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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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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 14:6~15)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고난은 있다. 그러나 고난이 있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서,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용사는,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난을 잘 극복하고 승리했다. 

요셉은 3명의 계모 밑에서, 이복형제들의 무서운 시기와 분노 아래 자라났다. 아버지의 분별없는 사랑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고, 형들은 그를 죽이려 하였다가, 결국에는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후에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가족과 민족을 구했다. 

다니엘은 조국을 빼앗기고, 부모와 헤어진 채 이방의 바벨론으로 잡혀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자굴 속에도 던져지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우상과 이방 왕의 권세 앞에도 당당하게 섰고, 결국 이방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다. 

사무엘 역시 젖을 떼자마자, 부모님을 떠나 성전에 바쳐졌다. 그 이후로는 부모님과 살지 못했다. 더구나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당대에 가장 악명 높은 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성전 재물을 빼앗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악한 자들과 함께 살면서, 나쁜 행동을 목격했지만, 타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이 태어나고, 악한 환경에서 악한 인물이 성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환경이 상관이 없다. 믿음으로 환경을 초월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갈렙이 그런 사람이었다. 

1. 갈렙은 누구인가? 

갈렙은 최전방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한 위대한 장군이다. 불리한 조건이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극복하고 승리한 자다. 

(1) 이방인 출신이다(6中).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했다. 그니스는 가나안 족속 중에 하나였다(창15:19). 이방족속 에돔의 조상이 된, 에서의 손자가 그니스(그나스)이다(창36:11, 15). 

갈렙은 하나님이 쓰실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땅히 멸망 받아 마땅한, 이방 족속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 편입되었다 할지라도, 모세의 후계자 택정 중에서, 최종 경쟁에서 밀린 자였다. 그는 모세의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2) 갈렙(ב󰗝󰗏)의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니다. 
갈렙은 켈렙(ב󰗞󰗓 ,짖다, 공격하다)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다른 말로 ‘개’나 ‘남자 매춘부’를 뜻한다. 아마 그는 이방인이었을 때, 개처럼 더럽게 살다 변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개와 비교되면 손해다. 

사람과 개가 달리기시합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라고 하고, 비기면 개 같은 놈이라고 하고, 사람이 이기면 개보다 더 지독한 놈이라고 한다. 하여튼 개와 비교하면, 좋지 않다. 갈렙은 개처럼 더럽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여, 충성스런 ‘개’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3) 85세가 되었다(10下). 
“…오늘 내가 팔십 오 세로되” 85세쯤 되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은퇴할 나이다. 모두 놓고 쉬고 싶을 나이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았다. 청년 정신을 가지고 도전했다. 

최근 들어 어린아이들도 성인병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왜 어린아이들이 성인병에 걸리나? 노인같이 살기 때문이다. 노인처럼 살면 어린아이도 청년도 똑같이 성인병, 노인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인이라도,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산다면, 그를 가리켜 노인이라고 할 수 없다. 

(4) 이처럼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았지만, 인생을 멋지게 만든 믿음의 사람이다. 
(민13장)을 보면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2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게 되었을 때, 10사람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이니,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했다.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열변을 토한 사람들과, 그들의 열변에 동조했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따른 지도자와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 사건을 통하여, 말대로 이루어지고, 뿌린 대로 거두고, 믿음대로 성취됨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온도계는 우리의 혀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안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인간은 하기 싫어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불가능하다고 말한 후, 그것이 불가능함을 입증하려고, 자신의 삶을 말한 쪽으로 움직인다. 이처럼 말이 인생의 태도를 결정하고, 행동을 결정하기에,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결정되기에, 믿음의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 

갈렙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제비 뽑아 나누어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가 가능하면, 입지조건이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데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공평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야 했다. 그때 갈렙은 이렇게 말했다.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풀어서 말하면 이런 이야기다. 

