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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함없는 나의 친구 (요 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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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나의 친구 (요 15:11~16)


이솝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농장의 주인이 당나귀 한 마리를 사고 싶어 했습니
다.  그래서 시장의 정문 앞에 있는 당나귀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당나귀가 많
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자세히 살펴보다가 아주 크고 예쁜 당나귀를 보았습니다.  마음에는 들지만 과
연 괜찮은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나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당나귀를 집에 
데리고 가서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시험해 본 다음에 사도 좋겠습니까?’  

당나귀 주인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농부는 당나귀를 데리고 와서 자기의 당나귀들이 있는 외양간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새로 온 당나귀는 가장 게으르고 둔한 당나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두 당나귀는 금방 친해져서 함께 노는 것입니다.  농부는 곧 그 당나귀를 다시 끌고 가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 녀석은 안 되겠는데요. 게으르고 둔해서 쓸모가 없거든요.’  그러자 당나귀의 주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뭘 보고 게으르다는 겁니까?’  ‘난 당나귀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당나귀의 친구를 보고 안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
從)’이란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누구나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가까이하
고, 누구와 친구가 되고, 어떤 사람과 사귀는 것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27:17)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면 좋은 사람이 되지만, 나쁜 친구와 함께 하면 자연히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에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주
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고, 모든 세대의 사람들도 예수님의 친구가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은 나의 친구입니다.  변함없는 좋은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나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일
까요?  예수님이 나의 친구라는 것에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친밀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본문은 15장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비유
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 그리고 하나님은 농부라고 하셨습니
다.  그러면서 포도나무의 열매와 과실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결실의 계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너무도 마음에 새겨야 할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친구를 언급하십니다.  친구는 그 자체가 친밀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당신의 친구라고 부르면서 친밀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앞서서 강조한 포도나무비유도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데 역시 친밀감을 설명합니다.  또한 본문에 
사랑을 강조하는데 역시 친밀함을 설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친구라고 부르면서 친밀함을 나타내셨
습니다. 

‘친밀함’이란 ‘가까이함’을 의미합니다.  친구로서의 주님은 우리를 가까이한다는 것이 바로 친밀함의 뜻
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친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인간은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살았
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거리가 생겼습니다.  점점 골이 깊
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쉽게 가까이 갈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생
겼습니다.  

이런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흘리시며 돌아가셨습니다.  그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가 하나님과 가깝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1-13)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친
밀하셨고, 아브라함과도 가까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친구로 대하며 가까이하기를 원합니
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벗이 되고, 주님의 친구가 된단 말입니까?  이 말은 그토록 하나님은 우리
와 가까이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해서야 되겠습니
까?  하나님이 가까이 하기를 원하시니 나도 가까이 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더 많은 교제,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가까이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친구로 부르시고, 친밀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그것이 내가 복을 받는 길입니다.  시편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주님은 나의 좋은 친구입니다.  나와 늘 가까이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제 이런 하나
님의 뜻을 알고, 나도 날마다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성도가 되
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신뢰감입니다. 

11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주님은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을 우리 안
에 있게 하고, 우리 기쁨을 충만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믿음을 전제한 기
쁨입니다.  다시 말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
게 기쁨이 생깁니까?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제자들의 곁을 떠납니다.  이젠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요, 아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쁨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이 있는 기쁨입니다.  친구로서 주님은 바로 이런 신뢰감을 주고, 또한 제자들도 주님을 신뢰하는 기쁨이 충만한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감입니다.  믿지 못할 사람은 기업이나 모임에서 인정을 받
지 못합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면 그때부터 금이 가고, 문제가 생깁
니다.  서로를 믿고, 신뢰 속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관계보다 가장 신뢰감이 
필요한 곳이 바로 친구사이입니다.  친구와는 비밀스런 이야기도 털어놓습니다.  정말 믿을만한 친구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에게 하지 못할 말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지 못할 말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친구에게 비밀까지 털어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친한 친구일수록 서로 신뢰합니다.  친구관계는 무엇보다도 신뢰 속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믿지 못할 
친구라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게 되어 잇습니다.  이처럼 
친구는 신뢰로 쌓는 우정이기에 그것이 평생 갑니다.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되고, 내
가 힘들고 외로운 때에도 찾는 것이 친구입니다.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 천 건이 접
수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선택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언제든지 만나도 싫지 않은 사람, 나에게 진심으로 충고해 주는 사람 등이
었습니다.  하지만 1등은 따로 있었습니다.  1등으로 선택된 친구의 정의는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
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나를 떠나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
에 외로울 때, 나를 찾아오는 것이 친구입니다.  친구는 결국 신뢰감으로 평생 함께 갑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십니다.  내가 어려울 때 큰 도움
이 되십니다.  외로울 때 내 곁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내가 지칠 때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내가 가까
이하고 싶을 때 내 손을 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분이 나의 친구, 나의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나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처럼, 나도 주님께 믿음직스런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주
님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고,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하고, 주님
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좋은 친구인지 돌아보십시오.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의 두
터운 신뢰를 받고, 의지하면서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영향력입니다. 

