막 왕위를 이어 받았습니다. 아직 국내적으로 정치적인 안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때 국외적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이 발생됐습니다. 저 북쪽에서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가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고 나섰습니다. 앗수르와 인접한 두 나라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앗수르의 남진을 대비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남왕국 유다도 이 동맹에 동참하라고 촉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남왕국 왕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표방하면서 거절합니다.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먼저 배후의 적부터 제거할 셈으로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주전 734년 아람의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베가가 연합군을 이끌고 아하스가 통치하던 남왕국 유다를 공격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때 이사야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예언 가운데 일부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 속에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깨닫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은 아람과 북왕국 연합군이 남왕국을 침공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왕국 수도인 예루살렘까지 쳐들어 온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됐습니다. 이 때 저들이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두려워했습니다.

7: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이 급한 전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람이라는 나라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연합군을 결성하여 남왕국을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크게 두려워하여 떨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적군이 침공했다는 말을 듣고 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두 나라가 연합하여 막강한 전력으로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친다면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7:10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한 가지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저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장차 큰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임마누엘 징조를 듣고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들은 엄청난 기세로 공격해 오는 적군만 보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떨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연구해 온 존 힌튼(John Hinton)이 [죽어가는 사람들](Dying)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인의 죽어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의 죽음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조사해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신앙인들이 죽음의 순간 크게 두려워하더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신앙으로 평안을 느껴왔던 사람들도 정작 죽음이 다가오자 큰 공포에 휩쓸리더라는 것입니다.

왜 많은 신앙인들이 죽음의 순간 두려워할까요? 밀려오는 죽음의 위력을 보면서도 정작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 순간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8:7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으니까 유다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저 연합군의 침공을 막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장차 유다가 의지하던 앗수르가 오히려 유다를 공격해 올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가 닥치자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쳐들어오자 하나님보다도 앗수르를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앗수르를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있었던 일입니다. 경복궁의 경회루를 준설하는 과정에서 청동으로 만든 용(龍)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연못에서 잘 지내는 용을 꺼내는 통에 외환위기라는 국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각의 이런 미신적인 여론에 밀려 당국이 결국 그 용을 복제해서 연못에 다시 집어넣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청동으로 만든 용을 꺼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생긴 것일까요? 다시 그 용을 연못에 넣어두면 외환위기가 잦아들까요? 왜 사람들이 위기를 만나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저지를까요?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비록 저들이 어리석어서 위기가 닥치자 믿음 없이 두려워 떨었고, 실제로 나라가 멸망하게 되자 하나님 대신 앗수르를 의지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두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들을 저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저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대의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이어령 박사가 만 75세에 세례를 받아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한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읽고 읽었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닌 문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고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에 오류로만 보였던 성경이 지금은 구슬을 꿰듯 새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혼자 바들바들 떨면서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내가 너무 불쌍합니다. 나는 의심 많은 도마였습니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고 얼마나 부족했었는지, 이제는 인간의 오만을 버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변화된 삶을 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책망하시지 않고 그대로 내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저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깨닫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유다 백성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헛됨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헛됨을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 9-10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 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유다를 공격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다 허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함께 연합하여 공격해 와도 다 허사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남왕국 유다가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저들을 방어하려고 해도 또한 다 허사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것들이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럴드 메이(Gerald May)가 쓴 [중독과 은혜]( Addiction and Grace)라는 책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안전을 위해 믿고 있는 세 가지 신이 있다. 그것은 소유와 권력과 인간관계다" 그리고 세상이 사람들을 중독시켜간답니다. 무엇인가 많이 가진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남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이 잘 사는 것이고, 그리고 처세를 잘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사람들의 생각을 중독시켜 간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을 해독시키시기 위해 해독제를 주신답니다. 그것이 바로 절망적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그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이 세 가지가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면서 잘못된 사상, 풍조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조금만 어려우면 두려워 떱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고 때로는 우리를 절망적 상황 속으로 던져 넣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된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임마누엘”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임마누엘을 깨닫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남왕국 유다가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 연합군이 쳐들어올 때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 앗수르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남왕국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창 28장을 보면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서 멀리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급하게 도망쳐 나온 길이어서 다른 때보다도 훨씬 피곤하고 지쳐있습니다. 

할 수 없이 들판에서 유숙을 해야 할 형편입니다. 돌 하나를 주어 베개 삼고 하늘을 이불 삼이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게 됐습니다. 사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저 하늘에서 땅에까지 길게 이어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다리 위 저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여호와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때 창 28:16을 보면 야곱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머나먼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여행의 두려움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야곱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야곱은 이 깨달음으로 하란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고 믿고 나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여건이 잘 갖춰져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깨닫고 사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모든 의도와 계획은 헛되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담대하게 인생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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