“내 나이가 비록 85세이지만, 나는 건강하다. 그러므로 나에게 거인족속인 아낙족속이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산악지대 헤브론을 달라. 그곳을 개간하고 개척하여 옥토를 만들고, 그들과 싸워서, 그들을 추방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대로 행했다. 

2. 갈렙이 달라고 한 땅은 어떤 곳인가?(12)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모든 땅을 다 정복했다. 그러나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헤브론이었다. 워낙 험한 곳이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1) 산지(ר󰕘) 
사람은 누구나 편안히 살기 원한다. 높은 산지는 힘들여 개척해야 하기에,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러나 갈렙은 오히려, 기름진 평야나 도시를 바라지 아니하고, 산지의 땅을 요구했다. 

더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면, 산이 생겼다고 한다. 보통 문제는 산이라고 하였지만, 큰 문제는 큰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과 같은 큰 문제가 생겼기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6)라고 외쳤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 하고, 골치 아픈 산을 싫어하지만, 갈렙은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산지를 달라고 하였다. 갈렙의 용감한 요구함에,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땅이 되었고, 나중에 다윗에 의해, 수도로 정해지는 영예를 얻었다. 

(2) 아낙(םי󰙎󰗺󰘥)사람이 살고 있는 땅 
갈렙이 요청한 산지는, 아낙 사람이 있는 땅’(12)이라고 했다. 아낙사람은 장대한 거인들의 족속이다. 아낙 자손들은 (창6:4)의 네피림 후손이다(민13:33). 

(민13장)을 보면, 과거 가나안 정탐꾼들이, 그 땅의 거민들을 보고,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한, 거인들이 살고 있는 땅이다. 그 중에서 ‘기럇 아르바’(헤브론)사람은, 거인 아낙 자손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사람들이었다(15). 

(3) 크고(תוֹל󰕌󰕆) 견고한(תוֹר󰙂󰔶)땅 
이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다는 말은, 모두 복수로 되어 있다.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여러 개의 도시국가였다. ‘키럇 아르바’(ע󰔰󰙣󰔣 ת󰖸󰙣󰙎)는 헤브론의 옛 이름인데, 히브리어로 4개의 도시라는 말이다. 

이 동네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4개의 도시였으니, 정복하기가 훨씬 힘들었다. 거인 도시 하나도 힘든데, 거인들이 4개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나이가 많은 갈렙은, 산지의 땅 가운데서도, 특히 아낙 자손이 있는, 산지의 땅을 달라고 했다. 

갈렙은 이스라엘 족장 중에, 여호수아와 가장 나이 많았고,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이끈 사람이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곳을 분배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힘들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땅을 달라고 말했고, 결국에는 헤브론 땅을 정복하였다. 

그는 축복을 사명으로 알고 행동했다. 청년정신을 회복하기를 원하는가? 최고의 보약은 헌신이다. 우유를 먹기만 하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다. 어려움 앞에 주눅 들지 말고,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라. 

3.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하나님으로 영접한 사람 
갈렙은 이방인이었기에, 원래 아브라함의 피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8절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나의 하나님 여호와’라 한다. 그는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다 좋은 칭호들이지만,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없으면, 이런 칭호들은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진정 거듭난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사람들은 삶에 기쁨, 확신, 소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해 아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해나가면 나갈수록, 기쁨보다는 피곤과 짜증만 늘어난다.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성경을 읽다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하나님도 되심을 깨닫고,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쳤다. 

똑같은 무게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고, 더 가볍게 느낄 수 있다. 무슨 일을 해도 마음가짐에 따라, 더 피곤하게 느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일이라면 피곤하지 않지만, 남의 일을 한다면 더 피곤한 법이다. 

