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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감사 (행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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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 (행 16:8~25)


행 16:8-9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 일행이 밤 중에 기도하고 있었다. 원래 그들의 계획은 소아시아의 서북쪽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막으셔서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관문인 드로아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드로아에서 밤 중에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여! 어디로 갈까요?”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손짓을 하면서... 
-“이리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시오!” 

사도 바울은 이 환상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믿고 바다를 건넜다. 미지의 세계인 마게도냐, 현재 유럽의 그리스 지역이다. 그리고 바울 일행이 도착한 곳은 빌립보란 성이었다.

낯선 땅에 와서 먼저 그들이 할 일은 그 지역을 탐색하는 일과 기도처를 찾는 것이었다. 기도처를 찾기 위해 나서다가 처음 만난 사람이 자주장사 루디아였다. 이 여인은 즉시 복음을 받아 들이고 빌립보 지역의 첫 신자가 되었다.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았고, 바울 일행을 융숭히 대접하고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기도하기 위해 기도처로 나가다가 귀신들려 점치는 여인을 만났다. 그런데 이 점치는 여인이 바울 일행이 지나갈 때마다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파하는 자여!

바울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질러댔다. 바울의 마음이 괴로워서 그 여인에게로 다가가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그런데 이 일로 인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 점치는 여인은 요즘 말로하면 족집게 무당이었다.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이 여인을 고용했던 주인들의 수입이 솔찮게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신통력이 떨어지자 이제 더 이상 점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화가 난 주인들이 사도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빌립보 공안 당국에 고발하였다. 

행 16:20-21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당의 주인들이 사도 바울 일행을 고발한 내용은 선교활동으로 인해 민심을 동요케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보복할 마음으로 계교를 꾸민 것이다. 

빌립보성의 당국자들은 자초 지종 사건의 개요를 알아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사도 바울과 실라를 고문하고 매질을 해서 감옥에 집어 넣었다. 23-24절의 내용이다.

행 16:23-24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죄질이 아주 나쁜 흉악범 취급을 받고 토굴과 같은 지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사도 바울 일행이 감옥에 갇힐 만한 범죄 행위가 있었는가? 그들이 도적질을 했는가? 아니면 사기극을 벌였는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본문 2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성경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도리어 도움을 주고 이롭게 하였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매질과 감옥살였다. 

만약 이런 일들이 나에게 또는 우리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리라 생각되는가? 
-“하나님,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합니까?” 

하나님을 향하여서 항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맞고 갇힌 상황에서의 바울과 실라의 행동을 보면 더욱 이해가 되질 않는다.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런 상황에서 기도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렸는가? 

박윤선목사님은, “이 두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왜 이런 상황을 맞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기도를 마친 후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과연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극한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는 그 믿음의 동력이 무엇인가 본문을 깊이 묵상하다 그들의 믿음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2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1.주재권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주재권이란 말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란 뜻이다. 이 주재권은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이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대상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는 철저한 주재권 신앙을 가진 왕이었다. 이런 믿음의 자세는 자신들의 처한 환경에 눌리지 않는다. 도리어 그 환경을 발 아래 짓밟을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또 다른 한 사람 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요 경건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순식간에 다 잃고 말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욥 1:20-21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런데 욥에게 임한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서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너진 자신의 집 기왓장으로 긁고 앉아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 그 아내가 욥을 향하여 악담을 퍼부었다.

욥 2:9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악에 받친 욥의 아내가 망말을 했다. 그러나 욥의 아내를 함부로 비난할 수가 없다. 그 지경이 되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외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믿음 역시 주재권의 문제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믿을 때 원망보다 감사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길에서 실패하는 이유(소극적, 자기중심적)가 바로 여기 있다. 
하나님께서 내 것을 빼앗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것을 빼앗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시험하실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가 희박해지는 이유는 내 가진 것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그런 태도 속에서는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내려 놓으면 사소한 작은 것 하나까지도 감사하게 된다. 성경의 교훈은 분명하다. 천지만물이 주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주재권, 사도 바울과 실라는 철저하게 주재권을 인식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근거였다. 

2.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있다. 그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이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먼저 그들은 기도처를 찾아 다녔다(13절). 그리고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여인을 만난 것이다(16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둔감해진다. 영적으로 둔감해진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사도 베드로는 마16장에서 신앙고백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나 영적분별력이 부족해서 주님께로부터 강하게 책망을 들었다. 주께서 곧 고난받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고난을 만류했던 것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도 바울 일행이 무시아에서 서북쪽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가로 막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드로아로 내려가서 묵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밤 늦게까지 그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였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을 하며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행16:9). 그들은 기도했다.

행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그래서 바울 일행은 미지의 땅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되었고, 빌립보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변고를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투옥 사건을 우연한 일로 생각지 않았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닥치는 고난을 고난으로 받지 않는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본문 25절에서, 바울과 실라가 고통 중에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그 소리를 죄수들이 들었다. 그들이 뭐라고 반응했을까? 여러분 상상에 맡긴다. 그러나 바로 그후에 어떤 일이 있어났는가? 

(행 16:26-34)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기적이 일어났다.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착고가 다 풀렸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실라만 조용히 건져내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느끼게 하셨다. 

2)간수의 가정을 구원하셨다.
간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옥문이 다 열려 있었다. 죄수들이 다 탈옥한 줄로 알고 그는 자결하려고 검을 빼들었다. 그때 사도 바울이 만류했다. 
-“탈옥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다 여기 있소!” 간수가 떨며 바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바울이 말했다. 유명한 전도 메시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다. 루디아를 비롯하여 간수 가족이 빌립보교회의 주도적인 일꾼들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바울을 일행을 고통 가운데로 몰아가셨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감격했을까? 기도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금방 깨닫는다. ‘아 하나님께서 또 일을 시작하셨구나!’ 두려워하기보다는 기대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바울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1)주재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첫 단추를 잘 끼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감사의 동기가 된다. 나의 믿음의 고백이 진실한 것이라면 이미 나의 모든 소유는 주님의 것이 된 것이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김석균 작사)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 것을 내 것이라 아버지여 철 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 주를 위해 쓰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주님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기보다는 먼저 내게 있는 것에 대하여 자족하며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해 보라. 

2)기도생활에 부지런하기 바란다.
기도 생활 소홀히 하면 감사도 식어진다. 기도 생활이 그쳐지는 순간 감사도 그치게 될 것이다. 주재권이 감사의 동기라면, 기도생활은 감사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어느 권사님, ‘기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새벽에도 기도해야 하고, 밤에도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 생활 소홀해지면 근심만 늘어가고 되는 일은 없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적용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그날은 한 해 동안 감사의 마음을 봉투에 담아 드린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이 헌금에 동참한다. 여러분의 헌금은 재정부에서 관리해서 선교헌금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빈봉투는 내게로 온다. 

봉투에는 감사와 기도의 제목들이 적혀 있다. 그것을 보고 함께 감사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속상할 때가 많다. 성의 없이 드린 모습은 봉투에 그대로 나타난다. 예)범사에 감사.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금액의 과소를 떠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실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 없이 그냥 드렸다면 이제부터라도 고쳐야 한다. 하나님 받으실 모습을 갖출 수 있기 바란다. 그냥 헌금만 넣어 드리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글로 정성껏 적어 보기 바란다.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이 실린 감사의 글과 함께 감사예물을 드리고 감사의 시간을 가족들과 나눌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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