본문은 친구로서 예수님이 보인 놀라운 은혜를 보여줍니다.  그것을 2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사랑
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입니다.  사랑에 대해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
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희생에 대해서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은 이렇게 친구인 제자들을 위하
여 다가오셨습니다.  

그런 희생과 사랑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당시 믿는 모든 자에게 미쳤고,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압도하고 강권하여 내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도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앞으로 또 믿어야 할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힘이 있고,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 내가 오늘 주님을 알았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고, 주님의 
깊은 사랑에 날마다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를 이처럼 이 자리에 오게 하고, 나를 완전히 주도
하며, 나를 압도하는 강권적인 힘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놀라운 영향력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삶을 
바꾸셨습니다.  

도저히 우리가 보기에 안 될 것 같은 사람들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직 그의 사랑과 희생으로 하셨습니다.  이게 영향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주님의 놀라운 영향력이 이처럼 나를 세운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나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모든 사람을 더욱 놀라게 하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압도하는 힘이 있는 영향력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다 예수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이처럼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친구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
가 바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라집니다.  친구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합
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친구는 친구로 인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로마에 디오니시우스라는 포악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피시아스라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포악한 정치에 반기를 들다가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사형 집행일
이 다가오자 그는 황제에게 죽기 전 고향에 가서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도록 배려해 달라고 부탁했습
니다.  그러나 왕은 단숨에 거절했습니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시아스에게는 
데이몬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딱한 소식을 듣고 왕을 찾아갔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면서 친구 대신 자기가 감옥에 갇히겠다고 자청하고 만약 약속한 날까지 친구가 오지 않으면 대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황제는 그들의 우정을 가상히 여겨 간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피시아스 대신 데이몬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덕분에 피시아스는 고향에 잠시 다녀올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어도 피시아스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약속대로 친구는 사형되어야 할 
형국입니다.  

하지만 데이몬은 친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긴박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오히려 변호해 주었습니다.  데이몬이 단두대 앞으로 끌려나왔습니다.  그때 피시아스가 멀리서 달려오는 것입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왕 앞에 쓰러졌습니다.  오는 길에 배가 풍랑을 만나 겨우 살아나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친구를 풀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황제는 폭군이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모두 풀어주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어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
를 담보로 잡히셨습니다.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주님
의 사랑, 은혜, 희생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주님은 이런 나를 친구라 부르시며, 나도 주님의 친구로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십
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너희는 내
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주님이 나를 친구 삼으셨는데, 이제 나도 주님의 신실한 친
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친구가 되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명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처럼, 나도 세상사람, 이웃, 내 주변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품지 않으면 나는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친구 삼으셨지만, 나는 주님의 친구가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계명과 말씀을 실천할 때, 특히 사랑하라는 말씀을 행할 때, 비로소 나는 주님의 친구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나는 아직 친구가 아닙니다.  참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친구입니다.  변함없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친구이신 주님을 생각
하며 친밀함, 신뢰감, 영향력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주님은 나와 늘 가까이 하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두터운 신뢰를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삶의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이런 좋은 친구
를 마음에 모시고, 나도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이제 더욱 주님을 가까이하고, 주님을 실망
시키지 말고, 주님의 제자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순종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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