신앙생활도 나의 하나님을 믿음과, 너의 하나님을 내가 믿어주는 것은 다르다. 아내가 간청해서 남편이 교회에 따라 나와 주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예배 시간에 앉아있는 모습이, 참 힘들어 보인다. 시계를 보고, 이쪽, 저쪽을 본다. 지루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내가 너의 말을 듣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 볼 것도 없구나 하는 마음이다. 아내를 볼 때에는 아주 무서운 눈초리로 본다. 나를 왜 이런데 끌고 왔느냐는 눈빛이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잘 들어보라는 눈으로 남편을 설득한다. 

왜 그런가? 나의 주님이 다르고, 너의 주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을 내가 믿어주는 것에 불과한가? 만약 그렇다면, 방황할 수밖에 없고,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가 된다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삼아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산다(12下). 

갈렙은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견됐을 때부터 성실했다. 보통 “성실”은 히브리어로 “에무나(ה󰗺וּמ󰔤)”, 또는 ‘에메트(ת󰗮󰔟)’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성실은, 임(ם󰘟, 함께)이다. 하나님과 결합됐다는(ם󰗫󰘝) 말이다. 따라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충성하는 신앙(8, 9, 14).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이 말은 직역하면, 나의 하나님 뒤에서 충만하게 행동했다는 말이다(יהלא הוהי ירחא אלמ). 

하나님께 충성하는 신앙은, 곁눈질하지 않고, 하나님만 따른다.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따라간다.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고 하였다. 

네가 밟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밟기만 하면 됐고, 밟은 곳은 정말 그의 땅이 되었다(10).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축복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그 믿음대로 축복하셨다. 이처럼 갈렙은 사람이나 조건을 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나 10정탐꾼은 아낙 자손을 보았고, 견고한 성읍들을 보았으며, 메뚜기 같은 자기들을 보았다. 10명의 정탐꾼은 거인들을 크게 보았고, 하나님을 작게 보았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거인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개인차에 따른, 기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신앙 문제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셨다면, 한번 내 관점과 기질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아직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소극적인 요소가 많다면, 믿음이 부족한 줄 알고 기도하기 바란다. 

(3) 불굴의 용기(12). 
지금 85세 된 노인이 “이 산지 헤브론을 달라”고 나섰다. 그리고 그 땅을 점령하고 있는 원주민인 거인족속인 아낙 자손을, 싸워서 내쫓겠다고 했다. 

85세가 된 상태에서, 이미 정복된 넓고 아름다운 평야지대를 요구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미정복 상태의 헤브론 산지를 요구했다. 하나님께서 발로 밟기만 하면 그 땅을 주시겠다고 했으니, 하나님의 확실한 그 약속을 믿었다. 

승리는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했다. 그 결과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라 했다. 또 (15下)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했다. 갈렙의 신앙대로, 믿음대로 되었다. 

누가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소유할 수 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치는 소리다. (삼상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것이 진정한 용기이며 신앙이며 승리의 비결이다. 85살 난 노인 갈렙이 이토록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했던, 위대한 신앙 때문이었다. 인생은, 2번 주어지지 않는다. 한번 주어지는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자. 주님을 위해 멋진 계획을 세우고, 멋지게 일을 해보자. 

이 멋진 일은, 멋진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못하다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멋있게 살자.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땅을 개척한 갈렙은, 그 땅을 자녀들에게 축복으로 남겨주었다. 15장을 보면, 이렇게 넓히고 개척한 땅을, 그의 딸들에게 나누어주었다(수15:18-19). 본래 딸들에게는 기업이 없었다. 그러나 갈렙이 자기 자신이 넓히고 개척한 땅이기에, 그의 딸과 사위이게 줄 수 있었다. 

결론이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3종류가 있다고 한다. 

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사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②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이겼기에 두려운 사람이다. 

③ 꿈꾸는 사람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는가? 꿈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만 보이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소유를 포기할 수 있기에, 두려운 사람이다. 

갈렙은 세상이 두려워하는 3가지를 다 갖추고 있었다. 우리 교회 성도여! 믿음으로 나아가자.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며, 믿음으로 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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